1930년대 암울한 현실
화려한 도시문화 공존
‘구보’는 행복 찾았을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경성 여행을 떠났다. 1930년대 일제 치하의 암울하면서도 화려한 도시문화가 시작됐던 그 시대의 경성은 어떠했을까. 박태원의 자전적 소설을 따라 산책하듯 떠나는 여행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라칸티나’와 박태원이 살았던 동네의 ‘무교동 북어국집’에서 탐방이 시작됐다. 청계천 복개로 인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박태원의 집터 다옥정 7번지 근처에서 박태원의 호 ‘구보’의 배경, 박태원의 삶, 그의 절친 이상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기에 시각 자료, 소설의 한 대목이 더해지면서 참가자들은 어느새 1930년대 경성으로 돌아가 있었다.
엘리트 백수였던 구보가 어머니의 걱정, 근심을 피해 서 있었다는 광교다리 모퉁이를 거쳐 종로 네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신백화점’(종로타워)을 바라보며 실제로 화신백화점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들은 깊은 감회에 젖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차가 다녔던 경로를 따라 걸었다. 오래된 벽돌조 건물 ‘광통관’(우리은행)을 지나 등록문화재 1호로 지정된 ‘경성전기’(한국전력), 구보가 전차에서 내렸다는 ‘조선은행’(한국은행) 앞까지 걸음은 계속됐다.
소공동과 남대문은 근대 금융의 중심지이자 1930년대 경성에서 가장 화려하고 모던한 거리였던 곳이다. 조선은행 앞에 도착한 전차에서 내려 장곡천정(소공동)으로 향하는 구보를 따라 일행은 바쁘게 움직였다. 소공로 골목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해창양복점’을 볼 수 있었다. 양복점은 이전하고 간판만이 남아 있었다. 커피 한 잔이 간절히 생각나는 그때 구보도 ‘낙랑파라’(화가 이순석이 운영한 최초의 커피 다방)에 들러 차도 마시고 옛 친구도 만났다고 한다. 경성에서 나고 자란 구보의 도시적 속성이 지금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다. 일행은 구보가 바라봤던 ‘대한문’을 바라보고, 소설의 한 부분을 들으며 구보가 느꼈던 식민지 국민이자 지식인으로서의 느낌을 같이 헤아려 본다.
소공동길을 따라 서울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웨스틴조선호텔 속에 둘러싸인 황궁우를 지나 남대문로 4가에 있는 2층 한옥 상가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상인 틈에서도 끝까지 조선인이 소유했기에 남았다는 해설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행은 마지막 코스인 서울도서관으로 향했다. 구보가 하루 종일 경성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던 ‘행복’의 의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문화유산팀
화려한 도시문화 공존
‘구보’는 행복 찾았을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경성 여행을 떠났다. 1930년대 일제 치하의 암울하면서도 화려한 도시문화가 시작됐던 그 시대의 경성은 어떠했을까. 박태원의 자전적 소설을 따라 산책하듯 떠나는 여행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라칸티나’와 박태원이 살았던 동네의 ‘무교동 북어국집’에서 탐방이 시작됐다. 청계천 복개로 인해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박태원의 집터 다옥정 7번지 근처에서 박태원의 호 ‘구보’의 배경, 박태원의 삶, 그의 절친 이상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여기에 시각 자료, 소설의 한 대목이 더해지면서 참가자들은 어느새 1930년대 경성으로 돌아가 있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문화유산팀
소공동과 남대문은 근대 금융의 중심지이자 1930년대 경성에서 가장 화려하고 모던한 거리였던 곳이다. 조선은행 앞에 도착한 전차에서 내려 장곡천정(소공동)으로 향하는 구보를 따라 일행은 바쁘게 움직였다. 소공로 골목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해창양복점’을 볼 수 있었다. 양복점은 이전하고 간판만이 남아 있었다. 커피 한 잔이 간절히 생각나는 그때 구보도 ‘낙랑파라’(화가 이순석이 운영한 최초의 커피 다방)에 들러 차도 마시고 옛 친구도 만났다고 한다. 경성에서 나고 자란 구보의 도시적 속성이 지금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다. 일행은 구보가 바라봤던 ‘대한문’을 바라보고, 소설의 한 부분을 들으며 구보가 느꼈던 식민지 국민이자 지식인으로서의 느낌을 같이 헤아려 본다.
소공동길을 따라 서울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웨스틴조선호텔 속에 둘러싸인 황궁우를 지나 남대문로 4가에 있는 2층 한옥 상가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상인 틈에서도 끝까지 조선인이 소유했기에 남았다는 해설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행은 마지막 코스인 서울도서관으로 향했다. 구보가 하루 종일 경성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던 ‘행복’의 의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문화유산팀
2017-11-02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