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자연에 안겨, 그림에 빠져… ‘순수’를 만나다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자연에 안겨, 그림에 빠져… ‘순수’를 만나다

함혜리 기자
입력 2016-11-25 17:30
수정 2016-11-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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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자그마한 화면 속에 아름다운 색채와 아기자기한 이미지들이 어우러진 장욱진(1917~1990)의 작품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단순함이다. 산, 집, 아이, 호랑이, 산, 까치, 나무 등 평면적이고 단순한 도상들은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순수해서 들여다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저 맹숭맹숭하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인생을 달관한 선승의 그림처럼 작은 화면 속에는 깊은 내면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드넓은 이상의 세계가 공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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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전통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흰색 건물이 파란 하늘 아래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왼쪽 사진). 창작에 열중하고 있는 장욱진 화백의 사진이 걸려 있는 미술관 로비(오른쪽 사진).
현대와 전통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흰색 건물이 파란 하늘 아래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왼쪽 사진). 창작에 열중하고 있는 장욱진 화백의 사진이 걸려 있는 미술관 로비(오른쪽 사진).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 화가 장욱진의 정신 담아

경기 양주시 장흥면 계명산 자락에 자리잡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손을 잡고 설립한 미술관이다. 서울시내 중심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미술관은 온전히 자연 속에 자리잡고 있어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매표소 건물을 나오면 야외 조각공원을 지나고 구름다리를 건너야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개관(2014년 4월) 당시에는 개천 건너편 미술관 오른쪽이 주 출입구였는데 지난해부터 조각공원이 통합 운영되면서 조각공원의 매표소를 이용하고 있다. 봄여름 나무가 우거졌을 때엔 잘 보이지 않을 테지만 나뭇잎이 다 지고 난 늦가을인지라 언덕 위의 흰색 건물이 파란 하늘 아래서 비현실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외관은 현대와 전통이 적당히 버무려진 모습으로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심플하다. 알싸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벽면에 커다란 장욱진의 흑백사진이 반겨준다.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원없이 그림만 그리더니 죽어서도 이렇게 훌륭한 자연 속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단 미술관을 가졌으니 참 복이 많은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장욱진은 시·서·화에 안목을 지닌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가까이했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복 중·고교)에선 미술반 활동을 하며 동경미술학교 출신 미술교사인 사토 구니오의 수업을 통해 입체파와 피카소의 미술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일본인 역사교사에게 대들었다가 3학년에 중퇴한 그는 수덕사에서 3년간 수양의 시간을 보내고 양정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한다.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미술학교(지금의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공부했다.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얼마 안 되어 해방을 맞은 그는 1945년 가을 국립박물관 진열과에 취직했다가 1947년 사직하고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해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창작에만 몰두한 작가의 삶 닮은 심플한 미술관

그의 나이 34세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그의 작품에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을 촉발시킨 계기가 된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장욱진은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하지만 재직 6년 만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1963년 덕소에 화실을 마련해 장장 12년 동안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중년의 시대를 보냈다. 1975년 봄 그는 덕소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명륜동으로 작업실을 옮겨 1979년까지 머물렀다. 그는 서울의 번잡함을 벗어나 수안보로 다시 작업실을 옮겼다가 1986년 봄부터 마지막 5년을 경기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고택에서 보냈다. 자연과 더불어 창작에만 몰두하는 심플한 삶을 원했던 장욱진은 따뜻하고 정감어린 작품들을 남기고 1990년 12월 27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대·전통의 조화로 英BBC ‘8대 신설미술관’ 선정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의 작품처럼 작고 심플하지만 깊이가 있다. 장욱진의 그림 ‘호작도’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최-페레이라 건축에서 설계한 건물은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다. 대지면적 6204㎡에 연면적 1852㎡에 이르는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각층에 위치한 두 개의 전시실 외에 영상실, 강의실, 아카이브 라운지를 갖추고 있다. 매끈한 흰색 외관부터 내부의 마무리까지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디테일이 조화롭게 설계돼 있는 건물은 미술관이 개관한 201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했고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베스트7, 영국 BBC의 2014년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내년 1월까지 ‘행복’ 주제로 장욱진과 민화 전시

미술관은 벽화, 유화, 판화, 먹그림 등 장욱진의 다양한 작품 23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2014년 봄 개관 이후 소장 작품을 중심으로 국내외 근현대 미술에 대한 다양한 주제기획 전시를 열었다. 지난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행복’이라는 주제로 장욱진과 민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변종필 관장은 “개관 이후 지금까지 장욱진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를 다양하게 진행해 왔다”면서 “2017년 장욱진 탄생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상설관을 개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 북부의 유일한 공공미술관인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2년 6개월밖에 안 된 신생 미술관이지만 탄탄한 기획전시 외에도 시민들을 위한 교육, 공공프로젝트, 미술창작스튜디오(777레지던스), 전국 대학생 대상 드로잉 공모전 등의 운영을 통해 지역 문화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단, 서울시교육청과 정책협의회 개최

서울특별시의회 국민의힘 원내대표단(대표의원 김길영, 강남6)은 26일 서울시교육청과 정책협의회를 열고 제340회 정례회 행정사무감사와 안건 심사를 대비해 주요 교육 현안을 점검했다. 원내대표단은 교육청 제출 안건을 사전에 살피며 정책이 교육 본질에 부합하는지, 예산 운용이 효율적인지 면밀히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시급한 현장 과제와 우선순위가 다른 신규 사업 확대와 실효성 검증이 필요한 대규모 자체 시스템 구축은 재정적 타당성을 꼼꼼히 살필 예정이다. 아울러 민간위탁 동의안, 조직 신설 및 인력 증원도 객관적 기준으로 필요성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최종부·이도희·주수현 부대표는 교육청의 서·논술형 평가 체제 개편과 AI 시스템 도입 계획에 정책적 우려를 표했다. 최종부 부대표는 “학생들을 단순히 서열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단편적인 목적에만 매몰되어 무리하게 정책을 설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부대표는 “담당 교사가 AI를 돌려 초안을 채점한 뒤, 결국 교사가 일일이 확인하고 자신의 주관을 넣어 수정해야 하는 구조라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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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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