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사랑잇기] <2부>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① 독거노인 말벗이 되자

[독거노인 사랑잇기] <2부> 노인이 행복한 사회 ① 독거노인 말벗이 되자

입력 2011-05-30 00:00
수정 2011-05-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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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통으로 뭘 할까 했는데… 이런 진심어린 대화 처음”

“늘 친절한 목소리를 반복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인 제가 이렇게 진심 가득한 통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25일 서울 용강동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회의실. 보건복지부 콜센터 조은경 상담원의 말에 함께 모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복지부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의 전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참여 기관·기업의 직원들이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한 ‘사랑 잇는 전화’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업의 의의와 개선점을 점검해 본다. 나아가 이들의 작은 실천을 통해 ‘노인이 행복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에게 묻는 기회를 찾아보자.

처음 ‘사랑 잇는 전화’에 참여했던 봉사자들은 전화 한 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보였다고 했다. 또 어르신들도 “은행이 왜 나에게 전화를 하느냐.”는 식의 퉁명스러운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국민연금공단 콜센터 소속 이점숙 상담원은 “처음 직원들 사이에서는 실적과 연계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점차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노인들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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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용강동 한국노인종합복지관 독거노인지원센터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 사랑 잇는 전화’ 간담회에서 콜센터 직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제공
지난 26일 서울 용강동 한국노인종합복지관 독거노인지원센터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 사랑 잇는 전화’ 간담회에서 콜센터 직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제공
●“회의감이 자신감으로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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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잇는 전화’를 통해 봉사자들은 노인과의 짧은 전화가 단순한 통화 이상임을 알게 됐다. 삼성화재 소속 하자영 상담원은 “처음에는 복지부에서 나눠 준 스크립트 등 자료에 의존해 전화를 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대상 노인이 먼저 대화를 이끌고, 안부를 물으면 상담원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통화가 이뤄진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스크립트에 따라서만 통화를 했다면 오히려 노인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회의감도 들었다는 국민은행 콜센터 박숙연 상담원은 특별한 계기를 통해 ‘사랑 잇는 전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어느 날 어르신이 SH공사의 저소득층 대상 임대주택에 대해 물어보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한 정보를 전할 수 있었다.”면서 “그때부터 자신감을 갖고 노인과 대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임미영 상담원은 “노인 한 분은 손녀 이름과 상담원 이름이 같다며 정말 반가워했다.”면서 “손녀에게 전화가 온 것 같다고 하는 것을 보면 손자 등 혈육과의 만남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담원으로서 자부심 느껴”

‘사랑 잇는 전화’는 노인들에게만 정서적인 지원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 등 고객들과 통화하는 상담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늘 ‘기계적’인 친절함이 습관처럼 몸에 밴 이들이었다. 고객의 감정에 맞춰 연기하듯 상담전화를 주고받는 이들의 업무는 ‘감정노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노인과의 전화를 통해 자신들도 정서적인 지원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나은행 콜센터 관리부의 임 상담원은 “매뉴얼에 따라 질문에 대답하는 텔레마케터는 사실 정서가 메마르기 쉬운 직업”이라면서 “하지만 사무실에서 이렇게 진심 어린 통화를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에는 도의적인 책임감도 느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은 제 생활의 큰 변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복지부 콜센터 조 상담원은 “우리 직업은 늘 상담을 제공하거나 항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하지만 ‘건강한 하루를 보내라’라는 노인의 말 한마디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또 “이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분들은 느끼지 못할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상담원들은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정보제공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나은행 임 상담원은 “건강상의 안위를 묻는 안부 전화인데 막상 노인들은 임플란트를 싸게 하는 곳이 어딘지 등 다양한 질문을 한다.”면서 “자주 묻는 질문은 쉽게 취합될 테니까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정보를 우리에게 주면 더 효과적인 안부 전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박 상담원도 “몰라서 혜택을 못 받거나 본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인지 알려주지 않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노인들도 많다.”면서 “우리 상담원을 통해 정기적인 정보 안내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은비 상담원은 “우리는 안부 전화만 하는 것이고 노인들의 사례관리나 서비스 연계 등은 다른 곳에서 한다.”면서 “우리도 노인들에게 어떤 사후서비스가 제공되는지 등 진행과정을 알아야 더 깊이 있는 안부전화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안부 전화를 통해 나타난 노인들의 가장 큰 욕구는 일자리 등 경제활동과 물질적인 지원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 상담원은 “하루 8시간의 정규 일자리는 아니어도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2011-05-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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