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당근·채찍’ 활용하는 시진핑
”우호국엔 당근, 적대국에는 채찍을!”중국 국가수반으로서 30년 만에 방글라데시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왼쪽)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수도 다카에서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협력 등 양국 간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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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 신화통신, 중국중앙방송(CC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방문을 마치고 14일 방글라데시 다카를 방문해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 데 합의했다. 2010년 두 나라가 체결한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한 단계 격상됐다. 중국 국가수반으로서는 30년 만에 방글라데시를 방문한 그는 방글라데시에 무려 200억 달러(약 22조 7000억원) 규모의 투자 및 금융 지원 협약에 흔쾌히 서명했다. 중국은 방글라데시의 도로와 철도, 신산업단지 등 사회 인프라 구축에 200억 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두 나라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한 관리는 “중국과 방글라데시 간에는 또한 다른 프로젝트들도 있는데 모두 합치면 총 규모가 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양국 간의 경제 지원 협약은 중국과 경쟁 관계인 인도의 영향권에서 방글라데시를 떼어 놓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시 주석은 앞서 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해 2억 370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는 등 대규모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시 주석과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정상회담을 열고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 협력을 비롯해 에너지·통신·농업·관광 등 분야에서 모두 31건에 이르는 경제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캄보디아 고속철도와 국제공항에 대한 중국 정부의 투자, 캄보디아 정부 채무 8900만 달러의 탕감 등이 포함됐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20만t에 이르는 캄보디아산 쌀을 수입하기로 했다. 시 주석이 “중국은 캄보디아의 국가 건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자, 훈 센 총리는 “양국은 서로를 매우 신뢰하는 좋은 친구”라고 화답했다. 특히 시 주석은 캄보디아 방문에 앞서 기고문을 통해 “캄보디아는 ‘간담상조’(肝膽相照·속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사이)의 좋은 이웃이자 진정한 친구”라면서 “중국의 해양주권 유지 차원에서 캄보디아가 공명정대함을 주도하면서 정의를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고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남중국해 분쟁 中 편든 캄보디아엔 6억 달러 원조 약속
이에 따라 시 주석이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푼 것은 캄보디아가 그동안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지속적으로 중국 편을 들어준 데 대한 보답 성격이 짙은 셈이다. 중국은 올해에만 캄보디아에 6억 달러의 원조를 약속한 캄보디아의 최대 투자국이다. 두 나라는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서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논의할 주제가 아니며 분쟁 당사국들이 평화적으로 협상해야 할 문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캄보디아는 지난달 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국제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근거 없다”고 판결한 사실을 공동 성명에 넣자는 데 반대했다.
●네팔 ‘일대일로’ 불참 의사… 시진핑 방문 ‘없던 일로’
그러나 중국의 뜻에 조금이라도 ‘반기’를 드는 나라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내쳤다. 시 주석이 10월 중 네팔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했으나 끝내 그의 방문은 ‘없었던 일’로 됐기 때문이다. 네팔에서는 지난 8월 친중국노선의 반군지도자 출신 푸슈파 카말 다할 총리가 7년 만에 다시 집권해 시 주석의 방문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는 데다 ‘앙숙’인 인도의 견제를 위해서라도 이른 시일 내 시 주석이 카트만두를 방문할 것이라는 베이징 외교가의 관측이 유력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무산된 것이다. 시 주석이 캄보디아~방글라데시~인도를 거치는 이번 순방 동선 안에 있는 네팔을 빠뜨렸다는 것은 의도적인 배제로 보이며 그 밑바닥에는 네팔에 대한 중국의 여러 가지 불만이 내재해 있다고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가 지적했다. 둬웨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네팔이 불참 의지를 나타냈고 ▲네팔의 새 총리가 전임 총리 시절 양국 합의 사항을 지키려 하지 않고 있으며 ▲새 총리의 첫 방문국이 중국이 아닌 인도를 선택했기 때문에 시 주석이 막판에 네팔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난달 인도가 네팔에 지진피해 복구에 쓰라며 7억 5000만 달러의 차관을 지원한 것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진 데 대해 중국의 심기가 불편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으로선 ‘아군’에 가깝다고 여겼던 마오주의 중앙공산당 총재인 푸슈파 카말 다할 총리가 중국을 먼저 챙길 것으로 내심 바랐지만, 인도 쪽으로 기울자 ‘네팔 때리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khkim@seoul.co.kr
2016-10-2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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