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양현, 최영우 지음 / 효형출판
최양현, 최영우 지음 / 효형출판
지난주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 역을 맡았던 배우 박은빈의 백상예술대상 수상이 화제였다. “세상이 달라지는 데 한몫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작품을 하면서 적어도 이전보다 친절한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전보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다채로움으로 인식하길 바라면서 연기를 했다. 우영우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는 대사다. 다시 새롭게 정진하겠다”라는 박은빈의 수상소감과 맞물려 일본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 빅뉴스로 떠오른 것이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이렇게 우연도 필연도 없이 그저 사실(Fact)을 채우며 흘러간다.
서른 살 박은빈이 태어나기 약 70년 전인 1923년 최영우란 남자가 전라북도 남원 서도리에서 태어났다. 전주공업전수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2년 스무 살 청년 때 포로감시원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여러 수용소에서 일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일본이 항복하면서 전범 용의자로 현지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5년 후 귀국, 2002년 세상을 떠났다.『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은 그가 살아생전 남겼던 그 5년의 난중일기다.
“휴일에 부대에 설치된 위안소에 가 봤다. ‘부대가 가는 곳에 위안소도 간다.’라는 구호처럼 이곳에도 이미 여인 부대가 들어서 있다. 방이 스무 개나 될까. 방을 배정받은 병사들이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인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피지배 민족의 비애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조선에서는 처녀 징용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징용을 당하지 않기 위해 ‘처녀 조혼’을 하자는 말까지 떠돌았다… 부대가 가는 곳에는 보국대 소속으로 징용된 조선 여인들이 반드시 있었다… …”
1947년 3월 연합군 감옥에서 그는 석방됐다. 조선인 출신 포로감시원 148명이 BC급 전범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그 중 23명이 형장의 이슬이 됐다. 5년 전 3천여 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130여 명만 겨우 귀환선을 탔다. 그러나 어수선한 해방정국에서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에 남아 경계인을 선택한 사람까지 그들의 삶 역시 어수선했다. ‘관리번호 132번 최영우’가 남원 서도역에 도착해 서성일 때 당숙모와 마주쳤지만 피골이 상접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과 전범 처리 문제에는 아직도 규명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간의 공식적인 화해와 용서의 과정 역시 앞으로 미래 세대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 ‘조선인 최영우가 한국인 우영우에게 던지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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