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은 권력·부의 상징…가두고, 사육하고, 오락거리로 만들다
지난 7월 타이완 타이베이 동물원은 큰 경사를 맞았다. 2년 전 중국에서 선물로 받은 판다곰 부부가 새끼 암컷 한 마리를 낳았다. 안경을 쓴 것처럼 눈 주위가 까만 귀염둥이 자이언트판다는 지구촌에서 가장 귀한 동물 중 하나다. 아기 판다는 전용 사육전시장을 누린다. 또 정해진 시간에만 관람할 수 있는 대접을 받는다.지난 7월 타이완 타이베이동물원에서 갓 태어난 자이언트판다를 안고 있는 필자. 동물원에는 자이언트판다만을 위한 특별한 전용 사육전시장을 갖췄고 관람객도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대접을 한다. 새해가 와야 새끼 판다를 볼 수 있단다.
17세기 프랑스 루이14세 통치기간 미네저리 형식 동물원.
오스트리아 쇤부른동물원. 1752년 쇤부른 궁전에 들어선 뒤 1765년 일반에 공개하면서 최초의 근대동물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야생동물이 특권의 상징이긴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은나라 주왕은 비운의 황후인 달기의 환심을 사려고 왕궁에 대리석으로 사슴집을 지어주었다. 달기의 미모에 빠져 주왕은 매일 술과 고기를 탐하고 정사를 멀리하다 죽임을 당하게 되고, 주지육림이라는 고사성어도 탄생했다. ‘정복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가는 곳마다 진귀한 동물을 잡아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내주었다. 기원전 300년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모아두고 행동이나 소리 등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됐다.
이런 가운데 로마제국 전성기를 맞아 대규모 동물수집은 결국 동물 잔혹사 시대를 빚어낸다. 기원전 275년 기린과 코뿔소가 처음 소개된 로마에선 동물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찾는다. 동물끼리 시합하게 하거나, 심지어 동물전사라 불리는 전투사가 동물과 싸우는 자극적인 쇼로 인기를 끌었다. 정치인에게는 대중적 인기와 정치적 기반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폼페이 제독은 기원전 55년쯤 사자 600마리와 코끼리 18마리가 한꺼번에 싸우는 쇼를 벌였다.
19세기 중반 영국 런던동물원의 실내풍경.
1835년 런던동물원을 거닐고 있는 낙타들.
한번 동물시합을 치르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포획해 로마까지 운송하는 데만 1년 이상 걸렸다. 훈련시킨 시간을 합치면 2년을 채우고 남는다. 사자 한 마리를 데려와 훈련시켜 경기장에 내세우기까지 드는 비용이 병사 250명을 1년간 데리고 있는 비용과 맞먹었다.
로마의 콜로세움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처럼 로마 전역에 동물쇼를 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은 1000여개에 이르렀다. 찬란했던 로마시대 때 쇼에 이용된 동물은 수백만 마리다. 야생동물 거래는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할 정도였다. 이미 수많은 멸종 위기종을 낳는 또 하나의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16세기 인도 무굴제국의 3대 황제인 아크바르 역시 수천 마리의 동물을 소유했다. 페르시아에 정복된 멕시코 마지막 아즈텍제국의 황제 몬테수마도 수천 마리를 거느렸고 사육사만 300명을 웃돌았다.
1400~1700년 유럽에서는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서 동물원은 동물을 사육하고 전시하면서 오락의 대상으로 삼는 형식이 유행했다. 1753년 인도에서 고아가 돼 네덜란드로 건너온 코뿔소를 끌고 유럽을 순회하면서 큰 인기를 끌자 유랑단도 덩달아 스타 대열에 올랐다. 코뿔소 모양을 딴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문화적인 언어로 표현되기도 했다.
1893년 콜럼버스국제박람회에서 묘기에 동원된 세발자전거 탄 호랑이.
1906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 한갓 동물처럼 전시된 아프리카 피그미족.
1907년 5월 독일 함부르크 하겐베크동물원 개장일을 기념해 펼친 진풍경.
1990년 독일 베를린동물원 명물로 손꼽힌 코끼리 탑.
유럽 최초의 동물원으로는 1752년 오스트리아가 손꼽힌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녀의 남편인 로트링겐 공 프란츠 슈테판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수집한 동식물을 쇤부른 궁전 작은 우리에 모아두었다. 쇤부른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트와네트 어머니의 궁전으로 앙트와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1765년 일반에 공개되면서 동물공원(Zoological park)으로 첫발을 떼 근대 동물원의 시초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들어 세계 곳곳에 동물원이 세워졌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물원은 급속히 세계로 퍼져나갔다. 대개 연구보다는 대중에게 관람을 시키면서 상업적인 이득을 얻는 데 더 목적을 두기 일쑤였다. 그런 가운데 1828년 영국에서는 동물복지 제일주의로 동물학연구와 동물의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동물원이 생겨났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동물원으로서 동물원협회가 런던 리젠트파크에 세운 런던동물원은 동물공원이 아닌 명실상부한 동물원으로 새롭게 역할을 했다.
이렇게 야생동물 수요가 크게 늘면서 야생동물 거래는 산업으로까지 뻗어나갔다. 이른바 ‘하겐베크 혁명’이라 불리는 동물산업혁명의 주인공은 바로 독일의 하겐베크 일가다. 하겐베크는 이상한 모양의 물개를 사람들이 흥미롭게 구경하는 데 착안해 대규모의 동물거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유럽의 많은 동물원에 지속적으로 진귀한 동물을 공급하면서 사업은 큰 성공을 거뒀다. 동물만 수입하는 데서 나아가 토착민까지 조달해 동물원에서 인간쇼도 곁들여 유럽 전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토착민들이 기후변화 등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나가자, 1880년대 야생동물을 조련해 쇼를 하고 서커스단을 만들어 공연하는 오락형 동물원 산업을 창출하기도 했다. 하겐베크는 동물거래 사업을 통해 얻는 동물지식을 활용해 1907년 동물의 서식지를 고스란히 재현해 관람하도록 하는 새로운 전시기법을 도입한 동물원을 직접 만들었다. 아프리카 정글과 러시아 스텝, 미국의 대평원, 북극의 얼음을 재현한 이 동물원은 현재 생태형 동물원을 지향하는 20세기 동물원의 모델이다. 야생동물을 인간 호기심의 대상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멸종 위기로 몰아 넣는 데 누구보다 기여한 그가 만든 동물원이 현재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동물원의 모습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김보숙 서울동물원 기획운영전문관
이렇듯 현재의 동물원이 존재하기까지에는 무려 2000년 전부터 인간의 호기심과 잔인함의 대상이 되어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의 슬픈 역사적 배경이 뚜렷하다. 인간의 불완전한 정치와 문화가 사람은 물론 동물에게도 얼마나 큰 재앙이 될 수 있는지 역사를 돌이키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슬픈 탄생의 배경이 있다 하여 우리는 동물원을 찾지 않는가. 어떠한 문화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진귀한 동물만을 보러 동물원을 찾는 시대는 지났다. 또한,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야생동물이 아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원 동물이다. 이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만들어낸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을 이젠 보전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동물원은 동물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동물을 보러오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곳이다. 동물원은 살아있는 동물을 보며 소통과 치유를 할 수 있는 셀프힐링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동물원으로 출근한다.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행복을 위하여, 그리고 동물을 보러오는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김보숙 서울대공원 동물운영팀장
2013-11-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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