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부 동거녀 보는 데서 9살에게 물었다…“맞았니?” [강주리 기자의 K파일]

[단독] 친부 동거녀 보는 데서 9살에게 물었다…“맞았니?” [강주리 기자의 K파일]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0-06-11 15:33
수정 2020-06-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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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보호기관, 가해자와 피해아동 ‘별도 면담할 방법 없었다’ 말해”

5월 7일 병원서 경찰에 A군 학대 신고
충남아동보호기관, 가해자와 일정 조율해

신고 접수 6일 만인 5월 13일 가정 조사
닷새 뒤 5월 18일 ‘분리 필요 없다’ 결론
6월 1일 ‘가방 감금’ 뒤 4일 A군 사망
경찰 초동 대처·보호기관 조사 미흡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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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학대 여성이 3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3일 충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7시 25분께 천안 서북구 한 아파트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A군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20.6.3 뉴스1
9세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학대 여성이 3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3일 충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7시 25분께 천안 서북구 한 아파트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A군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20.6.3 뉴스1
지난 1일 충남 천안에서 친부의 동거녀(43)에 의해 7시간 넘게 여행 가방(가로 44㎝·세로 60㎝)에 감금됐던 9살 A군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됐다. A군은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몸에서 학대 정황을 포착한 의료진의 신고로 위기에서 구출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천안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가해자인 동거녀와 A군을 분리하지 않은 채 가정 방문 상담을 진행했고 ‘분리 불필요’ 결정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로 학교 대신 가정 면담 결정
따로 면담했으면 좋았겠지만 방법 없어”
11일 사건을 수사 중인 충남지방경찰청, 서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충남아보전은 A군을 면담하기 위해 가정을 찾아갔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면담 대신 가정 방문를 통해 조사가 이뤄졌다”면서 “아보전 말로는 따로 하는게 좋았겠지만 (가해자와 A군을) 별도 면담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버젓이 있는 집안에서 아이에게 학대 여부를 묻는 상담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지난 5월 당시 조사에서 A군의 아버지와 동거녀는 “지난해 10월부터 4차례에 걸쳐 아이를 때렸다”고 진술했다. 상습 폭행이 인지된 상황이었지만 아이를 외부로 데리고 나와 상담하는 등 적극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셈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통상 폭력의 피해자는 가해자와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서 상담을 진행한다. 이는 가해자가 있는 자리에서 피해자가 보복 등 후속 상황을 고려해 제대로 답변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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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학대여성이 10일 오후 충남 천안동남경찰서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0.6.10 뉴스1
9살 아이를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학대여성이 10일 오후 충남 천안동남경찰서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2020.6.10 뉴스1
“피해아동, 가해자와 완전 분리했어야”
집안 공간서 폭력 피해 설명 어려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자칫 (부모의) 잘못을 지적했다간 부모가 더 자신에게 화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한다”면서 “아동학대 신고가 된 상태에서 기관이 진지하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학교에서조차 아이들은 ‘선생님께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가정 폭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 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아이를 가해자로부터 심리적으로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해서 상담을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5일 병원 치료 후 아이를 집에서 데려갔고 7일 신고 때는 손바닥이 붓고 멍 든 정도라 긴급한 상황이라고 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A군의 몸 곳곳에는 오래된 멍과 상처가 발견됐고 허벅지에도 담뱃불로 데인 듯한 상처가 발견돼 상습 폭행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찰은 신고 다음날인 8일 아보전에 학대 상담을 의뢰했고 아보전은 동거녀 등과 상담시간에 맞춰 13일에야 현장에 나갔다. 아보전은 이후 18일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분리조치가 필요없다는 내용을 경찰에 전달했다. 이후 A군은 2주 만에 가방에 감금됐고 지난 4일 목숨을 잃었다.
5일 오후 충남 천안 백석동에서 학대 여성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지난 3일 숨진 9살 초등학생이 재학했던 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2020.6.5/뉴스1
5일 오후 충남 천안 백석동에서 학대 여성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지난 3일 숨진 9살 초등학생이 재학했던 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2020.6.5/뉴스1
경찰 “아동 말만 듣고 분리조치 안해”
“모든 상황 전반적 관찰 후 결정”
“아보전 체크리스트상 긴급성·응급성 안 요해”
아동권리보장원 “아보전 판단 결정적 역할”


경찰 관계자는 “아동 말만 듣고 분리조치를 하지 않는다. 9살 말을 어떻게 믿나. 모든 상황을 전반적으로 관찰한 후에 결정했다”고 전했다. 아보전의 ‘체크리스트’ 상에 긴급성과 응급성을 요하는 항목에 해당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경찰은 또 가해자인 동거녀가 정신질환, 약물중독, 난폭성 등을 드러내는 상황이 아니었고 아동에 대한 경제적 방임이나 조사에 비협조적인 자세가 아니어서 체크리스트에 따라 분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체크리스트는 ‘비공개’ 대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아동학대는 분리조사가 원칙이며 체크리스트에는 아이가 실제 맞았는지를 묻는 질문을 포함해 과거 폭행 여부 등 6하원칙에 따라 상세히 묻게 돼 있다”면서 “아이가 답변을 못할 경우 아보전에서 가해자와의 분리여부를 판단하는데 이는 경찰 판단의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피해아동 보호명령제로 분리했어야”
“살릴 수 있었는데 책임지는 자 없다”
전문가들은 A군의 죽음은 경찰의 안이한 초동 대처와 아보전의 아동학대 조사 실패 등 총체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의회 대표는 “피해아동 보호명령 제도를 통해 가해자를 격리했어야 했다”면서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고 아보전도 한 번 방문한 것이 전부다. 살릴 수 있는 아이를 죽였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 대표는 “아동학대신고가 됐는데도 이렇게 느슨하게 대처하다보니 가해자 입장에서는 ‘때려도 괜찮네. 별 게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천안아보전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거듭 전화했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5일 오후 충남 천안 백석동에서 학대 여성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지난 3일 숨진 9살 초등학생이 재학했던 초등학교에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2020.6.5/뉴스1
5일 오후 충남 천안 백석동에서 학대 여성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 지난 3일 숨진 9살 초등학생이 재학했던 초등학교에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2020.6.5/뉴스1
전문가 “가벼운 폭력 감지 시스템 필요”
“고위험군, 일회성 아닌 추적 관찰해야”
곽 교수는 “폭력은 한번 시작하면 점점 수위가 높아지기 때문에 가벼운 폭력도 감지하는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면서 “가구 조사를 기반으로 이혼·재혼·가출·다자녀·저소득 가정 등 아동학대 고위험군을 잘 모니터링해 위험이 감지되면 일회성이 아닌 끝까지 추적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이어 “아동학대 조사는 어설픈 개입이 아닌 부모와 아이의 심리 등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면서 “학교에서 교사 교육과 부모 면담을 활발히 하고 제3자 관찰을 통해 피해 아동을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경찰과 아보전에서 아동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 이후에 학대가 더 심해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가해자가 조사 업무를 방해하거나 보호처분 확정 이후 이행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소극적으로 집행되거나 관련 법을 잘 모르는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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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학대 여성이 3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3일 충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7시 25분께 천안 서북구 한 아파트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A군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20.6.3 뉴스1
9세 아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학대 여성이 3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3일 충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7시 25분께 천안 서북구 한 아파트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A군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20.6.3 뉴스1
“아이가 당한 것과 똑같이 처벌해달라”
온라인커뮤니티 애도와 분노
“아동학대 신고자 신변 보호하고
학대 방관자 처벌 대폭 강화해야”
10월부터 유치원·학교 아동학대 신고 의무화


온라인커뮤니티에는 A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아이가 당한 폭력과 똑같은 수준으로 동거녀를 처벌해달라”, “살인죄에 준해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등 엄중한 법적 처벌을 해달라는 글들이 잇달았다. 또 학대 정황이 주변에 잘 알려지지 않는 점을 감안해 가해자의 신상공개, 전자발찌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글들도 이어졌다. 동거녀뿐 아니라 ‘학대 상황을 몰랐다’며 방치한 아버지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글들도 올라왔다.

경찰은 A군을 감금한 40대 동거녀를 지난 10일 아동학대치사죄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동거녀가 직접 119에 신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점을 감안했지만 검찰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곽 교수는 “아동학대 방관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면서 “영국은 ‘왕따’처럼 보고도 묵인하는 경우 3개월간 구속도 가능하다. 학대 신고자에 대한 개인 신변을 보호하고 학교 신고 의무화 등 관찰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오는 10월부터는 모든 유치원, 초등학교의 장과 종사자가 아동학대 의심시 즉시 수사당국 등에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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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주리 기자의 K파일은 강주리 기자의 이니셜 ‘K’와 대한민국의 ‘K’에서 따온 것으로 국내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취재파일입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사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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