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든, 밤이든 늘 해랑 사는 집 [건축 오디세이]

낮이든, 밤이든 늘 해랑 사는 집 [건축 오디세이]

입력 2022-10-23 17:22
수정 2022-10-24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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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경기 분당 운중동 ‘늘해랑’

지구를 이롭게 하는 ‘패시브 주택’
첨단 단열·기밀·환기장치 시공
열 손실 막고 외부 세균은 차단
난방비·전기료 걱정 없이 쾌적

단조롭지만, 햇살 담은 포근한 집
지하실로 들어와 씻은 후 환복
회랑 구조는 중정·소정원 변주
공간마다 ‘사계절 풍경화’ 감상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건축
기술·디자인 다 잡는 권재희 대표
“건축은 물질 넘어 인간 본성 존중
합리성·美의 균형, 끝까지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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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 사각형의 기본적 도형으로 담백하게 이뤄진 집. 태초부터 있어 왔고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나의 고향, 그것이 집이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삼각형, 사각형의 기본적 도형으로 담백하게 이뤄진 집. 태초부터 있어 왔고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나의 고향, 그것이 집이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날씨와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우리의 일상에 파고든 지 오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공기의 질을 걱정하며 살게 됐다. 황사,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농도를 신경써야 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늘 맑은 공기 속에 지낼 수 있으면서도 난방비와 전기료 걱정도 없는 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패시브 주택은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하지만 지구환경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지켜 줄 대안으로 꼽힌다.

패시브 주택은 태양의 열과 빛을 최대한 실내로 끌어들여 따뜻해진 실내 온도를 외부에 빼앗기지 않고 오래 유지하도록 지어진 집이다. 단열에 충실하다 보니 디자인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에 새로 지어진 ‘늘해랑’은 시공 기술 면에서 패시브 주택의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디자인적으로 개성과 완성도를 추구해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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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을 따뜻하게 비추는 석재 울타리. 주택 앞이 공영주차장이라 건물 내부는 감추면서도 마을엔 따뜻한 등불이 돼 준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마을길을 따뜻하게 비추는 석재 울타리. 주택 앞이 공영주차장이라 건물 내부는 감추면서도 마을엔 따뜻한 등불이 돼 준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 초기 비용 30% 더 들지만 만족 100%패시브 주택 설계 10년차 건축가 권재희 대표(목금토건축사사무소)는 “패시브 요소 기술이 적용돼야 하기 때문에 초기 건축비는 일반 주택 건축비보다 30% 정도 증가하지만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고, 살면서 느끼는 쾌적함이 주거에 대한 만족감을 높인다”며 “초기 비용 부담만 감수한다면 패시브 주택은 건강에 좋고 지구환경에도 이로운 집”이라고 강조한다.

패시브 주택의 패시브(passive)는 수동적이라는 뜻으로 단열, 기밀, 건물의 형태 및 건물 배치 등 수동적 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단열 작업은 열의 손실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고, 기밀 작업은 외부의 찬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집의 모든 틈새를 완벽하게 막는 것이다. 일반적인 주택에서는 15㎝ 정도 두께의 단열재를 사용하지만 패시브 주택의 단열재는 20~25㎝로 두껍게 설치한다. 기밀성 확보를 위해선 창호 주변, 환기구 등 공기가 드나들 만한 부분에 특수하게 제작된 기밀테이프를 안팎으로 부착한다. 천장과 벽면이 만나는 지점과 같이 단열과 기밀이 끊어지기 쉬운 부분에는 콘크리트로 특수하게 제작된 열교차단 장치를 설치한다. 아르곤 처리된 삼중 유리를 부착한 시스템 창호는 패시브 주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패시브 주택에서 단열과 기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환기다. 패시브 주택에서는 열회수 환기장치를 이용한다. 창문을 열지 않고도 오염된 실내 공기를 배출시켜 환기하고 필터를 통해 깨끗한 공기를 실내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일반적인 환기장치와 다른 점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공기가 그대로 들어오지 않고 배출되는 공기의 열을 회수해 실내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겨울이나 여름에 냉난방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도 쾌적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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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와 별채는 마당을 통해 서로 마주 보인다. 수채화의 겹침처럼 두세 공간이 겹쳐 보이는 효과를 낸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본채와 별채는 마당을 통해 서로 마주 보인다. 수채화의 겹침처럼 두세 공간이 겹쳐 보이는 효과를 낸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 코로나로 패시브 주택 미래도 보여줘권 대표는 “과도한 에너지 소비로 인한 지구온난화, 이로 인한 종의 다양성 파괴 등 거시적 관점에서 패시브 주택에 접근하는 것은 경제성을 먼저 따지는 우리의 건축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며 “요즘 들어 어떤 건축이 환경·건강·쾌적성에 적합한가를 고민하고 찾는 건축주가 많아졌고, 그 가치를 알게 되면서 패시브 주택의 수요 또한 점차 늘어 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운중동 단독택지 단지 안에 자리한 신축 주택 ‘늘해랑’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의 삶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경험을 한 시기에 계획됐다. 현재 공동주택(아파트)에 거주하는 건축주는 코로나를 거치며 위생과 집의 기능에 대해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됐고 패시브 주택을 선택하게 됐다. 338.5㎡(약 100평)의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진 집은 주거에 대한 생각의 변화와 패시브 주택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건축주는 외부의 세균을 집안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동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 단순한 구조에 건축주 취향 적극 반영패시브 주택은 열 손실을 최소화하고 기밀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단조로운 디자인이 특징이지만 권 대표는 건축주의 희망과 취향을 디자인에 최대한 반영했다. 내부 동선과 활동 공간의 배치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집은 지하주차장을 통해 들어와 외출복을 벗은 뒤 바로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동선으로 만들어졌다. 지하층에 커다란 신발장과 드레스룸을 설치했다. 지하 보일러실에는 보일러 외에 열회수 환기장치가 설치돼 있다.

“뒤로는 산이 있고 앞에는 운중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에 남향인 최고의 자리이지만 택지지구의 모퉁이에 있는 대지는 남, 동, 북 3면이 도로에 면해 있고 서쪽 측면도 의무적 공공용지여서 결과적으로 도로로 둘러싸인 섬 같은 위치입니다. 앞의 공터에도 공공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이라 건축주의 프라이버시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했습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내부 공간들을 회랑식으로 배치했다. 회랑으로 막힌 집에 채광과 통풍을 제공하기 위한 중정을 만들었고 1층과 2층의 공간에도 소정원을 꾸몄다. 회랑으로 인해 만들어진 정원은 햇빛이 담기는 그릇이 된다. ‘늘해랑’은 햇빛을 가득 담고 있다는 뜻에서 건축주가 지은 이름이다.

“중정에 나무들이 자리를 잡으면 집안에 녹음이 드리울 것입니다. 사계절이 담기는 모습은 살아 있는 액자가 될 거예요. 1층 소정원은 빛 우물 역할을 하며 따뜻한 감성을 부여해 줄 것입니다. 집안에 들어서는 가족에게 어서 오라고 인사를 건네듯이 말이죠. 소정원들은 채광, 녹음, 통풍의 역할 외에 공간의 중첩으로 수채화의 겹칠과 같이 두 공간이 겹쳐 보이는 효과를 낼 것이고요.”

남쪽 코너에 위치한 계단을 올라 집으로 들어가면 중정을 지나 맞은편이 현관 입구다. 중정을 향해 넓은 창이 나 있는 거실과 부엌, 다이닝룸으로 연결된다. 왼쪽으로 건축주의 집무실 겸 서재인 별채가 있다. 별채에는 중정을 향해 접이식 문을 달아 놓았다. 권 대표는 “가족들의 공간은 분리되기도 하고 같은 공간에 있기도 한 것처럼 느끼도록 설계했다”면서 “별채에서 일하는 남편을 집안에 있는 아내가 바라보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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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주방에 이르는 동선은 대지의 높낮이에 맞춰 배치해 천장고의 높낮이가 자연스럽게 변하도록 했다. 음악처럼 공간의 볼륨이 변하는 즐거움이 있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거실에서 주방에 이르는 동선은 대지의 높낮이에 맞춰 배치해 천장고의 높낮이가 자연스럽게 변하도록 했다. 음악처럼 공간의 볼륨이 변하는 즐거움이 있다.
박영채 작가 ·권재희 건축가 제공
● 층별 다른 빛 농도 생각하며 공간 설계권 대표는 창을 계획할 때 공간마다 다른 농도의 빛을 머금기를 상상하며 설계한다. 1층의 화장실에서는 작은 정원이 보이기 때문에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화장실을 쓸 수 있다. 회랑으로 만들어진 긴 복도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갤러리가 될 것이다. 중정 쪽으로 한지 창호의 효과를 낸 미닫이문을 아래쪽에 배치해 은은한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창문을 열면 부엌에서 일을 하면서도 사계절이 변화하는 정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패시브 주택을 기술적으로만 설계하는 것은 인공지능(AI)이 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집은 ‘기계’이지 인간의 생각과 감성을 담아낼 수 있는 ‘건축’은 아닙니다. 주택 설계는 개인의 우주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패시브 주택을 할 때도 건축이라는 본연의 가치를 지키려 합니다.”

소정원은 2층의 욕실과 안주인의 취미공간 사이에도 있다. 대학생인 이 집 아들의 방은 복층 구조다. 아래층에서 중정을 바라보며 공부하다가 다락방 침실에서 뒹굴뒹굴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햇살이 가득하고 다양한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는 집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디자인이 들어갈수록 기밀성과 단열 작업이 까다롭기 때문에 패시브 주택에선 이런 디자인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늘해랑’은 개별적인 공간들이 질서와 아름다움 속에 조화롭게 배치돼 있으면서도 단열과 기밀 면에서 한국패시브건축협회의 인증 기준을 모두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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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희 건축가.
권재희 건축가.
● 수요·시장 점점 커져 합리적 선택 가능권 대표가 패시브 주택을 처음 설계한 것은 2012년이다. 지난 10년 동안 일반인들도 패시브 건축물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또 수요에 맞게 시장이 성장한 덕분에 이제는 합리적 가격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재가 많아져 패시브 주택으로의 진입이 훨씬 쉬워졌다. 다년간의 경험이 쌓인 권 대표는 기술과 디자인 면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에 출품해 입상한 은평패시브 주택(2020년)에서는 한국패시브건축협회 연구진 및 철강업체와의 긴밀한 협조로 철재 마감을 사용한 패시브 건물을 완성했다.

권 대표는 “내가 지향하는 건축이 에너지 측면에서만 본다면 불합리한 부분이 있겠지만 건축은 물질을 넘어서는 인간의 본성의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좋은 디자이너라면 기술과 아름다움, 이 두 가지를 포기하지 말고 지치지 않고 끝까지 풀어내려는 근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함혜리 칼럼니스트
함혜리 칼럼니스트
함혜리 칼럼니스트
2022-10-2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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