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2주년 기획] 佛 망명 25년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인터뷰

[창간 102주년 기획] 佛 망명 25년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인터뷰

함혜리 기자
입력 2006-07-21 00:00
수정 2006-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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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빌리지(프랑스 디우리볼) 함혜리특파원|“분단이 되어 있어도 평화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중남부의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플럼빌리지에서 만난 틱낫한 스님. 한반도 분단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통일에 집착하지 말라.”고 답했다. 열여섯살에 불가에 입문해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팔순의 노스님. 스님은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면서 “조건을 붙이지 말고 도움 주는 자체에 최선을 다한다면 이로써 충분히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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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
틱낫한 스님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 스님은 전쟁반대 운동을 펼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귀국을 금지당한 뒤 1982년부터 프랑스로 망명했다.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뼈져리게 체험했을 스님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과제인 통일에 연연하는 대신 미래의 주인공이 될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갖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플럼빌리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진 것처럼 남북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갖도록 플럼빌리지에서 만남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반도는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분쟁과 갈등에서 벗어날 방법은.

-통일에 집착하지 말라. 통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생각도 갖지 마시오. 분단된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조건 달지 말고 북한에 도움을 주시오. 식량이든, 의약품이든…작은 힘이 모여 큰힘이 되듯이 통일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비정치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한다면 통일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왜 굳이 젊은이들인가.

-젊은이들은 마음이 순수하고, 여유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미래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아픈 과거의 상처 때문에 쉽게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북의 젊은이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위해 여러차례 만남의 장을 만들었다. 오랜 세월동안 갈등관계인 두 지역의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함께 대화하고, 평화 속에 생활하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플럼빌리지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평화로운 통일의 시작이다. 마음을 열고 얘기를 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믿음을 갖고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가운데 서로의 아픔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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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이 플럼빌리지의 자두나무 그늘 아래서 수련회 참가자들과 좌선한 채로 명상을 하고 있다. 플럼빌리지 함혜리특파원 lotus@seoul.co.kr
틱낫한 스님이 플럼빌리지의 자두나무 그늘 아래서 수련회 참가자들과 좌선한 채로 명상을 하고 있다.
플럼빌리지 함혜리특파원 lotus@seoul.co.kr


▶평화란 무엇인가.

-이론적인 질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곳 생활을 보고 들은대로 전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플럼빌리지에서는 오직 ‘평화’ 속에서 말하고, 듣고, 식사하고, 걷고, 일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순간순간의 평화를 접하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한 미소를 되찾을 것이다.

▶이곳 스님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이곳 스님들은 개인 재산이 아무것도 없다. 개인 계좌도, 자동차도, 인터넷도 모두 공동체에 속해 있다. 서열도 없다. 함께 일하고, 수행하면서 형제애, 자매애 속에 생활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산다. 이것이 행복이다. 나는 돈도, 권력도 없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자유롭다. 수행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가장 큰 행복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행복은 얼마나 마음이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다.

▶‘깨어 있는 마음(정념)’은 왜 중요한가.

-우리는 매일 깨달음을 얻고 닦아야 한다. 그 첫번째 수행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다. 삶이란 오직 찰나의 이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붓다께서 가르치셨다.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머무르면 힘과 지혜는 자연히 따라온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깨어 있는 마음’이다. 깨어 있는 마음을 통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깨어 있는 마음’을 꾸준히 수행한다는 것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lotus@seoul.co.kr



수행 공동체 ‘플럼 빌리지’

|플럼빌리지 함혜리특파원|틱낫한 스님과 인터뷰 계획을 세우고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것은 5월 초였다. 연결을 시도했지만 전화연결은 번번이 실패했고, 메일은 답장이 없었다. 포기 상태에 있던 5월 마지막주 연락이 왔다. 틱낫한 스님의 제자이자 40여년을 늘 함께하며 스님을 돕고 있는 찬콩 스님이었다.

찬콩 스님은 “인터뷰를 할 수는 있지만, 곧바로 할 수는 없다.”면서 플럼빌리지의 생활을 경험하고 있으면 그때 봐서 적당한 시간을 잡아 주겠다고 했다. 최소 일주일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3박4일로 줄여서 방문시기(6월 15∼18일)를 잡았다. 럼빌리지(www.plumvillage.org)는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에 정착한 뒤 찬콩 스님을 비롯한 제자들과 함께 24년 전인 1982년에 세운 수행 공동체다. 틱낫한 스님의 불교적인 신념과 철학을 구체화한 플럼빌리지는 윗마을, 아랫마을, 새마을 등 세개의 마을로 되어 있으며 스님들이 함께 수행을 한다. 수련회 때 윗마을에는 남자, 아랫마을과 새마을에는 여자들이 머문다.

오전 10시45분 기차로 파리를 떠나 나흘간 머물 숙소(시골집)에 도착한 때는 오후 4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파리를 떠난 지 5시간여만에 바뀐 것은 풍경뿐이 아니었다. 플럼빌리지에 도착한 순간 분주함과 들뜬 마음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드넓은 밀밭과 포도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자동차가 간간이 지나갈 뿐 사람 구경하기 힘든 그런 한적한 시골에 있는 불교수행 공동체였다. 플럼빌리지를 방문했을 때는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등지에서 찾아온 수련회 참가자가 780명이나 됐다. 불교도들이 대종을 이뤘지만 목사님도, 수녀님도, 유대교도들도 있었다.

생활은 단순하지만 명상과 수행을 충실하게 하도록 짜여져 있다. 호흡과 걸음에 마음을 집중하고 숨을 들이 마시며 두세 걸음 걷고, 내쉬며 두세 걸음 걷는다(걷기 명상). 식사는 우주에 감사하면서 말없이 한다(식사 명상). 저녁식사 후 다음날 아침 법문 시작 전까지 침묵을 지킨다(침묵 수행). 이런 명상과 수행은 다른 수행자와 함께 있되 각자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도록 해준다. 이른 아침의 법문과 수련회 참가자들과 함께 하는 걷기 명상을 통해서 멀리서만 바라보던 틱낫한 스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은 플럼빌리지에 온 지 사흘째 오후에 이뤄졌다.

lotus@seoul.co.kr
2006-07-2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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