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이광춘 여사가 12일 별세했다. 96세.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 10월30일 일본인 중학생이 당시 광주여고보에 재학 중이던 이광춘과 박기옥 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이에 항의하던 광주고보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은 이후 11월3일 학생독립운동 형식으로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 여사도 광주여고보 학생들을 주도해 시위운동에 참가했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석방됐다.
이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광주학생 시위가 다시 추진됐고, 이 소식이 퍼져 전국적으로 학생 시위가 일어나게 됐다. 이 여사는 다시 광주여고보를 중심으로 학생시위를 계획했고, 1930년 1월13일 시험시간 중 교단으로 뛰어 올라가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험을 거부하자고 이끄는 등 ‘백지동맹’을 주도했다. 이 여사는 이로 인해 퇴학처분을 받고 다시 일경에 체포돼 갖은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이 여사의 공훈을 기려 1996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임장규씨 등 5남3녀. 빈소는 광주보훈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11시30분. (062)973-9166.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 10월30일 일본인 중학생이 당시 광주여고보에 재학 중이던 이광춘과 박기옥 학생을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이에 항의하던 광주고보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은 이후 11월3일 학생독립운동 형식으로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 여사도 광주여고보 학생들을 주도해 시위운동에 참가했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석방됐다.
이후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광주학생 시위가 다시 추진됐고, 이 소식이 퍼져 전국적으로 학생 시위가 일어나게 됐다. 이 여사는 다시 광주여고보를 중심으로 학생시위를 계획했고, 1930년 1월13일 시험시간 중 교단으로 뛰어 올라가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험을 거부하자고 이끄는 등 ‘백지동맹’을 주도했다. 이 여사는 이로 인해 퇴학처분을 받고 다시 일경에 체포돼 갖은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이 여사의 공훈을 기려 1996년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임장규씨 등 5남3녀. 빈소는 광주보훈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11시30분. (062)973-9166.
2010-04-13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