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구명 협상’ 美외교가 큰 별 지다

‘DJ 구명 협상’ 美외교가 큰 별 지다

김규환 기자
입력 2017-05-28 22:26
수정 2017-05-2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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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별세

‘미국 외교가의 큰 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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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가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앞줄 왼쪽)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6일(현지시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미 카터(앞줄 가운데)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웠던 1979년 브레진스키의 모습. AP 연합뉴스
미국 외교가의 ‘브레인’으로 꼽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앞줄 왼쪽)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6일(현지시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미 카터(앞줄 가운데)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웠던 1979년 브레진스키의 모습.
AP 연합뉴스
브레진스키 전 보좌관의 딸 미카 브레진스키는 이날 자신이 진행하는 MSNBC ‘모닝 조’에서 “가장 영감을 많이 주고 딸에게 더없이 헌신적이었던 아버지가 버지니아의 한 병원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94) 전 국무장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92) 전 안보보좌관과 함께 미국의 3대 외교 ‘브레인’으로 꼽히는 고인은 1970년대 미 외교의 큰 그림을 그린 전략가였다. 1928년 폴란드 귀족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와 독일,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소련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캐나다에 정착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76년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다.

1978년 강경 대치하던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를 중재하면서 중동평화 협상을 이끌어 냈고, 같은 해 미·중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해 중국 베이징을 찾아가 카터 행정부의 뜻을 전달했다.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대응도 그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1980년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명을 위한 협상을 주도하는 등 한국 민주화에도 이바지했다.

브레진스키는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앞세운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특히 1997년 발간한 역저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각국이 치열한 수 싸움을 펼치는 ‘체스판’에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포스트 냉전시대에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체스판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2년 내놓은 ‘전략적 비전’에서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크게 의존하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예견한 바 있다.

브레진스키는 현실적인 접근의 외교 정책을 추진했으며 옛 소련과 관련해서는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브레진스키에 대해 키신저와 함께 “소련을 불신하는 마음을 지닌 외교정책의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했다. 퇴임 후에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과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로 재직하면서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2017-05-2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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