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에서 8선 정치인으로” 조성준 캐나다 시의원

“환경미화원에서 8선 정치인으로” 조성준 캐나다 시의원

입력 2015-10-22 17:06
수정 2015-10-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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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세로 전세계 한인이민사에서 유일... 세계한인정치인 포럼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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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은 자기희생을 해야 하고, 서민을 진심으로 챙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며, 최소 10년 이후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9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시의원에 당선한 이래 내리 8선을 기록하며 24년째 의정 활동을 하고 있는 조성준(레이먼드 조·사진, 79) 시의원은 ‘정치인인 갖춰야 할 3가지 덕목을 꼽아 달라’는 첫 질문에 ‘희생’, ‘사랑’, ‘비전’이라고 답했다.

21일부터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한인정치인포럼에 참가하는 조 시의원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얼굴빛이 젊은이 못지않게 생기가 돌았다. 항상 웃는 얼굴로, 누구든 포용할 듯한 몸에 밴 제스처와 함께 말투도 강약 조절을 해가면서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관록의 정치인임을 보여준다.

토론토 42선거구(스카버러-루즈리버)에 출마해 8선에 당선한 그는 유권자 8만 명 중 한인은 100명도 안 되는 지역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았다. 토론토 시의회는 물론 전 세계 한인 이민사에서 유일한 8선 한국인이다.

그는 2018년 치러질 선거에 출마할까. 아니면 정계 은퇴를 할까. 출마해 당선하면 9선이 된다. 가장 궁금했다.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아 있기에 깊이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출마해야죠. 도전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은퇴를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유권자들이 원하는데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유권자들은 ‘당신이 출마하면 이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선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구촌 온난화 현상 등 환경 변화에 관심이 있어 녹색당 후보로 연방의원에 출마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조 시의원은 이어 “정치인은 부패하면 끝이고, 정직을 무기로 높은 가치관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자신이 하는 도전이 결코 ‘노욕’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가 지역구민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뭘까.

“선거구민을 제 가족처럼 사랑해요. 정치는 저 위에 높이 있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노인과 대화하면 그들을 이해하고, 불편한 것이 없는지 보살펴 줘야 합니다. 다행히 제게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을 꼭 도와주어야 한다. 상대방이 한국인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가난하건, 부자건 공평하게 도와야 한다’고 늘 유언처럼 말해준 어머니가 있었기에 편하게 즐기면서 정치를 하고 있답니다.”

지치지 않고 열심히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뭔지 궁금했다. 그러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또 낙천적이고, 잘 웃는 것도 젊어지는 비결”이라면서 “집집이 발품을 팔면서 지역구민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건강 비결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토론토동물원 이사장직을 수락한 그는 하루 평균 10∼12시간씩 일하는 ‘일벌레’로 불린다.

그는 왜 정치인이 됐을까.

1961년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 그는 캐나다 이민관으로부터 ‘캐나다에 가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이민을 권유받아 태평양을 건넜다. 당시 이민관을 만나는 친동생의 통역을 맡았다. 캐나다 공식 이민이 시작하고 정확히 100번째 이민 신청을 해 1967년 3월 단돈 100달러를 들고 밴쿠버에 도착했다.

“그때 밴쿠버는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버스에서도 아시아인 옆엔 앉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대학원에 원서를 냈지만, 학비를 벌기 위한 직업을 잡기가 어려웠죠. 자신만만하던 청년 조성준은 바(bar)에서 접시닦이를 하는 초라한 이민자로 전락했죠. 첫 월급 40달러를 받았어요.”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학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낮에는 에드먼턴에 있는 석면 광산에서, 밤에는 술집에서, 새벽에는 바에서 악착같이 등록금을 벌었다.

학비 마련보다 더 그를 괴롭힌 것은 인종차별이었다. 그는 공부 대신 여행을 택했다. 첫 여행지는 토론토. 밴쿠버 도착 9개월 만에 대륙을 가로질러 토론토에 갔고, 그렇게 운명처럼 그곳은 평생 그의 보금자리가 됐다.

밴쿠버보다는 차별이 덜했지만, 직장 잡기가 쉽지 않아 병원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박사학위를 받으면 무시를 당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 아래 토론토대 대학원에 원서를 내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교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논문 제출만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충격적인 일이 터졌다. 바로 고국에서 박종철 물고문 치사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책을 접고,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재일동포 지문 날인 반대운동을 제시 잭슨 목사와 함께 펼치는 등 인권운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캐나다 한인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떠올랐고, 정치계에 몸을 담그는 계기가 됐다.

정계 입문이 쉽지는 않았다. 1988년 신민당의 권유로 연방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자유당 후보에게 밀려 보기 좋게 낙선했다. 하지만, 기회는 3년 뒤 다시 찾아왔다. 토론토 시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당선하는 쾌거를 이뤘다.

조 시의원은 시의원으로서 안 해도 될 일을 몇 가지 한다.

“처음 당선했을 때 이 사회에 무엇을 기여할까 생각해 봤어요. 그때 나무 심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인도 높은 가치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죠. 24년간 4만 4천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오래전 심은 나무는 밀림을 이뤄 현재 수목원이 됐어요.”

환경 보전과 함께 후배 양성도 그중 하나다. 6년 전 ‘글로벌 유스 리더스’를 조직해 고교생들의 리더십 함양을 위해 뛰고 있다.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에게 서머 캠프를 열어주거나 필리핀이나 자메이카로 함께 날아가 집을 짓는 봉사와 함께 에이즈 환자를 돌보기도 한다. 양로원을 방문해 자원봉사 기회를 제공하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국을 통해 캐나다 토론토로 넘어오는 탈북자들에게도 관심을 쏟는다. 재작년 15쌍의 탈북 난민 합동결혼식을 열어준 것을 비롯해 이들이 불법체류자로 신분이 바뀌어 한국으로 추방될 때도 앞장서 그들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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