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퇴임하는 고흥 인천지검장 “부서진 마음이 오는 것이구나”

[시선] 퇴임하는 고흥 인천지검장 “부서진 마음이 오는 것이구나”

한상봉 기자
한상봉 기자
입력 2021-06-09 13:59
수정 2021-06-0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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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인천지검장이 9일 오전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면서 직원들과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인천지검 제공]
고흥 인천지검장이 9일 오전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면서 직원들과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인천지검 제공]
“국민의 부서진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검찰이 되었으면 좋겠다.”

검찰 고위급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낸 고흥(51·사법연수원 24기) 인천지검장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를 인용힌 퇴임사를 남기고 검복을 벗었다.

그는 9일 인천지검이 공개한 퇴임사에서 “오늘 저는 지난 23년동안 걸어왔던 검사의 길에서 내려와 공직생활의 여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있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며 일부를 옮겼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후략)‘

고 지검장은 “저도 검사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사람이 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 줄 잘 몰랐다”면서 “사건 관계인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심한 언행을 할 때 일어나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 사람이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오는게 아니구나.일생이 오는 것이구나. 부서진 마음이 오는 것이구나’하는 깨달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눈으로 바라보니, 사람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며 “사건 관계인 뿐 아니라, 신임 검사나 수사관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검찰청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분 한 분이 그냥 오는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함께 온다고 생각하니 어느 누구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다 다짐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을 단순화하면 건물과 사람만 남는다”면서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조직이 검찰”이라고 강조했다. 또 “함께 일하는 동료를 가족처럼 귀하게 여기고, 국민의 부서진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검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검찰이 처한 현 상황을 감안한 듯 “이런 마음가짐으로 오직 바르게(正), 즉 공정(公正)하고, 엄정(嚴正)하며, 적정(適正)하게 법을 집행한다면 반드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지검장은 지난 달 27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급 인사 적체’를 지적하며 기수 파괴 인사를 예고하자, 나흘 뒤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사표를 냈다.

경기 수원 출신으로 수원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의정부지검 재직 당시 국가정보원 파견 검사로 근무했고,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서울고검 차장검사, 울산지검장 등을 지냈다.

이두봉(57·25기) 후임 인천지검장 취임식은 11일 열릴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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