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도 계속되리라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도 계속되리라

이두걸 기자
입력 2021-02-15 18:04
수정 2021-02-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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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운동 불쌈꾼’ 백기완 별세

한일협정 반대로 민주화 운동 전면 나서
YMCA 위장결혼 사건 등 수차례 옥고
92년 노동자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도
“김미숙·김진숙 힘내라” 병상 글귀 남겨

與 “민중의 벗” 野 “평등한 세상 일궈”
장례는 사회장… 19일 대학로서 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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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에 헌신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사진은 고인이 1992년 명지대 학생 강경대 열사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 중 사복 경찰관인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폭행당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권위주의적 통치로 회귀하던 당시 노태우 정권을 최대 위기로 몰아간 ‘5월 투쟁’이 벌어졌다. 민족사진연구회 제공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에 헌신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사진은 고인이 1992년 명지대 학생 강경대 열사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 중 사복 경찰관인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폭행당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권위주의적 통치로 회귀하던 당시 노태우 정권을 최대 위기로 몰아간 ‘5월 투쟁’이 벌어졌다.
민족사진연구회 제공
“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슴에 심어 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사상이고 이야기예요.”(2013년 4월 2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새벽 폐렴 투병 끝에 별세했다.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불쌈꾼(혁명가)이자 큰 어른으로 살아온 그는 민중의 장쾌한 수호자 ‘장산곶매’가 돼 하늘로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원담(성공회대 교수)·미담(화가)·현담(출판사), 아들 일(울산과학대 교수)씨가 있다.

90년 가까운 그의 삶은 외세의 압제와 분단, 군부독재 등 질곡의 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못 배우고 못 가진, 그리하여 배우고 가진 자들에게 압제받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앞서서 나가는’ 삶을 선택했다.

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이라고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인 데다 분단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지만 독학으로 통일 문제와 사회 모순에 대한 인식을 키워나갔다. 6·25전쟁 중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으나 ‘조국을 두고 나 혼자만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64년 함석헌·계훈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벌이며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 됐다. 장준하 등과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당시 옥중에서 썼던 시 ‘묏비나리’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는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해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직전에 사퇴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노동자 민중후보로 추대됐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막바지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송경동 시인은 “백 선생이 병상에서 쓰신 마지막 글귀는 ‘김미숙 어머니 힘내라’, ‘김진숙 힘내라’였다”고 전했다.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는 ‘노나메기’였다.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는 평소 지론답게 여러 권의 수필집과 시집을 냈다. 우리말 사랑도 남달랐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젊은 날’, ‘버선발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는 오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분향소 및 온라인 추모관(baekgiwan.net)도 운영한다. 발인일인 19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여야는 모두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우리가 누리는 평등한 세상은 고인의 덕분”이라 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21-02-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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