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출범 ‘김용균재단’ 김미숙 대표
‘김용균재단’ 대표를 맡을 김용균 엄마 김미숙씨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여사 뒤이어 ‘첫발’
그는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당시 24세)씨의 엄마다. 시민들의 기부금을 종잣돈 삼아 만들어진 이 재단은 산업재해를 막고, 비정규직 철폐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노회찬 인권과 평등상’을 수상한 김씨가 전액 기부한 상금 1500만원이 이 재단의 주춧돌이 됐다.
김씨는 23일 서울 영등포구 재단 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용균이가 죽은 이후 정작 중요한 것들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씨와 시민사회단체의 분투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다.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안 지킨 도급인의 처벌 수위는 애초 정부가 내놨던 안보다 낮아졌고 원청업체의 책임 범위도 축소됐다. 이후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개정 법률보다 훨씬 후퇴했다.
●“정부·국회 누구도 국민 위해 일하지 않아”
김씨는 “10개월 동안 깨달은 건 정부, 수사기관, 국회 그 어느 곳도 국민을 위해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끊임 없이 촉구하고, 행동하고, 지켜봐야만 미세한 변화라도 이룰 수 있다. 평범한 노동자이자 엄마였던 김씨가 투쟁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이유다.
김씨는 “죽음에 무관심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매년 산재 사망자는 2000여명. 김씨는 “한 노동자의 목숨은 본인이나 가족들에게는 세상의 전부인데, 어떤 사람들은 단순한 숫자 정도로 치부한다”면서 “여전히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더이상 개인으로서의 나는 없다”고 다짐했다. 잔인한 세상과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것만이 아들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이었다. 그는 “또 다른 죽음을 막고 반복되는 아픔에 연대하는 일을 하며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연대’와 ‘협력’이라는 두 가치를 기둥 삼아 재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아들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할 때 곁에 있었던 세월호 유족, 특성화고 산재 사망자 가족, 사회활동가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2월 한화 공장 폭발사고 당시 9명이 죽거나 다쳤는데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아 유가족이 힘겨워할 때 우리가 함께 연대했다”면서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합의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김용균재단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누더기가 된 산안법을 제대로 고치는 것은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위험의 외주화 금지, 그리고 인권이 있는 일터가 당연시되는 세상을 만들기까지 갈 길이 멀다. 김씨는 “용균이의 이름을 한 줄기 빛으로 만들어 다른 죽음을 막는 것이 내가 할 몫”이라 했다. “이 몫을 다하지 못하면 편히 죽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용균재단은 오는 26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세부 조직을 구성한다. 같은 날 열리는 출범대회는 모든 노동자와 시민에게 열려 있다.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 불법 대신 권리로 채워진 일터, 제2·제3의 김용균이 없는 세상을 향한 ‘시민운동가 김미숙’의 묵직한 첫걸음은 이제 시작됐다. 49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어머니 이소선 여사(1929~2011)의 헌신으로 헛되지 않았듯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김용균씨도 김미숙씨의 눈물과 투쟁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9-10-2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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