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별세]촉망받던 여성운동가, 무일푼 DJ와 결혼한 이유

[이희호 별세]촉망받던 여성운동가, 무일푼 DJ와 결혼한 이유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19-06-11 09:29
수정 2019-06-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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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해제에 따라 연금에서 풀려난 김대중 전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1979년 12월 8일 긴급조치 해제에 따라 연금에서 풀려난 김대중 전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늦은 밤,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여사는 생전에 왜 DJ와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유쾌하게 답했다. “잘생겼잖아요.”

두 사람의 결혼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화여전,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여성과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뒤 초등학생 두 아들이 딸린 빈털터리 야당 정치인의 사랑이었다. 누가 봐도 한쪽이 한참 기우는 만남이었다.

지난 2015년 한겨레가 연재한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에 따르면 이 여사와 DJ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에서 처음 만났다. 이 여사는 1·4 후퇴 때 서울 피란민을 배에 태워 돕는 일을 했는데 그 배의 주인이 당시 해운회사를 운영하던 DJ였다.

DJ는 이 여사를 “이지적인 눈매를 지닌 활달한 여성”으로, 이 여사는 “눈이 크고 핸섬한(잘생긴) 멋쟁이이자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것이 참 많은” 남자로 기억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모습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모습 1961년 5월 10일 두 사람은 이 여사의 외삼촌댁인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한옥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여사는 40세로 초혼이었고 38세의 김 전 대통령은 재혼이었다.
연합뉴스
두 사람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1961년 가을 재회했다. 첫 만남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여사가 39살, DJ가 37살이었다.

그 사이 이 여사는 미국 스칼렛 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DJ는 첫 부인 차용애씨와 사별했다. 쿠데타로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면서 야당 대변인이라는 직업까지 잃었다.

두 사람은 당시 YWCA연합회 총무로 있던 이 여사의 사무실 근처인 명동에서 자주 만났다. 보통 연애완 달랐다. 만나서 주로 정치상황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생각이 잘 통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의지했다.

회고록은 당시 두 사람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두 사람의 감정은 마른 장작의 불처럼 빠르게 타오른 것이 아니라 수묵화의 먹처럼 마음의 한지에 천천히 번졌다.”
젊은 시절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
젊은 시절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 1922년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1962년 고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해 정치적 동지로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했다. 사진은 젊은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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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은 이 여사가 DJ를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인 이유를 3가지로 분석했다.

남자로서의 매력, 해박한 지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 관용이 넘치는 사람 됨됨이 등이다.

그러나 이 여사가 DJ와의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도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이라는 DJ의 큰 꿈이 꺾이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이다.
차 마시며 담소 나누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차 마시며 담소 나누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1993년 8월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이희호 여사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 201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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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사와 DJ는 이듬해인 1962년 5월 10일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여사의 외삼촌 집이었고, 결혼반지도 이 여사가 마련했다.

신혼집은 DJ의 홀어머니와 아픈 여동생, 두 아들이 살고 있는 서대문구 전셋집이었다.

그렇게 이 여사는 ‘인동초’ DJ의 가시밭길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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