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자살’ 故이한빛PD 이름 딴 한빛센터 1년… “방송 스태프 디졸브 노동 여전”
16시간 노동 지키는 제작사는 30%뿐장시간 서서 일해 허리·척추질환 시달려
출퇴근하다 졸음운전 사고 이어지기도
“사전제작 늘려 12시간 노동 보장해야”
20년차 방송 스태프인 A씨는 23일 “지금은 그나마 오전 8시에 일을 시작해 현장에서 밤 12시에 끝나니 16시간씩 일하는 꼴”이라면서 “출퇴근시간을 빼면 쉴 시간이 없다”고 한숨지었다. 특히 드라마 촬영 후반부로 가면 쪽대본(촬영 직전 급히 나온 대본)에 시달리는데다 촬영 일수가 짧아져 밤샘 촬영이 많다고 했다. 새벽까지 일하고도 쉬지 못하고 아침부터 다시 일하는 ‘디졸브(두 개의 화면이 겹치는 영상 기법) 노동’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2016년 10월 열악한 방송 제작 환경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한빛 전 CJE&M PD의 뜻을 기리며 설립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한빛센터)가 24일 1주년을 맞는다. 이날은 이 전 PD의 31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한빛센터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제작사를 고소·고발하고 방송국과 면담해 스태프들의 노동인권 문제를 제기해 왔다. CJ 등 일부 제작사는 현장 스태프의 노동시간을 16시간(휴게시간 포함)으로 줄이는 등 조치를 내놨다. 기존에는 24시간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방송 노동자들은 “성과가 없지 않지만, 제작 현장의 환경은 여전히 비정상”이라고 꼬집는다. “촬영 기간 중 하루 16시간 근로를 조금이라도 지키는 곳은 30%뿐이고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완벽하게 지키는 곳은 아예 없다”는 지적이다.
19년차 조명 스태프인 B씨는 두 달 전 드라마 촬영을 떠올리며 살인적 스케줄을 설명했다. 그는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7시까지 서울 마포구 상암DMC로 출근했다. 버스를 타고 경기도 의정부 촬영 현장으로 이동한 뒤 8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정오까지 일한다. 점심을 먹으며 숨돌리는 것도 잠시뿐 2시 30분부터는 다시 경기 용인으로 이동해 작업하다가 밤 촬영을 위해 다시 경기도 백암면으로 옮긴다. 자정이나 돼야 모든 촬영이 끝난다. 그는 “하루 17시간을 일한 것인데, 집에 가 씻고 2시간 40분 눈 붙이고 다시 현장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몸 쓸 일이 많은 촬영 현장 스태프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린다. 오래 서서 일하다 보니 대부분 허리나 척추가 좋지 않다. B씨는 “졸린데 잠은 못 자게 하니까 서서 일하면서 존다”며 “출퇴근 시간에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당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방송 스태프 노동자들에게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시키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예전에는 방송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지정돼 연장근무를 제한 없이 시킬 수 있었지만, 지난해 3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법 적용 대상이 됐다.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는 7월부터 지상파 방송국 등 300인 이상 제작사는 법적으로 방송 스태프들의 주 52시간 노동을 지켜야 한다. 한빛센터 등은 제작사가 사전제작 비율을 높이는 등 제작 관행을 개선해 12시간 노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19-01-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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