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모씨 스토리/신발수출붐 타고 성장한 부산재벌

양정모씨 스토리/신발수출붐 타고 성장한 부산재벌

염주영 기자 기자
입력 1993-07-30 00:00
수정 1993-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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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부터 그룹되찾기 투쟁에 나서

5공화국 시절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부실 기업인으로 낙인 찍혀 기업을 빼앗긴 지 8년여.말못할 억울함을 삭이며 회한의 나날을 보내온 양정모 전국제그룹 회장은 헌재의 결정으로 명예회복과 함께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룹이 공중분해된 지난 85년 이후 양 전회장과 그 가족 및 국제그룹 직원들이 당한 수난은 엄청났다.양씨는 당시의 충격으로 몇차례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부인 김명자씨(68)도 악성 녹내장에 걸려 지난 87년 도미 치료를 희망했으나 정리할 기업들의 경영권 양도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국이 금지됐다.양씨는 할 수 없이 그 때까지 경영권을 고수하던 몇몇 기업들의 경영권을 일괄 양도한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조건으로 부인의 출국허가를 받았다.3남11녀의 자녀들중 장남은 그룹이 해체된 직후인 85년 가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졌고,나머지 자녀들의 활동도 자유롭지 못했다.3만8천여명에 달했던 국제그룹 직원들도 다른 기업으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직장을 잃거나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실의에 빠져 3년여의 세월을 보낸 양씨는 지난 88년부터 빼앗긴 기업과 더럽혀진 명예를 되찾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양씨는 『그룹 해체는 명백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인수회사인 (주)한일 합섬을 상대로 재산반환 청구소송을 냈다.그로부터 5년여동안 해체 당시의 임직원 10여명과 함께 「국제그룹 복권추진 위원회」를 만들어 법정투쟁을 전개했다.

양씨는 지난 47년 부산 범일동에서 부친이 경영하던 정미소 한켠에 고무신 공장을 차려 신발산업에 뛰어들었다.

두차례나 화재를 겪으면서도 국제고무공업사,진양화학 등을 설립해 공장규모를 키웠다.70년대 초반 신발수출붐을 타고 급성장,신발재벌로 부상했고 그후 철강·증권·단자·해운 등으로 기업영역을 확장했으나 권력 핵심부와의 마찰을 일으켜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았다.<염주영기자>
1993-07-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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