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혁명」으로 민주화장정 시작/미 외교 승리… 중미 좌익세력 큰타격/산디니스타 지지 군 향배가 변수로/새정부,경제난 타개 못할땐 도전 받을듯
25일 실시된 니카라과대통령선거에서 전국야당연합(UNO)의 비올레타 바리오스 데 차모로후보와 미국이 승리를 거두었다.
패배자는 지난 10여년동안 좌익 산디니스타정부를 이끌어 온 다니엘 오르테가후보와 중미의 좌익전체주의.
오르테가는 불과 선거 하루전만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를 훨씬 웃도는 큰 폭의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패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결과가 나온 뒤 정치관측통들은 차모로후보가 낙승을 거둘 만큼 산디니스타정권의 존립기반이 취약해져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산디니스타정권은 10여년동안 농지개혁ㆍ문맹퇴치ㆍ보건수준향상등에 적지않은 성과를 남겼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반군과의 내전과 그로인한 경제난으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경제난과 내전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산디니스타정권의 주장보다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차모로후보 승리의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키 어렵다. 미국은 인구 3백50만에 불과한 니카라과선거에 5백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차모로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극우로부터 극좌에 이르기까지 무려 13개정파가 모인 UNO와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차모로후보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선거캠페인을 벌일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지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유엔,미주기구,카터 전 미대통령이 중심이된 국제선거감시단 등의 선거감시활동도 산디니스타정권의 선거부정을 봉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은 국내외의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전대통령이 85년2월 『현 니카라과정부가 물러나지 않거나 반혁명세력에 항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정책목표는 니카라과의 현정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나 부시대통령이 니카라과를 「가든 파티장의 스컹크」라고 비유한데서 보듯이일관되게 산디니스타정권 제거를 목표로 삼아 왔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파나마를 무력침공,친미정권을 세운 것이나 니카라과에서 반군군사지원과 야당선거지원을 통해 친미정권을 세운것은 「미국의 뒷마당」중미에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반미정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읽게 해 준다.
1926년 농민군을 이끌고 미해병대를 물리친 아우구스트 세자르산디노(산디니스타라는 명칭은 산이노를 기념키 위해 붙여진 것)를 1934년 암살한 소모사를 지원하면서 미국은 46년간의 우익독재정권을 지원해 준 대가로 미국의 이익을 보호받아 왔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미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차모로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대중미 지배력은 일층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혁명노선을 추구해 온 중남미지역 좌익혁명세력은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들의 민중혁명노선이나 「선거를 통한 혁명」(칠레와 니카라과)노선이 모두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차모로정권이맞닥뜨려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난. 비록 내전과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때문이라고는 해도 산디니스타정권은 1인당 GNP 7백70달러(87년),실업률 25%,인플레 1천7백%,외채 57억달러(89년)의 피폐된 경제를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오는 4월25일 출범할 차모로정권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과 미국으로 빠져나간 전문인력의 재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모로정권은 콘트라와의 휴전,야당이 된 산디니스타와의 정쟁등 정치적ㆍ군사적 갈등을 풀어나가야 하고 13개 정파의 연합체인 UNO의 허약체질도 차모로의 정치적 약점이다.
콘트라반군의 경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기 때문에 휴전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반군의 귀환,정착문제는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산디니스타와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정권인수과정에서 공식명칭이 「산디니스타민중군」인 니카라과정부군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산디니스타에 의해 장악돼 있는 노동조합등 사회제세력과의 마찰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최대 단일야당이 될 산디니스타로부터의 정치적 도전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것인가 등등 풀기에 쉽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군이 선거를 통해 들어서는 정권에 제동을 걸기도 쉽지 않겠지만 차모로가 군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차모로정권이 빠른 시일내에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변화를 바란 국민과 군,산디니스타로부터의 도전은 거세어질 것이고 그럴수록 미국에 대한 차모로의 의존도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니카라과 최근 10년 일지
▲1979년 7월17일=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장군의 독재정권 전복.
▲7월19일=오르테가와 차모로를 포함,5인으로 구성된 국가재건평의회 마나과에 도착. 다당정부 구성.
▲1980년 4월19일=차모르 여사와 알폰소 로벨로,산디니스타정권 비난하며 평의회 위원직 사임.
▲1981년 3월4일=온건파들이 평의회에서 제거되고 오르테가가 부각.
▲4월1일=미정부,니카라과정부가 살바도르 반군을 지원한다며 경제원조 중단. 미국은 뒤이어 산디니스타를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을 공언.
▲1984년 11월4일=오르테가,집권당 산디니스타와 함께 총선에서 승리.
▲1985년 5월1일=미,니카라과가 중미지역에서 침략을 자행했다는 이유로 대니카라과 전면 금수 조치 단행.
▲1986년 8월13일=미상원,콘트라반군에 대한 1억달러의 원조를 가결함으로써 오르테가 정권과 「사실상의 전쟁선언」감행
▲1986년 후반∼1987년 초반=온두라스에 본거지를 둔 콘트라반군의 니카라과 침공 격화.
▲1987년 8월7일=중미 5개국 정상,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제의한 협상에 의한 무력분쟁 종결과 외국원조 중단에 의한 니카라과 평화안에 서명.
▲1989년 2월14일=오르테가대통령,중미정상회담에서 90년 2월25일까지 총선을 실시키로 하는 등의 니카라과 민주화조치를 발표.참가국들은 인접국들내 콘트라반군 기지들의 해체에 동의.
25일 실시된 니카라과대통령선거에서 전국야당연합(UNO)의 비올레타 바리오스 데 차모로후보와 미국이 승리를 거두었다.
패배자는 지난 10여년동안 좌익 산디니스타정부를 이끌어 온 다니엘 오르테가후보와 중미의 좌익전체주의.
오르테가는 불과 선거 하루전만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를 훨씬 웃도는 큰 폭의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패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결과가 나온 뒤 정치관측통들은 차모로후보가 낙승을 거둘 만큼 산디니스타정권의 존립기반이 취약해져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산디니스타정권은 10여년동안 농지개혁ㆍ문맹퇴치ㆍ보건수준향상등에 적지않은 성과를 남겼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반군과의 내전과 그로인한 경제난으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경제난과 내전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산디니스타정권의 주장보다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차모로후보 승리의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키 어렵다. 미국은 인구 3백50만에 불과한 니카라과선거에 5백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차모로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극우로부터 극좌에 이르기까지 무려 13개정파가 모인 UNO와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차모로후보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선거캠페인을 벌일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지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유엔,미주기구,카터 전 미대통령이 중심이된 국제선거감시단 등의 선거감시활동도 산디니스타정권의 선거부정을 봉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은 국내외의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전대통령이 85년2월 『현 니카라과정부가 물러나지 않거나 반혁명세력에 항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정책목표는 니카라과의 현정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나 부시대통령이 니카라과를 「가든 파티장의 스컹크」라고 비유한데서 보듯이일관되게 산디니스타정권 제거를 목표로 삼아 왔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파나마를 무력침공,친미정권을 세운 것이나 니카라과에서 반군군사지원과 야당선거지원을 통해 친미정권을 세운것은 「미국의 뒷마당」중미에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반미정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읽게 해 준다.
1926년 농민군을 이끌고 미해병대를 물리친 아우구스트 세자르산디노(산디니스타라는 명칭은 산이노를 기념키 위해 붙여진 것)를 1934년 암살한 소모사를 지원하면서 미국은 46년간의 우익독재정권을 지원해 준 대가로 미국의 이익을 보호받아 왔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미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차모로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대중미 지배력은 일층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혁명노선을 추구해 온 중남미지역 좌익혁명세력은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들의 민중혁명노선이나 「선거를 통한 혁명」(칠레와 니카라과)노선이 모두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차모로정권이맞닥뜨려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난. 비록 내전과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때문이라고는 해도 산디니스타정권은 1인당 GNP 7백70달러(87년),실업률 25%,인플레 1천7백%,외채 57억달러(89년)의 피폐된 경제를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오는 4월25일 출범할 차모로정권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과 미국으로 빠져나간 전문인력의 재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모로정권은 콘트라와의 휴전,야당이 된 산디니스타와의 정쟁등 정치적ㆍ군사적 갈등을 풀어나가야 하고 13개 정파의 연합체인 UNO의 허약체질도 차모로의 정치적 약점이다.
콘트라반군의 경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기 때문에 휴전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반군의 귀환,정착문제는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산디니스타와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정권인수과정에서 공식명칭이 「산디니스타민중군」인 니카라과정부군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산디니스타에 의해 장악돼 있는 노동조합등 사회제세력과의 마찰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최대 단일야당이 될 산디니스타로부터의 정치적 도전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것인가 등등 풀기에 쉽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군이 선거를 통해 들어서는 정권에 제동을 걸기도 쉽지 않겠지만 차모로가 군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차모로정권이 빠른 시일내에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변화를 바란 국민과 군,산디니스타로부터의 도전은 거세어질 것이고 그럴수록 미국에 대한 차모로의 의존도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니카라과 최근 10년 일지
▲1979년 7월17일=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장군의 독재정권 전복.
▲7월19일=오르테가와 차모로를 포함,5인으로 구성된 국가재건평의회 마나과에 도착. 다당정부 구성.
▲1980년 4월19일=차모르 여사와 알폰소 로벨로,산디니스타정권 비난하며 평의회 위원직 사임.
▲1981년 3월4일=온건파들이 평의회에서 제거되고 오르테가가 부각.
▲4월1일=미정부,니카라과정부가 살바도르 반군을 지원한다며 경제원조 중단. 미국은 뒤이어 산디니스타를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을 공언.
▲1984년 11월4일=오르테가,집권당 산디니스타와 함께 총선에서 승리.
▲1985년 5월1일=미,니카라과가 중미지역에서 침략을 자행했다는 이유로 대니카라과 전면 금수 조치 단행.
▲1986년 8월13일=미상원,콘트라반군에 대한 1억달러의 원조를 가결함으로써 오르테가 정권과 「사실상의 전쟁선언」감행
▲1986년 후반∼1987년 초반=온두라스에 본거지를 둔 콘트라반군의 니카라과 침공 격화.
▲1987년 8월7일=중미 5개국 정상,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제의한 협상에 의한 무력분쟁 종결과 외국원조 중단에 의한 니카라과 평화안에 서명.
▲1989년 2월14일=오르테가대통령,중미정상회담에서 90년 2월25일까지 총선을 실시키로 하는 등의 니카라과 민주화조치를 발표.참가국들은 인접국들내 콘트라반군 기지들의 해체에 동의.
1990-02-2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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