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베니싱’

[영화리뷰] ‘베니싱’

입력 2011-04-01 00:00
수정 2011-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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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 사라진 스릴러

대정전이 있던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나선 채널 7의 TV 리포터 루크(헤이든 크리스텐슨)는 거리 곳곳에 허물처럼 벗겨진 옷가지와 안경, 주인을 잃고 버려진 자동차들을 보게 된다. 마치 사람들이 한꺼번에 증발한 듯한 광경에 루크는 충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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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후 그는 암흑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발전기를 돌려 스스로 빛을 내는 7번가 술집을 찾아낸다. 불빛을 보고 찾아드는 나방처럼 생존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영사기사 폴(존 레귀자모), 물리치료사 로즈마리(탠디 뉴턴), 술집 바텐더의 아들인 제임스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대정전 당시 손전등이든 라이터든 그들을 지켜주던 빛이 있었다는 점이다.

31일 개봉한 ‘베니싱’(원제: Vanishing On 7th Street·7번가에서 사라지다)은 ‘잃어버린 식민지’로 불리는 로어노크 식민지 실종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1585년 로어노크섬(지금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북미 대륙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건설됐다. 개척을 주도한 존 화이트는 영국에서 식량과 물품을 조달받아 3년 만에 돌아왔지만 100여명의 주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종의 영구 미제 사건인 셈.

재난의 원인이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점, 그 원인을 파헤쳐 나간다는 대목에서 인도 출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해프닝’(2008)을 떠올리게 한다. 곳곳에서 인간의 죄악에 따른 재앙임을 암시하는 등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비슷하다. 죽음의 매개체가 바람(‘해프닝’)에서 어둠(‘베니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거스를 수 없는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사투는 극도의 긴장감을 안겨주기 마련. 영화 초반부에는 과감한 생략으로 제법 긴장감 있는 스릴러의 면모를 풍긴다. 특히 암흑이 세상을 삼키려고 스멀스멀 다가서는 모습은 관객의 머리끝을 찌릿하게 만든다.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게 전부라는 것. ‘왜’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도 없다. 후반부로 갈수록 짜임새는 헐거워지고, 평탄한 이야기에 지루해진다. 기차를 타고 창밖을 아무리 둘러봐도 똑같은 풍경만 펼쳐지는 평야지대를 지나가는 느낌이다.

브래드 앤더슨 감독은 미국 드라마 ‘프린지’의 에피소드를 맡아 미스터리를 주무르는 솜씨를 발휘했던 터. 하지만 91분의 상영시간은 그에게 버거워 보인다.

주인공 루크 역을 맡은 크리스텐슨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에서 다스베이더의 젊은 시절을 맡아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던 배우. 하지만 ‘어웨이크’(2007), ‘점퍼’(2008)에 이어 또 한번 고만고만한 상업영화에서 헛심만 뺐다. ‘미션 임파서블 2’(2000)의 탠디 뉴턴이나 ‘물랑루즈’(2001)의 존 레귀자모처럼 능력 있는 배우들도 극 중 배역만큼이나 무기력하다. 12세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1-04-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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