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목수, 흙으로 짓다, 흙건축학개론

처녀목수, 흙으로 짓다, 흙건축학개론

입력 2012-09-23 00:00
수정 2012-09-2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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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것이 귀한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한결같다. 한결같은 것이 아름답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흙이다. 사람이 없었을 그 언젠가부터, 사람이 없어질 그 언젠가까지 흙은 우리 곁에 있다. 흙은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안식처다.

흙으로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왜 하필 흙으로 짓느냐고 묻자, 그 오랜 시간 흙으로 집을 지은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그 기억을 잊었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흙으로 만든 집은 무엇이 좋은지 물었다. 그 숱한 건축재료 중에서 사람이 먹어 괜찮은 것이 흙 말고 무엇이 있느냐고 했다. 흙은 우리가 태어난 과거고, 우리가 밟고 있는 현재며, 우리가 돌아가야 할 미래다.

모든 사람이 집을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좋은 집이 ‘생명을 북돋는 공간’이라고 한다면, 흙으로 지은 작은 것들도 집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내 옆의 흙을 만지고 비비고 쌓고 다지는 과정은 우리를 본질에 가깝게 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건축가의 용어를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자, 책 속의 세상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흙으로 신명나게, 한 판 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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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절실한 미래


하필이면 두꺼비에게 헌집 대신 새집 달라고 노래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모두 흙집을 지어봤다. 크건 작건 상관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흙으로 무엇인가를 지었던 경험이 중요하다. 앞으로 지면을 통해 소개할 흙건축물들은 ‘두꺼비집’의 변주일 뿐이다. 우리 몸을 이용해 흙에게 모양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쉽다.

흙건축의 역사는 우리가 두꺼비집을 만들던 옛날을 뛰어넘는다. “흙건축은 일만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인류가 건설한 최초의 도시는 바로 흙을 이용한 것이었다. 흙건축의 역사 자체도 대단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건축역사서가 오랫동안 흙건축을 간과했다는 점이다.”(프랑스 흙건축가 장 드티에)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처럼 문명의 발상지에서 숱하게 발견된 고대 흙건축물은 인간과 흙의 밀접함을 말해준다.

현대에는 철, 알루미늄, 시멘트가 있어 흙은 무용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소비와 낭비로만 삶을 산다면 가능하겠지만, 그 대가는 지금도 혹독하게 치르고 있지 않은가. 파괴된 자연 이 가장 아쉬운 건 인간이다. 유럽은 2050년까지 현재 사용량에서 철근 소비를 90%, 알루미늄은 85%, 시멘트는 80%까지 줄이기로 결의했다. 흙은 건축 자재별 원에너지(자재 1㎏을 만들기 위한 총투입자원을 칼로리로 환산한 수치)가 5로, 목재 250, 시멘트 1,160, 유리 3,785, 합성수지 제품 22,000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다. 다가올 미래, 우리는 무엇으로 집을 지어야 하겠는가.

배추 다시 심기 프로젝트

흙건축에서 이용하는 것은 굽지 않은 자연 상태의 흙이다. 흙을 구우면 전혀 다른 물질의 조직구조를 갖게 된다. “인류 최초의 산업폐기물은 도자기”라는 한 도예가의 말처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구운 흙은 시멘트나 콘크리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흙건축에서 사용하는 재료로서의 흙은 ‘배추 다시 심기’가 가능한 것이다. 배추가 있던 자리에 집을 짓고, 다 쓴 후에는 그 집을 허물고 다시 배추를 심을 수 있도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흙. 흙건축은 흙이 가진 순환의 미덕으로 짓는 일이다.

더구나 흙은 참 만만한 재료다. 즉 어느 곳에서나 어떤 방법으로나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능소능대). 흔한 재료인데다 값도 싸고, 공법에 대한 접근도 쉽다. 굳이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관심과 시간만 있다면 흙으로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볼 수 있다. 앞으로 지면에 소개할 흙으로 만든 벤치, 계란판을 활용한 흙벽, 흙벽돌로 쌓는 아치형 벽난로, 흙과 흙페인트로 하는 미장 등은 흙에 대한 성질을 이해하고 간단한 기술만 익힌다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

흙으로 희망을 짓는 사람들

초가집과 한옥이라는 전통양식을 가진 우리나라 흙건축의 위상은 어디쯤일까. 1980년대 들어 건축가 故 정기용이 ‘흙건축-잊혀진 정신’이라는 기고문을 발표하면서 흙을 현대건축에 결합하려는 노력들이 시작됐다. 1990년대 ‘황토방 아파트’를 선보이고 2000년대 ‘고강도 흙벽돌’을 만든 목포대학교 황혜주 교수는 국내 흙건축 분야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06년 탄생한 (사)한국흙건축연구회는 매해 흙건축 이론과 실습을 통한 흙집 짓기 프로그램인 ‘흙건축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하필이면 가장 더운 7월 말 경에 열려 누가 올까 싶겠지만 여름휴가를 반납한 이들이 꽤 몰린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부터, 밥벌이로 건축을 하는 현직 건축사, 내 집을 지을 계획이 있는 평범한 아줌마·아저씨, 제자들에게 흙을 가르치고 싶은 교사까지 국적, 직업, 나이, 성별을 뛰어넘은 조합이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워크숍의 매력은 흙에 대한 지식이나 집을 짓는 기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커다란 차이가 있는 수십 명의 사람이 하나의 집을 짓기 위해 울고 웃고 땀 흘리는 날들”이 모여 흙집이 됐다고 했다. 그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으리라. 그곳에서 빚진 기억과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려 한다.

*2011년 아쉬운 이별을 고했던 ‘처녀농부’가 2012년 ‘처녀목수’로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우리 사는 집에 흙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흙으로 짓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 첫 단계로 10월호에는 흙의 성질과 흙 배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처녀목수의 곁들임1>


인터뷰: 국내 흙건축 최고 권위자 황혜주 교수

국내 흙건축 1인자로 꼽히는 목포대학교 건축학과 황혜주 교수를 만나면서 흙은 내게로 왔다. 전남 목포에 있는 그의 흙집을 방문했고, 경남 산청으로 집 짓는 여정을 따라갔으며, 흙건축워크숍에도 참여했다. 딸아이를 낳으며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 황 교수는 이전까지 전공하던 콘크리트를 과감히 포기하고 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나무, 돌, 흙 가운데 경쟁자가 적어 흙을 선택했다는데, 그러기에는 흙을 너무 아끼고, 귀히 여긴다.

Q. 흙건축은 국내 건축계에서 어떤 위치인가. A. 주류 건축은 아니다. 어쩌면 건축으로 인정 안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흙이라는 소재가 지닌 이유라기보다 주거에 대한 관념이나 건축에 대한 생각과 연계된다. 건축의 역사라는 것이 큰 건물이나 남은 건물 위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건축의 역사는 흙건축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Q. 흙으로 집을 지으면 무너지지 않나. A. 산을 한번 보라. 흙으로 되어 있다. 비가 온다고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댐인 소양강댐을 비롯해 제방시설은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 인구 절반은 지금도 흙집에 산다. 흙은 무조건 잘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콘크리트에 대한 과신과 산사태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라고 본다.

Q. 흙집과 흙집이 아닌 곳에 모두 살아보았을 것이다. 차이가 무엇인가. A. 하늘과 땅 차이다. 집에 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흙집에서는 아침이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왔다 가도 워낙 탈취효과가 뛰어나서 담배냄새가 집에 배지 않는다.

Q. 흙, 그리고 흙으로 건축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A. 흙은 흔하다. 흔한 것이 귀하다. 보석이 없다고 못 사는 건 아니지만, 단 한 순간 공기가 없으면 죽는다. 인간에게 가장 흔해야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흙은 우리에게 의식과 발상을 전환하게 한다. 먹고 자고 일하며 생활하는 일상이 특별한 이벤트보다 귀한 것이듯 말이다.

Q. 흙건축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주의할 것은 무엇인가. A. 잘못된 편견이 많다. 흙집은 무너질 거야, 흙집은 비쌀 거야 등의 제한된 지식과 잘못된 상식은 우리를 겁먹게 한다. 용기를 갖고 도전했으면 한다. 또 나는 왜 흙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길 바란다. 그다음은 쉽다. 흙은 공법도 방법도 다양해서 흙과 건축 둘 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문을 연다.

글· 사진 송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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