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흔적

입력 2012-06-24 00:00
수정 2012-06-2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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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다가 세상을 다시 보게 된 날이 있습니다.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커튼도 다 떼어내고, 유리창도 닦아가며 대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커튼을 떼어내려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커튼의 뒷면에 애교처럼 내려앉은 먼지며,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는 단추 하나와 밖으로 새나가지 않았던 소곤거림을. 커튼의 뒷면에 웅크리고 있던 삶의 흔적이 애틋했습니다. 유리창을 닦다가도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비치는 유리창에는 제 손자국이며 놀러왔던 이웃집 아가가 남긴 지문처럼 우리 집을 드나든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이토록 많은 흔적을 남기며 살고 있었다니, 보이지 않는 흔적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일까요.

산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는 일입니다. 바닷가 백사장을 걸었던 사람이 끝까지 머금고 오는 모래알처럼 유리창에든, 마루에든, 차의 바닥에든, 마주친 영혼에게든 흔적을 남깁니다.

과학수사를 하는 건물의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수사에는 기초적인 단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글귀지만, 제게는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잠언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위로’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방문했습니다. 당신이 반갑게 문을 열어주었는지, 냉정하게 문을 닫아버렸는지, 혹은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 하지 않았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이 감사한 지면을 반납합니다. 삶이 막막하다면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위로를 삼고자 하면 또한 어느 것이든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지난 몇 년간 제가 ‘위로’에 담았던 흔적이 커튼 뒤의 먼지처럼 당신 삶의 한 구석에 조용히 내려 앉아 있다면 좋겠습니다.

김미라_라디오를 사랑하는 이. 고생을 하고도 황폐해지지 않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인본주의자. 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오후 6시~8시)의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한여름 청량음료 같은, 한겨울 호빵 같은 위로의 글들을 모아 <위로>를 펴냈습니다.

*이번 호로 ‘위로’ 연재를 마칩니다. 촉촉한 봄비 같은, 시원한 소나기 같은, 마음 찡한 가을비 같은 위로를 선물해준 김미라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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