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열심히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입력 2010-08-29 00:00
수정 2010-08-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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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입니다. 함께 일하던 프로듀서가 어느 날 제게 선곡을 한번 해보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학교 방송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한 적이 있으니 저는 선뜻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선곡표를 받아들고 제가 아는 모든 좋은 곡들을 집어넣어 선곡표를 만들었습니다. 선곡표를 받아든 프로듀서가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습니다. 그날 제가 쓴 선곡표는 가장 멋진 음악들로만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최고의 선곡표라고 자신했던 것이지요. 프로듀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나 착하고 지루한 사람과 80년쯤 같이 산 기분이 드는 선곡표’라고 말이지요. 때론 좋아하지 않는 곡들도 넣고 낯선 곡들도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아름다운 음악이 더 돋보이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강약이 있고, 완급이 있어야 좋은 프로그램이 되는 것임을 그날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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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악으로만 가득한 프로그램이 완벽한 프로그램이 아닌 것처럼 삶도 좋은 것으로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그래서 신은 우리 삶 곳곳에 미로도 배치해놓으시고, 길모퉁이도 넣어두시고, 걸려서 넘어질지도 모르는 돌부리도 놓아두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휴가’라는 이름의 쉼표도 넣어두신 것이겠지요.

열심히 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날만 줄기차게 이어졌다면 삶의 지루함을 감당하기 어려웠겠지요. 열 시간의 연습보다는 한 시간의 휴식과 산책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쇼팽의 삶처럼, 열심히 사는 날 속에 들어 있는 짧은 휴가가 우리를 더 빛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잔잔한 음악이 주로 들려오던 프로그램에서 어느 날 신나는 리듬의 음악이 흘러나와 춤추고 싶게 만드는 것처럼 당신의 여름도 그러하기를.

김미라_ 라디오를 사랑하는 이. 고생을 하고도 황폐해지지 않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인본주의자. KBS 1FM <당신의 밤과 음악>의 작가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집 <세상에 빛나지 않는 별은 없어>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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