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마음산책) 중에서- 강인숙 저
소설가 김동인이 부인 김경애에게사랑하는 아내에게
남편을 옥중으로 보내고 애아(愛兒)*를 황천으로 보낸 당신의 설움 무엇으로 위로하리오.
참고 견딜밖에.
이 편지를 받고 곧, 면회를 와 주시오.
전번은 당신이 너무 울기 때문에 긴한 부탁 하나도 못하였소.
원칙으로는 면회가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긴한 사정이 있으면 또 할 수 있소.
이곳으로 하는 당신의 편지가 검열하기에 너무 길다고 주의시키니 이 뒤는 좀 더 짧게 쓰시오.
아무쪼록 스스로 위로받기에 노력하시오.
내 몸은 건강, 단 체중은 16관 800이던 것이 지금 꼭 16관**으로 내렸소.
남편 씀
* 사랑하는 어린 자식
** 1관은 약 3.75킬로그램, 16관이면 약 60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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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그 무렵 건강이 아주 좋지 않았다. 파산과 이혼이 겹쳐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생긴 불면증이 고질이 되었다.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으니 약의 분량을 점점 더 늘린 것이 화근이었다. 고강도의 수면제 속에 들어 있던 모르핀이 10여 년 동안 누적되어 모르핀 중독 증세가 생긴 것이다.
재혼했으니 두 여인이 낳은 아이 수가 만만치 않았다. 부양가족은 많은데 유산은 모두 탕진해버려, 김동인에게는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다 버렸다. 이광수의 작품까지 대중문학으로 치부하여 《창조》에 글을 쓰지 못하게 할 정도로 순수문학에 집착했던 그 오만한 성주는, 자존심을 모두 내던지고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무렵에는 야담(野談)을 쓰는 작가로까지 전락했다.
그의 친일은 건강과 관련이 많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지황군(北支皇軍)위문작가단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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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친일 행각은 징용 회피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북지까지 찾아갔는데 그나마도 감내할 체력이 없어 좌절하고 마는 비참한 환자의 몸부림이 친일 행위의 수위를 높여간다. 그는 군국주의를 좋아할 수 없는 철저한 유미주의자다.
이 편지는 ‘천황모독죄’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아내에게 보낸 것이다. 동인 자신도 건강이 말이 아니었던 때지만 집에서는 더 참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 중 하나가 감기를 앓다가 죽은 것이다. 아이까지 세상을 떠나 집안 형편은 엉망일 때인데…. 그 경황에도 울고 있는 아내에게 면회를 와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편지가 길어 야단맞았다는 사연까지 적어 보내야 하는 이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착잡했을까?
나는 이따금 내가 일제강점기에 어른이 아니었던 것을 신께 감사한다.
TIP
김동인
소설가 김동인(1900~1951)은 전주에서 태어났다. 호는 금동.
1919년 최초의 순수문학 동인지 《창조》를 발간하고,
첫 작품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했다.
〈배따라기>〈감자〉<광염 소나타〉 등의 단편 소설을 통해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기여했다.
저서로는 《운현궁의 봄》《서라벌》《발가락이 닮았다》 등이 있다.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마음산책)의 저자 강인숙 관장은 영인문학관을 운영하며 문인과 예인의 육필원고와 편지 등을 2만 5천여 점 이상 모았다. 그중 이 책에는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을 모았다. 《삶과꿈》에서는 강인숙 원장의 도움으로 한 사람만을 위한 작품, 낡은 서랍 속 뜨거운 마음을 6회에 걸쳐 훔쳐본다.
글_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사진_ 영인문학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