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산울림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132회 공연으로 아르코대극장 무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연극올림픽의 공식 초청작으로서 오랜만에 산울림소극장 무대를 벗어났다. 배우들, 특히 주인공 격인 블라디미르 역을 맡은 한명구의 움직임이 그만큼 더 부산해졌다.
주인공 격이라고 했지만, 별다른 줄거리가 없는 이 연극에서 나머지 세명도 비교적 고르게 부각된다. 그 중에서도 이문수의 포조 역은 이미 수회 공연을 치른 덕인지 내게는 다른 어떤 포조들보다 연극에 잘 녹아든다. 초연 때의 김무생을 비롯해서 역대 포조 역이 다소간 지나치게 폭군적인 요소를 과장하여 그야말로 ‘튀게’ 여겨졌다면 이문수의 포조는 훨씬 부드럽다.
임영웅 연출의 묘미가 이른바 부조리극을 사실주의적으로 풀어가는 데 있다고 본다면, 이번 공연의 기조는 그런 점에서 더욱 안정적이다. 그렇다고 ‘놀이’적인 요소를 소홀히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놀이’가 더 정밀해졌고, 그 점에서 전체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와 같은 효과를 내는 데 한명구의 몫이 가장 컸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글의 제목을 ‘한명구의 <고도를 기다리며>’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명구는 1994년에 블라디미르 역으로 이 공연에 처음 참여한 이래 1996년에 럭키 역을 맡은 것과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2006~2007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줄곧 같은 역을 맡아왔다. 최장, 최다 출연인 셈이다. 연기 인생 3분의 1을 블라디미르로 살아오면서, 그 덕분에 연습기간을 합쳐 1년에 최소 넉 달은 수염을 길러야 했다. 권재현 기자(《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보니까 2002년 <고도…>에 출연했을 때 원인 모를 고열과 소화불량으로 시달리면서 65kg이었던 몸무게가 두 달 사이에 55kg으로 줄었다고 한다. 공연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담석증이었음을 알았다고 하니 참으로 어지간하다.
이런 에피소드가 미담이 되는 것도 그의 연기력 때문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는 분명한 발음과 다소 재는 듯이 제끼는 그의 기본자세에 채플린 걸음을 응용한 적절한 속도감으로 움직이면서 때로는 예컨대 칭얼대는 에스트라공(박상종 역)을 달래주기도 하면서 극을 막힘 없이 이끌어간다. 곡조가 더욱 부드러워진 노래 솜씨도 남부럽지 않다. 2005년 이래로 호흡을 맞춰온 두 배우는 서로 “부부 같다”고 할 정도로 익숙하다. 박상종의 “참, 그렇지”하는 대사와 함께 몸을 찌그러뜨릴 때 객석의 관중은 깊은 연민에 빠진다.
한명구는 1960년 3월생이다. 세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해 재수하고 서울예대에 입학해 연기를 익힌 후, 오태석 사단에 들어가 연극 <아프리카> 재공연을 데뷔작으로 삼는다. 오태석은 1970년대에 예대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이른바 좁은 의미의 사제지간은 아니지만 그는 오태석 밑에서 그야말로 잔뼈가 굵었다. 1987년에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받은 것도 목화의 <부자유친>(사도세자 역)이고, 1992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것도 목화의 <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
(취발이 역)이다. 1997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것은 목화와 무관하지만 (<흉가에 볕들어라>), 그의 연기의 기본은 목화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그는 목화 소속이지만,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약하고 있다.
한명구는 학구적인 배우이다. 그는 2년제인 서울예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용인대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그곳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을 뿐 아니라, 성균관대학교에서 중등학교 연극교육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2003년 극동대학교(충북 음성 소재) 연극연기과의 전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석사학위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놀이적 특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는 서양적 고도와 한국적 고도의 차이에 대한 권해련 기자의 질문에 “서양의 고도에는 기독교적 구원에 대한 갈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기다림의 고통이 강렬하다면, 한국의 고도에는 그 기다림에 너그러움이 담겨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무대에 등장하는 나무가 서양 연극에선 십자가 형태로까지 표현된 반면, 한국 공연에서 둥글게 휘어져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나무가 그렇게 변한 데에는 소나무를 권했던 나의 권고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임영웅의 <고도…>
를 세계적인 명작으로 손꼽게 하는 데 일조한 마틴 에슬린의 기고를 살펴보자.
“그러나 작품 해석에서는 서양과 몇 가지 차이점을 보였다. 어쩌면 주제에서 베케트의 ‘비관론’은 극동 관객에게는 너무도 서양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양의 기술적 발전을 추구하는 파우스트적 사고와 동양의 체념적 철학의 차이점일 수도 있다. 베케트는 그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상황을 제시할 뿐이다. 그의 철학은 ‘유쾌한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의 처리도 동서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 ‘마지막 장면의 처리’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붉은색 원형조명을 뜻하는 듯하다. 에슬린은 ‘한국 무대에서 이 장면은 어떤 종결성을 의미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베케트는 종결성을 배제하려 했다. 왜냐하면 “끝없음”에 대한 개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라고 썼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 대목이 평상시의 저녁으로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임영웅 연출이 “마지막 메시지가 연민의 정이나 사랑일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직도 유효할 것이 있다.
한명구는 그동안 창작사극뿐 아니라, 코믹 연기(<에바디로 간다>의 윌리머독 역)에서도 일가견을 보여 왔다. 어쩌면 뮤지컬에서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명동극장에서 공연한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는 하는 일 없이 인생을 즐기며 사건의 단초를 만드는 건달 밧시의 활기차고 뻔뻔한 모습을 잘 그려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공연에서 안무를 맡았던 영국의 케이트 플랫의 기여가 컸던바, 그는 연출가 이윤택과 호흡을 맞추면서 극 곳곳에 숨겨진 비언어적 묘미를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이끌어내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교수로서, 연기자로서 그의 역할은 막중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성실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그 모든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낼 것으로 믿는다.
글_ 김문환 연극평론가
TIP
일시: 11월 9일~28일
장소: 홍대앞 산울림 소극장
문의: 02-334-5915, 5925(극단 산울림)
주인공 격이라고 했지만, 별다른 줄거리가 없는 이 연극에서 나머지 세명도 비교적 고르게 부각된다. 그 중에서도 이문수의 포조 역은 이미 수회 공연을 치른 덕인지 내게는 다른 어떤 포조들보다 연극에 잘 녹아든다. 초연 때의 김무생을 비롯해서 역대 포조 역이 다소간 지나치게 폭군적인 요소를 과장하여 그야말로 ‘튀게’ 여겨졌다면 이문수의 포조는 훨씬 부드럽다.
임영웅 연출의 묘미가 이른바 부조리극을 사실주의적으로 풀어가는 데 있다고 본다면, 이번 공연의 기조는 그런 점에서 더욱 안정적이다. 그렇다고 ‘놀이’적인 요소를 소홀히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놀이’가 더 정밀해졌고, 그 점에서 전체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와 같은 효과를 내는 데 한명구의 몫이 가장 컸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글의 제목을 ‘한명구의 <고도를 기다리며>’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명구는 1994년에 블라디미르 역으로 이 공연에 처음 참여한 이래 1996년에 럭키 역을 맡은 것과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2006~2007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줄곧 같은 역을 맡아왔다. 최장, 최다 출연인 셈이다. 연기 인생 3분의 1을 블라디미르로 살아오면서, 그 덕분에 연습기간을 합쳐 1년에 최소 넉 달은 수염을 길러야 했다. 권재현 기자(《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보니까 2002년 <고도…>에 출연했을 때 원인 모를 고열과 소화불량으로 시달리면서 65kg이었던 몸무게가 두 달 사이에 55kg으로 줄었다고 한다. 공연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담석증이었음을 알았다고 하니 참으로 어지간하다.
이런 에피소드가 미담이 되는 것도 그의 연기력 때문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는 분명한 발음과 다소 재는 듯이 제끼는 그의 기본자세에 채플린 걸음을 응용한 적절한 속도감으로 움직이면서 때로는 예컨대 칭얼대는 에스트라공(박상종 역)을 달래주기도 하면서 극을 막힘 없이 이끌어간다. 곡조가 더욱 부드러워진 노래 솜씨도 남부럽지 않다. 2005년 이래로 호흡을 맞춰온 두 배우는 서로 “부부 같다”고 할 정도로 익숙하다. 박상종의 “참, 그렇지”하는 대사와 함께 몸을 찌그러뜨릴 때 객석의 관중은 깊은 연민에 빠진다.
한명구는 1960년 3월생이다. 세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해 재수하고 서울예대에 입학해 연기를 익힌 후, 오태석 사단에 들어가 연극 <아프리카> 재공연을 데뷔작으로 삼는다. 오태석은 1970년대에 예대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 이른바 좁은 의미의 사제지간은 아니지만 그는 오태석 밑에서 그야말로 잔뼈가 굵었다. 1987년에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받은 것도 목화의 <부자유친>(사도세자 역)이고, 1992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것도 목화의 <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
(취발이 역)이다. 1997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것은 목화와 무관하지만 (<흉가에 볕들어라>), 그의 연기의 기본은 목화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그는 목화 소속이지만,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약하고 있다.
한명구는 학구적인 배우이다. 그는 2년제인 서울예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용인대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그곳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을 뿐 아니라, 성균관대학교에서 중등학교 연극교육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2003년 극동대학교(충북 음성 소재) 연극연기과의 전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석사학위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놀이적 특성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는 서양적 고도와 한국적 고도의 차이에 대한 권해련 기자의 질문에 “서양의 고도에는 기독교적 구원에 대한 갈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기다림의 고통이 강렬하다면, 한국의 고도에는 그 기다림에 너그러움이 담겨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무대에 등장하는 나무가 서양 연극에선 십자가 형태로까지 표현된 반면, 한국 공연에서 둥글게 휘어져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나무가 그렇게 변한 데에는 소나무를 권했던 나의 권고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임영웅의 <고도…>
를 세계적인 명작으로 손꼽게 하는 데 일조한 마틴 에슬린의 기고를 살펴보자.
“그러나 작품 해석에서는 서양과 몇 가지 차이점을 보였다. 어쩌면 주제에서 베케트의 ‘비관론’은 극동 관객에게는 너무도 서양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양의 기술적 발전을 추구하는 파우스트적 사고와 동양의 체념적 철학의 차이점일 수도 있다. 베케트는 그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상황을 제시할 뿐이다. 그의 철학은 ‘유쾌한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의 처리도 동서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 ‘마지막 장면의 처리’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붉은색 원형조명을 뜻하는 듯하다. 에슬린은 ‘한국 무대에서 이 장면은 어떤 종결성을 의미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베케트는 종결성을 배제하려 했다. 왜냐하면 “끝없음”에 대한 개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라고 썼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 대목이 평상시의 저녁으로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임영웅 연출이 “마지막 메시지가 연민의 정이나 사랑일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직도 유효할 것이 있다.
한명구는 그동안 창작사극뿐 아니라, 코믹 연기(<에바디로 간다>의 윌리머독 역)에서도 일가견을 보여 왔다. 어쩌면 뮤지컬에서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명동극장에서 공연한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는 하는 일 없이 인생을 즐기며 사건의 단초를 만드는 건달 밧시의 활기차고 뻔뻔한 모습을 잘 그려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공연에서 안무를 맡았던 영국의 케이트 플랫의 기여가 컸던바, 그는 연출가 이윤택과 호흡을 맞추면서 극 곳곳에 숨겨진 비언어적 묘미를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이끌어내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교수로서, 연기자로서 그의 역할은 막중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성실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그 모든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낼 것으로 믿는다.
글_ 김문환 연극평론가
TIP
일시: 11월 9일~28일
장소: 홍대앞 산울림 소극장
문의: 02-334-5915, 5925(극단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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