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고향이 통영인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인구비례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예술가들이 태어났고, 풍광이 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문학 쪽을 보면 시인 청마 유치환, 대여 김춘수, 초정 김상옥,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동랑 유치진이 태어났고 음악의 윤이상, 미술의 전혁림, 김형근, 이한우, 옻칠공예가 김성수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그뿐인가! 우리 나라에서 제일 많은 국가지정 무형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통영오광대, 승전무, 남해안 별신굿, 나전장, 통영 갓, 통영 소반, 염장(대발), 소목장, 두석장 등 일일이 기록하자니 손목이 아플 지경이다.
국내에서 제일 긴 1,975m의 케이블카를 타고 461m 높이의 미륵산 정상에 도착하면 수려한 한산만의 바다가 올망졸망한 섬들을 품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이곳은 역사의 바다이기도 하다. 1592년 임진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학익진을 펼쳐 왜적을 무찌르고 바람 앞의 촛불같이 위태로운 조선을 구한 위대한 승리, 한산대첩을 이룩한 곳이 바로 통영 바다이다. 이쯤 되면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윤이상 선생을 추모하는 ‘통영국제음악제’는 통영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잡았고, 이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한산대첩축제’에 여행 일정을 맞추면 보다 풍성한 구경거리를 즐길 수 있다. 한산대첩 재현은 대표 행사 중 하나로 선박 130여 척이 동원되어 당시의 바다를 재현하는 장관을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통영에는 매물도 등대섬 풍경과 달아 공원에서 보는 노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며 싱싱한 생선회와 해물탕 등 먹을거리도 풍성하다. 통영에 오면 달아 공원에 꼭 가보기를 권한다.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인데, 이곳에서 보면 앞으로는 다섯개의 자그마한 섬들과 그 뒤로 사량도와 욕지도가 엎드려 있고 청명한 날이면 남해와 삼천포까지 보인다. 단출하면서 아름답고 아침 낮 저녁 어느 때 보아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그중 노을 지는 풍경이 일품이다. 아니 명품이다. 아무리 탐이 나도 가져갈 수는 없지만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거나 마음속에 담아갈 수는 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태풍 오기 하루 전과 그 다음 날, 여름철 초저녁 소낙비 후 곧이어 노을 지는 때를 맞추면 ‘가히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꼭 알맞다. 가을철, 조개구름, 새털구름이 있을 때 달아 공원에 촬영 온 사진가들의 손놀림은 급하다. 구름의 변화와 노을 빛깔의 셔터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쪽 하늘 노을을 촬영하면서 등 뒤 반대편 한산도가 있는 동쪽 하늘을 슬쩍 본다. 그곳의 구름이 수반에 올려놓은 수석 닮은 섬들을 거느리고 노을 빛깔에 반사되어 붉게 물들어 있다. 사진으로 보면 꼭 서쪽 하늘의 노을을 보는 것 같다.
이른 새벽 동쪽 방향의 한산만 일출을 촬영하다 보면 반대편 서쪽 하늘의 구름도 함께 물들어 있어 사진 찍는 사람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달아’ 라는 지명은 ‘코끼리 어금니를 닮은 곳’이라는 뜻이란다. 그러고 보니 육지에서 가느다랗게 바다로 돌출되어 있는 형상이 코끼리 어금니를 닮았다.
매일, 늘 환상적인 명품의 노을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못 볼 때가 더 많다. 그런데 명품 노을이 아니면 어떤가. 와보지 못한 분들은 꼭 한번 와볼 일이다. 낮 풍경도 볼만하니까! 겨울에는 동백꽃이 기다리고 있다.
글·사진_ 류태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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