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이웃나라 몇 군데의 대학에선 여름지이(농사)에 뜻을 둔 학생들의 활동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학 구내로 괭이, 삽을 들고 와서 흙을 파고 씨앗을 뿌리고 농작물을 가꾸고 하는 일들을 한다는 것이다.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따위를 일절 쓰지 않는 재래식 농업으로 돌아가서 자신들의 손으로 먹을거리를 지키겠다는 운동인 셈이다. 이러한 운동이 확산되어 간다면 먹을거리의 청정(淸淨)이 지켜질 뿐 아니라 농촌도 다시 활기를 띠지 않을까, 부러운 생각이 일기도 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여기에 끌어넣은 것은 이 이야기로 하여 지난날 여름지이에 있어서의 쟁기질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른바 농기구의 개량과 과학영농으로 인해 이제는 쟁기질도 많이 사라졌다. 소가 하는 일도 먹고 살만 쪄서 ‘한우고기’로 팔려 가면 되는 일, 쟁기의 멍에를 굳이 멜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18세기의 박학다식한 이덕무(李德懋)는 쟁기질을 하나의 ‘장쾌한 일’로 그려놓은 바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보았던 쟁기질 광경이 떠오른다.
“함진 농부가 새벽에 봄비를 맞으면서 밭을 갈고 있다. 왼손으로는 쟁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고삐를 쥐었다. 그 고삐로 검은 소의 등을 때리며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그 소리는 마치 산이 찢어지는 듯, 물이 소용돌이쳐 흐르는 듯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검은 소는 발굽을 날리며 부드러운 흙을 구름덩이나 물고기 비늘을 나란히 겹쳐 놓은 것처럼 손쉽게 갈아 젖혔다. 이 또한 세상의 한 가지 장쾌한 일이라 하겠다.”
정말 소가 이끄는 쟁기는 이른 봄철이면 밭뿐 아니라 논의 흙도 잘 갈아 넘겼다. ‘고삐로 소의 등을 때리며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고 했으나 이는 소가 꾀를 필 때의 이야기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라 쩌쩌’ ‘와 와’와 같은 나직한 소리로도 소는 잘 알아들어서 가고 멈추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소가 알아듣는 말도 달랐던 것인가, 제주지방에서는
이씩 쩟쩟쩟
뮈씩겟
저씩 쩟쩟쩟
어드레 여르쇠
왕
등이어야 ‘이리 가라’ ‘뭐하느냐’ ‘저리 가라’ ‘어느 쪽을 가느냐, 이녀르 소’ ‘멈추어라’로 소는 알아들었다고 한다. 임동권의 《한국민요집》에서 따낸 소리들이다.
이러한 소리들도 쟁기질 소리에 포함시켜야 하지만, 여기서 챙기고자 한 소리는 쟁기의 보습이 흙을 갈아 넘길 때 나는 소리, 갈린 흙(볏밥)이 왼쪽으로 떠넘겨지면서 내는 소리에 있다. 특히 기름진 논밭을 가는 보습에서 척척 흙이 떠넘겨질 때의 광경은 신기하기만 했고, 그때 들려오는 소리 또한 신신하고도 사분거린 느낌이었다.
어느 자리에서의 말이거나 그 말씀에서 시를 느끼게 하는 미당 서정주는 질마재 마을의 호장부 진영이 씨가 쟁기질 하는 것을 시로 쓴 바 있다. 미당은 그 시에서 보습이 흙을 갈고, 그 보습에서 볏밥이 떠넘겨지는 소리를,
사운… 사운… 사운…
으로 따냈다. ‘사운사운’의 의성어보다 이 소리를 에워싼 표현이 쟁기질 소리를 더욱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건(쟁기질) 그 사람 (진영이 씨)의 일에 비기자면 이빨 좋은 계집애 배 먹듯 하였다.
사운… 사운… 사운…
배 잘 먹는 계집애 배 먹듯 쟁기는 가고 구렛나룻은 마치 싸리덤불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 시 구절을 읽으면 어린 시절에 보고 들었던 쟁기질과 그 소리를 되생각해 보면 ‘미당 선생 참으로 용하시다’는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저 시를 좀 더 읽어 내려가자면
진영이 아재 쟁기질 솜씬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안개 해 모듯
장갓길 가듯
이라는 구절도 보게 된다.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는 말은 더러 들어 보았으나, 직접 본 쟁기질 광경에서 소를 탓하는 쟁기질꾼은 본 일이 없다. 그저 ‘이라 쩌쩌’ ‘와 와’하는 소리쯤으로 쟁기를 부리는 사람과 소는 걸음을 잘도 맞추어 나갔다. 이때 보습에서 나는 쟁기질 소리라면 미당의 위 표현이 가장 절실하다 하겠다.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사운 사운 사운’, 아무튼 지난날 고향 봄의 쟁기질 소리에서 풋풋한 평화를 느꼈었다면 ‘속 모르는 어린 소리’라고만 할 것인가.
글_ 최승범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남의 나라 이야기를 여기에 끌어넣은 것은 이 이야기로 하여 지난날 여름지이에 있어서의 쟁기질 광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른바 농기구의 개량과 과학영농으로 인해 이제는 쟁기질도 많이 사라졌다. 소가 하는 일도 먹고 살만 쪄서 ‘한우고기’로 팔려 가면 되는 일, 쟁기의 멍에를 굳이 멜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18세기의 박학다식한 이덕무(李德懋)는 쟁기질을 하나의 ‘장쾌한 일’로 그려놓은 바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보았던 쟁기질 광경이 떠오른다.
“함진 농부가 새벽에 봄비를 맞으면서 밭을 갈고 있다. 왼손으로는 쟁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고삐를 쥐었다. 그 고삐로 검은 소의 등을 때리며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그 소리는 마치 산이 찢어지는 듯, 물이 소용돌이쳐 흐르는 듯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검은 소는 발굽을 날리며 부드러운 흙을 구름덩이나 물고기 비늘을 나란히 겹쳐 놓은 것처럼 손쉽게 갈아 젖혔다. 이 또한 세상의 한 가지 장쾌한 일이라 하겠다.”
정말 소가 이끄는 쟁기는 이른 봄철이면 밭뿐 아니라 논의 흙도 잘 갈아 넘겼다. ‘고삐로 소의 등을 때리며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고 했으나 이는 소가 꾀를 필 때의 이야기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라 쩌쩌’ ‘와 와’와 같은 나직한 소리로도 소는 잘 알아들어서 가고 멈추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소가 알아듣는 말도 달랐던 것인가, 제주지방에서는
이씩 쩟쩟쩟
뮈씩겟
저씩 쩟쩟쩟
어드레 여르쇠
왕
등이어야 ‘이리 가라’ ‘뭐하느냐’ ‘저리 가라’ ‘어느 쪽을 가느냐, 이녀르 소’ ‘멈추어라’로 소는 알아들었다고 한다. 임동권의 《한국민요집》에서 따낸 소리들이다.
이러한 소리들도 쟁기질 소리에 포함시켜야 하지만, 여기서 챙기고자 한 소리는 쟁기의 보습이 흙을 갈아 넘길 때 나는 소리, 갈린 흙(볏밥)이 왼쪽으로 떠넘겨지면서 내는 소리에 있다. 특히 기름진 논밭을 가는 보습에서 척척 흙이 떠넘겨질 때의 광경은 신기하기만 했고, 그때 들려오는 소리 또한 신신하고도 사분거린 느낌이었다.
어느 자리에서의 말이거나 그 말씀에서 시를 느끼게 하는 미당 서정주는 질마재 마을의 호장부 진영이 씨가 쟁기질 하는 것을 시로 쓴 바 있다. 미당은 그 시에서 보습이 흙을 갈고, 그 보습에서 볏밥이 떠넘겨지는 소리를,
사운… 사운… 사운…
으로 따냈다. ‘사운사운’의 의성어보다 이 소리를 에워싼 표현이 쟁기질 소리를 더욱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건(쟁기질) 그 사람 (진영이 씨)의 일에 비기자면 이빨 좋은 계집애 배 먹듯 하였다.
사운… 사운… 사운…
배 잘 먹는 계집애 배 먹듯 쟁기는 가고 구렛나룻은 마치 싸리덤불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 시 구절을 읽으면 어린 시절에 보고 들었던 쟁기질과 그 소리를 되생각해 보면 ‘미당 선생 참으로 용하시다’는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저 시를 좀 더 읽어 내려가자면
진영이 아재 쟁기질 솜씬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안개 해 모듯
장갓길 가듯
이라는 구절도 보게 된다.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는 말은 더러 들어 보았으나, 직접 본 쟁기질 광경에서 소를 탓하는 쟁기질꾼은 본 일이 없다. 그저 ‘이라 쩌쩌’ ‘와 와’하는 소리쯤으로 쟁기를 부리는 사람과 소는 걸음을 잘도 맞추어 나갔다. 이때 보습에서 나는 쟁기질 소리라면 미당의 위 표현이 가장 절실하다 하겠다.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사운 사운 사운’, 아무튼 지난날 고향 봄의 쟁기질 소리에서 풋풋한 평화를 느꼈었다면 ‘속 모르는 어린 소리’라고만 할 것인가.
글_ 최승범 전북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