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개최·北참여 예정이던 연합·국제행사 줄줄이 취소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종교계의 속병이 심해지고 있다. 남북 종교계가 공동으로 개최하거나 북한 측 참여가 예정됐던 대규모 연합·국제행사가 줄줄이 취소된 데 따른 후유증이다. 이에 따라 개별 교단에서 추진하거나 예정된 사업이며 행사들에 대한 종교계의 우려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오리무중의 남북관계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새 정부 출범 이후 추진돼 왔던 남북 종교계의 행사들이 잇따라 취소, 무산되면서 종교계가 속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사진은 남북 공동개최로 기대를 모았지만 남한 단독개최로 결정된 내년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ACRP) 총회의 행사 일정을 공표하기 앞서 총회 내용을 협의하고 있는 ACRP 의장단과 KCRP 관계자들.
최근 남한 단독 개최로 결정 난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내년 총회는 대표적인 불발 행사. ACRP는 지난 1976년 아시아종교지도자들이 창립한 종교 간 국제협력기구로 5년마다 회원국에서 돌아가며 총회를 열고 있다. 특히 1986년 서울에서 개최된 ACRP 3차총회를 계기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창립돼 현재 불교, 개신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7대종단이 가입한 채 한국 종교계의 화합과 평화에 앞장서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 총회를 8월 25∼29일 인천 송도에서 남한만의 단독행사로 열겠다“고 공식 발표한 ACRP 회장단과 KCRP 관계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행사 일정을 밝혔다. 남북한 종교인 대표들이 지난 6월 차기 총회 준비를 위해 개최된 인도네시아 말랑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남북공동개최 추진을 합의한 터여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서 ACRP 총회가 열리기는 27년 만의 일이다. ACRP와 KCRP 관계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시아의 일치와 조화’라는 내년 총회의 주제가 무색해졌다”며 북측 종교계와 접촉해 회원 자격으로 총회에 참여토록 유도할 계획을 얹었지만 지금 남북관계를 볼 때 그마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이다.
오는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의 핵심 이벤트로 관심을 모았던 ‘평화열차’의 북한 통과도 종교계 안팎의 실망을 불렀던 행사. 당초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측은 부산 총회에 참가해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남북 관계의 경색으로 불참 입장을 WCC 한국준비위 측에 공식 통보했다. 이에 따라 각국 총회 참석자 130여명을 태우고 베를린을 출발한 ‘평화열차’의 북한 통과가 무산됐다.
(사)조국평화통일협의회와 북측 조그련이 내년 부활절 주간인 4월 24∼26일 평양 봉수교회에서 공동 주관키로 한 ‘남북공동조국평화통일기원기도회’도 개신교계의 기대와 우려가 함께 쏠리는 사안. 양측은 지난 16일 중국 신양에서 공동 기도회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사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불교와 원불교, 천도교 등 민족종교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북 기본방침에 기대, 추진해 왔던 대북 사업과 행사도 답보상태에 빠졌다. 불교계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내금강 불교유적 공동조사 재개와 북한 불교문화재 공동 전수조사, 남북 사찰 간 결연을 통한 교류를 중점 추진 사업으로 정해 놓고 있다. 원불교도 10년 전 평양에 빵 공장을 설립해 5년 전 국수공장으로 전환했으나 가동 중단된 공장을 연말쯤 재운영할 것을 북측 관계자들과 협의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 변화를 맞아 당황해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이와 관련해 KCRP 변진흥 사무총장은 “남북 종교의 교류는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민관교류 차원에서 지속돼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다”며 “종교계의 행사들이 중단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남북 관계자들이 노력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2013-10-25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