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지름길이 있을까

삶도 지름길이 있을까

이슬기 기자
입력 2019-12-19 17:24
수정 2019-12-20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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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경로/강희영 지음/문학동네/188쪽/1만 2000원

2년 만의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옛 연인과 불편한 관계 외면한 진혁
교통사고로 아이·엄마를 잃은 애영
테크놀로지 세계 속 실수와 무책임
그 결함을 메우는 건 ‘돌봄의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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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새의 선물’, 천명관의 ‘고래’에 밀리언셀러 작가 조남주의 ‘귀를 기울이면’까지…. 면면이 화려한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황여정의 ‘알제리의 유령들’ 이후 2년 만에 수상작을 낸 문학동네소설상에 거는 기대에는 특별한 데가 있다. 올해의 선택은 강희영의 ‘최단경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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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영 작가
강희영 작가
‘최단경로’는 경장편 분량에 담기에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겹겹이 중첩된 스토리 라인이 복잡한 소설이다. 라디오 PD인 혜서는 전임자인 진혁에게서 인수인계 자료가 담긴 업무용 노트북을 받는다. 우연히 열어 본 노트북 맵 계정은 여전히 로그인 상태이고, 맵에는 진혁이 떠난다던 호주 시드니가 아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지명들을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진혁의 방송에서는 알 수 없는 희미한 소리까지 난다.

늘 의뭉스러웠던 진혁의 태도에 의문이 더해져 맵의 검색 기록을 단서로 그의 뒤를 쫓아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몇 차례의 엇갈림 끝에 마주한 애영은, 고등학생 때 진혁과 연인 관계로 임신 사실을 외면하는 진혁과 헤어져 암스테르담에 자리잡은 인물이다. 그러나 잘못된 지도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동시에 잃었다. 진혁에게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서로의 휴대전화가 바뀌었고, 애영이 진혁의 맵 계정을 공유하게 됐다.

휴가를 내 전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혜서의 행동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작가가 벼려 놓은 숨은 의미가 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혜서는 진혁과 같은 연차였지만 그와 달리 성과를 낼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외곽 시간대 한산한 자리에 편성된 프로그램이나 공개방송의 협찬을 담당하는 업무만 주어질 뿐이다. 혜서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인 민주는 직접 차를 몰거나 택시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새벽 시간대 프로그램에서조차 최저임금의 급여를 받는다. 애영은 동양 사람만 보면 ‘곤니치와’, ‘니하오’라며 국적과 인종을 속단해 버리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폭력적인 시선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차별의 면면이 이들 여성을 연대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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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오류의 복제, 무책임과 불가해가 혼재된 테크놀로지의 세계’(신샛별 문학평론가)인 듯하다. 빅데이터 사회, 축적된 데이터가 도출해 내는 빠르고 경제적인 노선인 ‘최단경로’가 최적의 경로는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물들의 여정이다.

애영의 아이와 엄마를 앗아간 교통사고는 데이터의 작은 오류에서 비롯됐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지도에는 아이와 할머니가 건너던 횡단보도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 애영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고, 극단적인 길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의 존재를 무시하고 최단경로로 가고자 했던 진혁의 삶은 과연 최선이었으며 최적이었는가.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결함 속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은 더없이 아날로그스러운 사람들 간 ‘돌봄의 정서’다. 아이의 애착인형이었던 곰 인형을 사고가 난 삼거리 신호등에 놓아두는 애영과 생면부지의 애영을 돕는 혜서, 자상한 미술가 친구 ‘마이레’가 있다. 한참 서로 마주 보던 애영은 혜서에게 말한다. “어디 가지 말아요.”(159쪽)

책 끄트머리에는 심사위원 9명의 심사평이 적혀 있는데, 각자가 간추린 줄거리가 제각각이다. 같은 얘기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만큼 등장인물을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독법이 다르고, 여러 장치적 요소 때문에 진입 장벽이 꽤 높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로서의 소설 그 자체의 매력을 느끼기에 좋다. 소설을 쓴 강희영 작가는 전직 SBS 라디오 PD로, 현재는 암스테르담에서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를 공부 중이라고 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9-12-20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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