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없이 사라진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삶

흔적 없이 사라진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삶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7-10-27 17:36
수정 2017-10-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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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평전/최백순 지음/서해문집/400쪽/1만 9000원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이름이 있다. 조선공산당이 그렇다. 해방 이후 남한에 반공정권이 들어서고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조선공산당의 항일독립운동 역사는 철저히 가려졌다. 이른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기획했던 6·10만세운동은 그저 이름 정도만 알려져야 했고, 해방 직전까지 국내 항일투쟁에 나섰던 이들이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은 더더욱 알려져선 안 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종종 현대사 물줄기가 바뀌는 상황이 생겼고, 그때마다 봉인됐던 역사가 하나둘 빛을 보곤 했다. 1995년에 이동휘가 서훈 대상에 포함된 이후 2005년에는 조선노동당 설립자인 김재봉과 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98명이 서훈을 추서받았다. 새 책 ‘조선공산당평전’은 바로 이들과 이들이 속했던 여러 단체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평전은 보통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니 ‘조선공산당평전’이라 하면 어휘상 성립할 수 없는 조합이다. 조선공산당이라는 단체의 삶을 기록하겠다는 매우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책은 어색한 제목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저자는 이를 “조선공산당에 기록된 처절한 역사들은 알려지지 않은 별처럼 많은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과는 남았으되, 이름은 증발된 이들을 소환하겠다는 것이 발간의 이유다.

조선공산당은 1925년 조직된 공산주의 단체다. 1928년 해체되는 등 부침의 역사를 겪다 1946년 남조선노동당(남로당)으로 통합된 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정당이야 그렇다 쳐도 그에 속했던 많은 이들의 삶은 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까. 조선공산당은 남과 북, 어디서도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남쪽이야 ‘멸공’이 국시였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북한은 왜 그랬을까. 저자는 조선공산당 역사에서 조연에 머물렀던 이들이 북한의 집권층이 된 게 화근이었다고 설명한다. 정작 주연이었던 이들은 숙청당했고, 조선공산당의 역사는 북한에서조차 부정당했다는 것이다.

책은 다양한 조직과 단체의 활동상도 기록하고 있다. 한인들이 최초로 만든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과 볼셰비키 한인 2세 중심의 전로한인공산당, 오랜 기간 대립했던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일본에서 활동하던 북성회와 국내의 서울청년회 등 조선공산당의 주요 그룹은 물론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농총동맹, 신사상연구회 등의 활동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7-10-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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