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도서정가제 문제점과 반응
오는 21일부터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 물론 완전 도서정가제는 아니다. 정가의 최대 15%(책 정가의 할인 10%+쿠폰, 마일리지 등 간접할인)까지 할인이 허용되는 제도다. 사라져가는 작은 서점과 영세 출판사들은 물론 작가, 독자 등 출판 생태계를 이루는 주체들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대증요법에 그쳐 결국 대형서점, 인터넷서점 중심으로 치우친 현재의 출판유통 구조의 모순이 그대로 고착화될지는 미지수다. 주체별로 도서정가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며 현재 출판계의 현실 및 출판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본다.도서정가제 시행을 일주일여 앞둔 1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도서할인 코너에서 독자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신·구간 모두에 적용되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앞으로 서점에서 반값 할인 풍경은 볼 수 없게 된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평소 퇴근하고서는 별 약속 없으면 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책이며 베스트셀러 목록 등을 둘러보는 게 취미다. 하지만 마음에 든다고 곧바로 책을 사지는 않는다. 제값 다 주고 책을 사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가 애용하는 곳은 바로 ○○인터넷서점. 기본 10% 할인에다 정가의 9%씩 차곡차곡 쌓이는 마일리지로 나중에 책을 공짜로 살 수도 있다. 또 출간한 지 18개월 지난 책은 20~30%씩 할인하기도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인터넷서점의 매력은 또 있다. 책을 사고 나면 그 책과 연계된 자신의 관심사를 확장시켜 주는 여러 책들을 소개해 준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받을 수 없는 독서 가이드 서비스다.
그런 최씨는 요즘 불만이다. 21일부터 도서정가제가 더욱 엄격히 운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일리지를 포함해서 총 19%까지 할인되던 18개월 이내 신간은 물론이고 나온 지 오래된 책들도 최대 15%까지만 할인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실용서와 초등학생 학습참고서도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고 도서관에서 책을 구입할 때도 도서정가제가 적용된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이 이해가 안 된다. 자유로운 가격 경쟁이 있어야 소비자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지 이렇게 규제만 해서야, 원…. 요즘 책값이 좀 비싼가. 만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 그나저나 책값이 몇 년 새 왜 이렇게 급격히 올랐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물가가 이렇게까지 오른 건가. 아니면 유독 책값만 오른 건가.
# 8년째 출판사를 운영하는 나편집(49·가명) 대표는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년이면 평균 15~20권의 신간을 펴내니 비교적 꾸준한 실적이지만, 출판사 운영은 점점 더 어렵다. 최근 1~2년 새 2쇄 이상 찍은 책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책이 안 팔리다 보니 대중적인 인문서 같은 책도 초판으로 고작 1000부, 많아야 2000부 찍는 게 전부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책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동네서점들이 점점 없어져 가니 책을 찍어놓고도 납품할 곳이 줄어들고 있다. 대형서점에 납품할 때는 책 정가의 60% 남짓 받으면 잘 받는 셈이다. 인터넷서점에 납품할 때면 50~55%, 심지어 50% 이하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도둑놈’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동네서점이 망해 가니 이렇게 ‘슈퍼 갑’인 그들의 요구를 맞춰줘야 그나마 연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는 오래 갈 수 없다.
이미 종이값 인상 등으로 원가 상승 요인이 큰 상황이다. 여기에 인터넷서점이 요구하는 공급률을 맞추면서도 생존을 꾀하자니 책값을 그만큼 더 올리는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만난 다른 출판사 사장 역시 “양심에 찔리긴 해도 공공연한 출판계의 관행 아니겠느냐”며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10년여 동안 책값이 마구잡이로 올라간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다.
악순환이다. 책을 할인해서 싸게 팔기 위해 인터넷서점은 출판사에 공급률을 후려치고 출판사는 최소한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책값을 좀 더 비싸게 매기고 독자는 한 권을 사도 할인해 주는 인터넷서점을 찾게 된다. 새 도서정가제 할인율이 총 15%로 낮춰지더라도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다. 무료배송, 신용카드 제휴 할인 등은 그대로다. 공정거래위, 규제개혁위, 법원 등이 모두 이를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무료배송을 금지하고 있어 아마존 같은 세계적 인터넷서점도 제대로 발붙이지 못하는 프랑스가 부러울 따름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동네서점과 소형 출판사가 살기 위해서는 도서정가제만이 아니라 도서 공급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 김할인(41·가명) 인터넷서점 마케팅팀장은 불만이 크다. 그간 유통질서를 간소화해서 소비자들에게 최대한 싸게 책을 공급하려 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것은 마치 인터넷서점이 출판계 질서 교란의 장본인이라는 시선뿐이다.
따지고 보면 인터넷서점만이 아니다. 그동안 어떤 출판사들은 도서정가제에서 실용서가 제외되는 허점을 이용해 인문서를 ISBN(국제표준도서번호) 실용서로 바꾸는가 하면 제작·유통 과정에서 흠집 난 책, 기증도서가 정가제에서 제외되는 점을 활용해 왔다. 대형서점이 사실상 강요하듯 부렸던 횡포를 생각하면 꼭 인터넷서점만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억울하기만 하다. 마치 공급률 때문에 책값이 오른다고 하는데 핑계로만 들린다. 인터넷서점이 아니면 중간 유통을 맡는 도매상에 10%를 줘야 하고, 어음이 아니라 바로 현금 결제를 해주고 있으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결국 비슷한 수익률이다.
사실 김 팀장도 마음이 뜨끔한 적이 있다. 2003년 전국에 2017개에 이르던 66㎡(20평) 미만의 동네 서점이 10년 사이에 887개로 줄어들었다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통계자료를 접하면 ‘과연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어쨌든 할인도서가 사실상 전면 제한돼 다양한 마케팅이 어려워지면서 김 팀장과 회사의 위기감도 커졌다. 이미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어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인터넷서점 빅4’는 이미 오프라인 서점까지 겸영하고 있다. 물론 정식 서점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 동반성장위원회가 서점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 포함시켜 대형서점이 신규 진입을 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공간, 전자책의 새로운 수요 창출의 공간,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을 찾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업성이 불확실하다. 오프라인까지 돌며 마케팅 수요 창출이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김 팀장의 퇴근 시간이 매일같이 하염없이 늘어지는 이유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2014-11-1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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