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입력 2011-04-23 00:00
수정 2011-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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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 하진이】 박형진 지음 보리 펴냄

사라진 것의 소중함은 되돌려질 수 없는 상실로 인해서 더 간절하다. 다시 만날 수 없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사람과 그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라면 간절함의 깊이는 더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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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이전 대다수 민초들이 겪고 넘어야 했던 이른바 보릿고개의 추억은 어찌 보면 잊어야 더 좋을 아픈 경험일 터. 그런데 많은 이들이 어려운 그 시절의 보릿고개를 자주 입에 올리는 이유는 뭘까.

‘갯마을 하진이’(박형진 지음, 보리 펴냄)는 그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부대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정겹게 반추한 책이다.

고향 전북 부안군 변산 모항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50대 중반 농사꾼 시인의 유년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어울려 쏘다니며 울고 웃던 고향 친구들과의 천진난만한 이야기들을 축으로 어렵던 그때 그 시절을 수채화처럼 풀어낸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구수한 호남 사투리로 끌어간, 동화 같은 사건들. 배 속의 회충 탓에 반복하던 배앓이, 명절에만 먹어보는 흰 쌀밥의 희열,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해대던 밭 서리….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악동들의 천진한 놀이며 장난에 얹힌 추억들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40대를 넘긴 세대라면 너나 없이 겪었을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공유의 시간들이 간절해진다.

책은 단순한 추억 건져내기에 머물지 않은 채 묘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무난하게 읽히는 낭만과 추억의 이야기들엔 시인 특유의 앙금들이 또렷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향을 등진 이웃들, 벌어먹고 살 거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거나 가출한 친구들…. 편하게만 읽어도 좋을 어린시절의 추억 여행에 담긴 상실과 그리움의 메시지는 어른, 아이의 관심을 모두 잡아끄는 독특한 울림으로 살아난다.

고향을 떠나버린 친구들을 향해 저자인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집을 떠나 돈 벌어 오겠다는 동무들은 이제껏 단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면 하진이는 갯벌로 나가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 애들도 하진이를 그리워할까요?” 95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2011-04-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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