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우리 민족의 지배적 정서로 가장 널리 꼽혀 온 단어다. 감정적 차원을 일컫는 단어 ‘한’은 명확한 실체를 갖는 예술과 역사의 차원으로 영역을 넓히며 ‘한의 역사’ ‘한의 예술’ 등 부자연스런 조합의 신조어를 양산해냈고,‘한민족’(韓民族)과 ‘한민족’(恨民族)의 동음이의어적 경계를 오가며 양자의 의미를 뒤섞었다.‘한’이란 지극한 ‘비애미’(悲哀美)는 ‘수많은 침략을 받으면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을 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언술과 맥을 같이 했고, 토끼 모양으로 형상화된 한반도 지도를 머릿속에 새기도록 만들었다. 딱히 증명할 근거도 없고, 때론 사실 관계와도 다른 이 같은 의미 확장의 배경엔 뜻밖에도 ‘한’을 심어준 나라 일본의 한 민예운동가이자 미술평론가의 역할이 지대했다.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한국식 이름 유종열로도 잘 알려진 사람. 야나기는 일제 식민지 시절 대표적인 친한파였다. 그는 조선시대 민화에 ‘민화’(民話)란 이름을 최초로 부여해 학술적 체계화를 시도했고, 조선총독부 건축을 위해 광화문 철거가 논의되자 철거를 적극 반대하며 한국의 예술품 보존의 중요성을 설파했다.1924년엔 서울에 조선미술관을 설립했고,36년엔 일본 도쿄에서 이조도자기전람회와 이조미술전람회를 개최했다.
그가 수집했던 일본 내 조선 민화 120여점이 2005년 9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됐고, 역시 그가 수집한 260여점의 자료가 지난해 11월부터 3달간 ‘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이란 제목으로 일민미술관에서 공개됐다.84년 9월엔 전두환 정권이 ‘우리나라 미술품 문화재 연구와 보존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이유로 보관문화훈장도 추서했다. 야나기는 누가 뭐래도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같지 않은 일본인’이었다. 야나기는 그렇게 알려져왔다. 그렇게 알려지며, 야나기는 침략국 일본의 야만성에서 분리돼 ‘은인’의 위상을 부여받았다.
서울신문 기자를 그만둔 뒤 한·일 근현대사 연구에 몰두해온 정일성 씨가 최근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지식산업사)이란 책을 펴냈다. 야나기의 또 다른 얼굴을 가감없이 들춰낸 저자는 야나기를 민예운동가가 아닌 ‘문화정치 이데올로그’로 파악한다.
저자의 야나기 평가는 가혹하다.“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식민통치술을 무단통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는 데 일조한 제국주의 공범”이자 “일제의 무력진압에 상처받은 한민족의 마음을 달래려 한 심리요법사, 식민지 조선통치 훈수꾼”이라고 규정짓는다.
저자가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야나기의 친한파적 기질을 증명하는 가장 훌륭한 자료로 평가돼온 글,1919년 5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발표된 ‘조선인을 생각한다’다.3·1운동 당시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며 썼다는 이 글은 이듬해 4월 동아일보에 번역 게재됐고, 게재 직후엔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이란 또 다른 글이 같은 신문에 실리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두 글이 “주의를 기울여 읽으면 조선 독립을 돕는 내용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며 몇 대목을 짚어낸다.“반항(독립만세운동)을 현명한 길이라거나 칭찬할 태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조선인을 생각한다’)”고 한 것이나 “우리가 총칼로 당신들을 해치게 하는 것이 죄악이듯이, 당신들도 유혈의 길을 택해 혁명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조선의 벗에게 드리는 글’)”고 강조한 점 등. 요컨대 야나기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이렇다.‘사이토 마코토 3대 총독의 문화통치 두뇌’. 이 책을 통해 70년대 거세게 일었던 야나기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다시 한번 활기를 띌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광화문 복원 현장의 공사용 철제 담장에 씌어진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헐려지려고 하는 한 조선건축을 위하여’ 중 한 대목. 조선총독부의 광화문 철거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내용으로 ‘보기 드물게 양식있는 일본의 지식인’으로 알려진 그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야나기의 글귀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그가 수집했던 일본 내 조선 민화 120여점이 2005년 9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됐고, 역시 그가 수집한 260여점의 자료가 지난해 11월부터 3달간 ‘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이란 제목으로 일민미술관에서 공개됐다.84년 9월엔 전두환 정권이 ‘우리나라 미술품 문화재 연구와 보존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이유로 보관문화훈장도 추서했다. 야나기는 누가 뭐래도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같지 않은 일본인’이었다. 야나기는 그렇게 알려져왔다. 그렇게 알려지며, 야나기는 침략국 일본의 야만성에서 분리돼 ‘은인’의 위상을 부여받았다.
서울신문 기자를 그만둔 뒤 한·일 근현대사 연구에 몰두해온 정일성 씨가 최근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굴’(지식산업사)이란 책을 펴냈다. 야나기의 또 다른 얼굴을 가감없이 들춰낸 저자는 야나기를 민예운동가가 아닌 ‘문화정치 이데올로그’로 파악한다.
저자의 야나기 평가는 가혹하다.“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식민통치술을 무단통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는 데 일조한 제국주의 공범”이자 “일제의 무력진압에 상처받은 한민족의 마음을 달래려 한 심리요법사, 식민지 조선통치 훈수꾼”이라고 규정짓는다.
저자가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근거는 야나기의 친한파적 기질을 증명하는 가장 훌륭한 자료로 평가돼온 글,1919년 5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발표된 ‘조선인을 생각한다’다.3·1운동 당시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며 썼다는 이 글은 이듬해 4월 동아일보에 번역 게재됐고, 게재 직후엔 ‘조선의 친구에게 보내는 글’이란 또 다른 글이 같은 신문에 실리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두 글이 “주의를 기울여 읽으면 조선 독립을 돕는 내용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며 몇 대목을 짚어낸다.“반항(독립만세운동)을 현명한 길이라거나 칭찬할 태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조선인을 생각한다’)”고 한 것이나 “우리가 총칼로 당신들을 해치게 하는 것이 죄악이듯이, 당신들도 유혈의 길을 택해 혁명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조선의 벗에게 드리는 글’)”고 강조한 점 등. 요컨대 야나기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이렇다.‘사이토 마코토 3대 총독의 문화통치 두뇌’. 이 책을 통해 70년대 거세게 일었던 야나기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다시 한번 활기를 띌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7-09-2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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