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찾은 ‘생명의 흔적’ 시로 읊어
지난 3월,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족과 더불어 생활한 3년 간의 체험을 엮은 에세이집 ‘아카시아’를 출간한 중견 시인 황학주(51) 서울여대 겸임교수가 이번엔 사막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시어들로 짠 시집 ‘루시’(솔)를 펴냈다.그는 국제민간구호단체의 일원으로 1995∼1997년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와 마사이족 거주지인 카지아도에서 봉사와 구호활동을 했고, 그곳에서의 경험을 잊지 못해 이후 2003년까지 서너 차례 더 아프리카 대륙을 방문했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2002)에 이은 여섯번째 시집 ‘루시’에는 그때의 시공간을 소재로 쓴 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인이 온몸으로 체험한 사막은 ‘바람이 자면/희미한 소똥 냄새와 벗겨진 나무껍질 냄새가 건너온다/방금 눈앞에 있던 구릉까지 단숨에 마셔버리지만/바람이 데려다 주지 않은 것은 물뿐’(‘루시’중)이거나 ‘내 눈에 돌흙밖에 없다/내 위 속엔 흙모래밖에 없다/당신이 나를 지나쳐/하루를 더 가더라도 돌무지밖에/세상엔 없’(‘염소’중)는 곳이다. 가장 오래된 화석 인류중의 하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애칭을 딴 표제작 ‘루시’를 비롯한 시들은 시인이 이 불모의 땅에서 지친 육신과 영혼을 적셔줄 생명의 물길을 찾아나선 흔적들이다. 시인은 서문에서 “내가 험하게 찾아다닌 것은 인간의 본향이 아니라 어두운 발밑에도 붉은 흙을 묻힐 수 있는 타향이었으리라. 노을과 달이 안내자였던.”이라고 고백했다.
소설가 김훈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이제 황학주의 시편들은 상처에서 사랑으로, 차단에서 소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고, 시인 최하림은 “그의 시는 더욱 간결해지고 백지로 있으려는 꿈을 꾼다.”고 평했다.7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06-1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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