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보부상 비석, 30년 잠자던 ‘객주’의 열정 깨워”

“울진 보부상 비석, 30년 잠자던 ‘객주’의 열정 깨워”

입력 2013-08-21 00:00
수정 2013-08-2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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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장돌뱅이의 애환 담은 ‘객주’ 34년 만에 완성한 김주영 작가

“‘객주’의 등장인물들에겐 갖은 시련이 닥칩니다. 용감한 인물도, 비겁한 인물도 있죠. 가만 보면 또 나만큼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도 없어요. 아버지라고 하면 맞은 기억밖에 없지. 정부인 아닌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멸시도 많이 받았지요. 초등학교는 교과서 하나 없이, 월사금 한 번 못 내고 졸업했어요. 이런 시련에서 벗어난 게 10년도 채 안 됩니다. 하지만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나를 살리는 길입니다. 오히려 삶이 탄탄해지거든요.”

대하소설을 쓰려면 특별한 재주보다는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게 김주영 작가의 생각이다. “야구선수 박찬호가 경기 초반보다 탄력이 붙은 후반에 더 잘 던지는 것처럼, 대하소설을 쓸 때는 호흡이 긴 장거리 선수가 돼야 한다”고 했다.
대하소설을 쓰려면 특별한 재주보다는 지구력이 필요하다는 게 김주영 작가의 생각이다. “야구선수 박찬호가 경기 초반보다 탄력이 붙은 후반에 더 잘 던지는 것처럼, 대하소설을 쓸 때는 호흡이 긴 장거리 선수가 돼야 한다”고 했다.
가난과 결핍이 자신의 삶과 글을 밀고 나가는 추동력이었다는 작가 김주영(74). 그가 소설 ‘객주’를 통해 청년들에게 건네는 충언이다. 19세기 말 조선 보부상들이 21세기의 현대인에게 건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장돌뱅이들의 땀내 밴 삶을 담은 ‘객주’가 서울신문 연재 34년 만에 완성됐다. 객주는 당초 1979년 6월 1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 1465회(1~9권)로 중단됐다. 사라졌던 주인공 천봉삼을 다시 불러낸 건 4년 전 우연히 발견된 보부상 길(경북 울진 흥부장~봉화 춘양장)이었다.

“앞으로 내가 온전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4~5년쯤 남았다고 봐야겠지. 소설에 대한 열정이나 기량이 퇴색되지 않았을 때 못 다한 작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죠. 하지만 계기가 없어서 30여년의 세월을 흘려보냈어요. 그러다 우연히 경북 울진에서 당시 보부상들이 남겨 놓은 비석, 서낭당, 숙소 등을 보고 가슴 속에 스러지지 않고 남아있던 객주의 싹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4월 1일 본지에 다시 연재를 시작한 보부상들의 삶은 21일 108회(10권)를 끝으로 그야말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객주’를 교과서처럼 읽던 장년 세대뿐 아니라 청년 세대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신문뿐 아니라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도 함께 연재된 데다 작가의 낭독 콘서트 등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교감했다.

“남녀가 서로 정분을 나누는 회에는 온라인에서의 반응이 굉장합디다. 허허.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10권을 먼저 읽은 젊은 독자들은 ‘소설에 빨려들어 1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조선시대 막걸리 한 주발, 짚신 한 켤레 값까지 적시했더니 당시 민초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느꼈다는 젊은이들도 있었고요.”

‘객주’는 질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읽는 맛도 안겨줬다. 그러나 조선 말기를 실감 나게 전달하느라 요즘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당시의 어휘를 곳곳에 동원해야 했다. 작가는 “(젊은 독자들이 읽기 힘들 줄)알면서도 도리가 없었다”며 웃었다. “난해하고 말고. 하지만 소설의 현재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는 거지. 옛 사람들이 쓰던 말을 버리거나 훼손시켜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1~9권과 30여년의 간극을 두고 쓰인 10권에는 현재에 대한 비판과 반성도 담겨 있다.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라는, 과거와 무섭도록 닮은 현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새 연재물에서는 지방 관리들이 어떻게 서민들을 착취하고 횡포를 부렸는지, 수령들이 어떤 식으로 뇌물을 주고받고 직책을 사고팔았는지 명확히 서술했어요. 요즘도 정부 관리와 기업인들이 주고받는 부정부패가 엄청나게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보면 70년 넘게 살아온 저도 ‘부정부패라는 우리 사회의 혹을 떼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하고 절실히 느낍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객주’는 “거창하게 떠들지 않은 이상향”으로 마무리됐다. 보부상들이 배곯는 농민들에게 땅을 사주며 정착을 돕는다. 가난과 결핍이 움츠린 곳에 늘 시선을 주었던 작가다운 결말이다.

지난 6월부터 기획분과위원장으로 합류한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도 그는 이런 소신을 폈다고 했다.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혼자 낭떠러지에 서 있는 사람, 바람 부는 벌판에 서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찾아내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많은 공간을 내주자고도 했죠.”

유년 시절 저잣거리 풍경에 매료돼 문학 인생을 바쳐 ‘장터의 서사’ 대장정을 이어온 작가에게 대하소설이란 “견디는 힘으로 쓰는 것”이었다. 요즘 문단에서 그런 대하소설의 명맥이 끊기고 있는 데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노 작가의 눈빛에서는 우려보다는 기대가 더 빛났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소재를 개발하는 능력이나 감성적인 호소력, 관계를 다루는 솜씨는 (우리 때보다) 뛰어나요.”

천생 이야기꾼 김주영의 다음 주제는 사람 이야기다. “고은 선생의 시집 ‘만인보’처럼 살면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나를 감동시키고 비난했던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봤으면 합니다. 내가 원래 장편 체질이잖아(웃음).”

‘객주’ 10권은 다음 달 25일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3-08-2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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