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기막힌 동거/임은정

[2013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기막힌 동거/임은정

입력 2013-01-01 00:00
수정 2013-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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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아영(25) 숙자(37) 동곤(25) 집주인(55) 아들(28) 장씨(50)- 1인 2역

현대 겨울

장 소 도심 변두리 다가구주택

무 대 오래되고 낡은 느낌의 집이다. 조그만 마당이 있고 셋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문을 사이에 두고 마당과 방이 나뉜다. 방 안은 소박하고 단출하게 꾸며져 있다. 벽에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고 옷장, 책상, 앉은뱅이 화장대가 한구석을 차지한다. 부엌에는 싱크대와 소형 냉장고가 있다. 부엌 옆으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도 보인다. 네모난 종이 상자가 몇 개 놓여 있고, 일상용품과 옷들이 흩어져 있다.




1장.

마 당에서 방 안을 기웃거리는 정장 차림의 숙자.

한 손에는 고객 파일을 들고 있다.

목에 건 스톱워치를 보며 초조한 듯 시간을 재고 있다.

숙자 5, 4, 3, 2, 1.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영 아직 내 시간이에요.

숙자 이제 내 차례야.

아영 (시간 확인, 밖으로 나간다)

이제 아영이 밖이고, 숙자가 방 안이다.

아영이 밖에서 방 안을 기웃거린다.

휴대전화 보며 시간을 기다리다 방 안으로 소리친다.

아영 1분 남았어요. (모래시계 꺼내서) 시, 작! (다 떨어지면)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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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숙자 아직 내 시간이야.

아영 이제 내 차례예요.

숙자 (시간 확인, 밖으로 나간다)

다시 마당에서 방 안을 염탐하는 숙자.

밖으로 나오는 아영을 붙잡아 방으로 밀고 들어온다.

숙자 전화는 왜 안 받아? 요리조리 도망만 다니고. 무조건 피하면 다야? 일부러 그런 거지? 어떻게 됐어? 벌써 며칠째냐고. 오죽하면 대낮에 일하다 말고 너 잡으러 왔겠어. 더 이상은 안 돼.

아영 숨 넘어 가겠어요.

숙자 시간 없어. 말일까지는 해결해줘.

아영 무리예요.

숙자 안 쫓겨나는 것만도 다행이거든.

아영 조금만 더···.

숙자 최후통첩이야. (고객 파일을 두고 나간다)

아영, 마당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온다. 어깨에 큰 가방을 메고 있다. 집주인, 빗자루 들고 다가간다.

집주인 꼼짝 마.

아영 으악!

집주인 내려놔.

아영 아니에요. 오해세요.

집주인 가방 내려놓으라니까.

아영 고모 모르세요? 여기 사는 분요.

집주인 (방 쳐다본다)

아영 키 좀 크고, 얼굴 동그랗고, 파마머리···.

집주인 젊은 게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아영 저 방이, 숙자 고모예요. 친척 동생, 아 그러니까···. 조, 조카예요.

집주인 도둑년이 어디서 수작질이야.

아영 (가방을 쏟으며) 조카 맞아요. 보세요. 다 옷뿐이잖아요. 고모 부탁으로 세탁소 가던 길이었어요. 훔친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은 대치하고 있고, 숙자가 급히 들어온다.

아영 고모! 도, 도둑으로 몰렸어요.

집주인 (빗자루 내리며) 아는 사람이야?

숙자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 조카가 놀러 왔어요.

집주인 이 시간에 집에는 웬일이야?

숙자 뭘 좀 두고 와서요.

집주인 객식구는 오늘 가지?

숙자 (머뭇거리다) 며칠만 있을 거예요.

집주인 은근슬쩍 넘어갈 생각 말고 계산이나 똑바로 해줘.

숙자 무슨···.

집주인 수도, 전기, 가스! (수첩 꺼내서 적으며) 단 하루라도 사람이 늘었으면 더 내야지. (시계 보며) 어머, 마트 타임 세일···. (나간다)

아영, 떨어진 옷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숙자 조심하랬잖아.

아영 연습한 시나리오대로 잘 말했어요.

숙자 그 아줌마 눈치가 보통 아니야. 들키지 않게 잘해.

아영 (일어난다) 너무 억지를 부려요. 놀러왔다는데 세금이라니···.

숙자 밀린 방세나 신경 써.

숙자, 방으로 들어가 고객 파일을 챙겨 나간다.

아영,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벽시계 쳐다본다. 오후 2시 무렵.

우유 배달 아줌마 변장을 한 동곤, 손수레를 끌며 마당을 서성인다.

동곤 (노크하며) 신선하고 고소한 내추럴 우유 왔어요.

아영 (문 가까이 다가와) 아무도 없어?

동곤 장트라블타에 직방인 야쿠르트 왔어요.

아영은 동곤이 온 것을 확인, 문을 열어 준다.

동곤,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다. 변장용 옷과 가발을 벗는다.

동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영 앞으로 더한 것도 해야 돼.

동곤 뭘 또 시키려고?

아영 다른 방법이 없잖아.

동곤 이런 기발한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아영 한 수 모방했지.

동곤 이런 걸 뭐라고 하냐? 월세방은 아니고, 파트방인가?

아영 아무려면 어때.

동곤 우리 시간제로 방 쓰잖아. 그러니까 시간방 아니야?

아영 잘도 갖다 붙인다. 2시부터 8시면 황금 시간대야. 어디가도 이런 방에, 이런 가격 없어.

동곤 방세 좀 깎아줘.

아영 휴학하고 미친 듯이 알바 뛰는 거 보고도 그래.

동곤 나도 밤마다 미친 듯이 부킹한다고.

아영 그럼 다른 방 알아보든지.

동곤 아, 아니야. (사이) 망이나 좀 봐. 슈퍼 좀 갖다 오게.

두 사람,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나오다 집주인과 맞닥뜨린다.

아영 (둘러대며) 동, 동생이에요.

집주인 동생? 혹시 남동생도 같이 이 방에···.

아영 아니, 놀러 온 거예요. (동곤에게) 뭐해? 들어가자.

집주인 나오던 거 아니었어?

아영 들어가던 길이예요.

아영과 동곤은 방으로 들어오고, 집주인은 자기 집으로 간다.

동곤 동생이라니?

아영 급한데 그렇게라도 둘러대야지. 이제부터 나는 누나, 그 누님은 고모야.

동곤 졸지에 수상한 가족 탄생! 불안 불안해서 여기 계속 살겠냐?

아영 변장 안 하면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마. 출입 금지야.

동곤 무슨 감옥도 아니고.

아영 그래 봐야 저녁 8시까지야. (나간다)

동곤은 손수레에서 침낭을 꺼내 덮고, 벽시계는 꺼내서 베고 잔다.

저녁 8시. 숙자는 방 앞에서 스톱워치 보며 계속 차례를 기다린다.

시계 알람 소리 몇 번 울린다. 동곤, 겨우 일어나 허겁지겁 나온다.

숙자 거기서 왜···.

동곤 ···.

숙자 누구···.

동곤 오, 오빠예요.

숙자 오빠라뇨?

동곤 아영이는 알바 가고, 깜빡 잠이 들어서···.

집주인이 마당으로 나오다 순식간에 두 사람과 마주친다. 숙자는 당황하고, 동곤은 침착하게 대처한다.

동곤 고모도 만나고 가려고···.

집주인 누가 뭐래. (숙자에게) 건넛방, 할 얘기가 있어. (집 전화 울린다) 잠시만.

집주인은 나가고, 숙자는 동곤을 붙잡아 방 안으로 들어간다.

숙자 오빠라고 안 했어요?

동곤 저···.

숙자 고모는 또 뭐예요?

동곤 둘 다예요.

숙자 무슨 소리예요?

동곤 그렇게 돼 버렸어요. 아니 그렇게 해야 돼요.

숙자 혹시 주인이 아영이를 알아요? 그쪽도요?

동곤 다 같이 만났어요.

숙자 만나다뇨?

동곤 주인은 우리가 남매인 줄 알아요.

숙자 남매가 아니에요?

동곤 아니 맞아요. 아영이는 동생입니다.

숙자 오빠라며? 너 뭐하는 놈이야?

동곤 (물러선다) 오, 오빠라니까요.

숙자 아영이는 분명히 형제가 없다고 그랬어.

동곤 사, 사촌 오빠. 사촌끼리 워낙 친하게 지내서 그냥 오빠라고 그래요.

숙자 뻥까지 말고 바른 대로 대.

동곤 복잡하게 생각 마세요. 집주인은 아무것도 몰라요. 아영이가 집주인한테 잘 둘러댔어요. 그러니까 우린, 모두, 아무것도 들키지 않았다고요.

숙자 가택 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

동곤 가택 침입이라뇨? 여긴 내 방이에요.

숙자 여기가 왜···.

동곤 이 방은···.

숙자 둘, 둘이 동거해?

동곤 대박! 근친상간이라고요?

숙자 빌려 쓰는 방에서 살림을 차리면 어떡해?

동곤 아니 점점···.

숙자 빨리 불어. (휴대전화 꺼내며)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콩밥 좀 먹어 볼래.

동곤 세, 세 들었어요.

숙자 세라니?

동곤 아영이가 세 든 12시간 중에서, 6시간을 다시···.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집주인.

숙자 (동곤에게) 꼼짝 말고 있어.

밖으로 나가본다. 집주인과 싸움이 벌어진다.

숙자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해요.

집주인 일이 그렇게 됐어.

숙자 이 추운데 당장 방을 어디서 구해요.

집주인 원래 거기가 우리 아들 방이었어.

숙자 법적으로도 이건 걸려요. 이런 식은 문제가 있다고요.

집주인 젊은 사람이 팍팍하게 왜 그래. 법까지 들먹이는 건 좀 그렇잖아.

숙자 심한 게 누군데요.

집주인 내가 주인인데, 내 집을 맘대로 못 할 게 뭐가 있어.

숙자 다 낡아 빠진 집 한 칸 있다고 유세는···.

집주인 뭐, 유세···.

숙자 주인이면 다야?

집주인 이 여자가···. 당장 방 빼.

2장.

숙자, 아영, 동곤이 서로를 경계하며 마당을 빙빙 돈다.

숙자는 목에 건 스톱워치를 손에 들고, 아영은 가방에서 모래시계를 꺼내고, 동곤은 우유 손수레에서 큰 벽시계를 꺼내 든다. 도는 속도 점점 빨라진다.

숙자 0.5

아영 0.4

동곤 0.3

숙자 0.2

아영 0.19

동곤 0.18

숙자 0.17

아영 (건너뛰며 재빨리 다 센다) 0.16, 0.15, 0.13, 0.11. 땡!

다같이 내 차례야.

세사람은 서로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난리 법석.

순식간에 몰려 들어와 각자 방 안의 일상을 시작한다.

숙자는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동곤은 시계를 베고 눕는다. 아영은 방의 벽시계 시침과 분침을 돌려 오전 8시로 맞춘다.

아영 내 시간이에요. 빨리 해주세요.

숙자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아영 시간 가요. 빨리요.

숙자 (단단히 화가 나) 아영이 너···.

아영 ···.

숙자 사람을 들이면 어떻게 해?

동곤 (노래하듯)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아영 조용히 해.

숙자 이건 엄연한 계약 위반이야. 이제 너하고는 계약 해지야.

아영 갑자기 그러시면···.

숙자 저 놈만 끌어들이지 않았어도 아무 탈 없었어.

동곤 (일어나며) 이거 왜 이래요. 나는 피해자예요.

아영 방법이 있을 거예요.

숙자 괜히 들켜서 피곤해지느니 방 빼서 다른 데 가는 게 나아. 어차피 주인도 나가라고 한바탕 난리 부렸어. (사이) 아들이 여기로 들어온대.

아영, 동곤 네?

아영 제발 그것만은···.

동곤 우리도 같이 이사 가요?

아영 (동곤을 째려본다)

숙자 계약 해지라니까.

동곤 해지라뇨? 겨우 하루 살았다고요.

숙자 내가 뭐 어쨌다고.

동곤 시간방을 탄생시켰잖아요. 이 방의 어머니 같은 존재랄까요?

아영 농담이 나와?

동곤 맞는 말이잖아.

숙자 헛소리 집어 치우고. 아영이하고 해결해.

숙자, 휴대전화가 울린다. 친절하게 통화한다.

숙자 네, 고객님. 암보험요? 자녀분 것도 드신다고요. 그리로 금방 갈게요. (통화 마치고, 아영을 쏘아본다) 빨리 해결해. 저놈도, 월세도.

숙자, 서둘러 나가다 뭔가 생각난 듯 뒤돌아 온다.

깜빡한 가방은 챙겨 가고,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두고 나간다. 급하게 나가다 문을 살짝 열어두고 간다.

아영 안 들키게 조심하랬잖아.

동곤 변장까지 시켜서 끌어들인 게 누군데.

아영 끝까지 모른다고 버텼어야지.

동곤 더 있다가는 짭새 뜰 뻔했다고.

아영 주인집 아들이 문제야. 그놈만 안 오면 아무 문제 없는데.

동곤 우리 업소 형님들한테 부탁 좀 해볼까?

아영 허튼 짓 하지 마.

아영,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동곤을 쳐다본다.

아영 내 시간이야.

동곤 치사하게. 비상이라고 일찍 오라며?

아영 다 끝났잖아.

동곤 그래서 지금 날더러 나가라고?

아영 응.

동곤 우리도 해결 봐야지.

아영 걱정 붙들어 매. 이 방은 반드시 지킬 거야.

동곤 오늘만 그냥 좀 있자.

아영 너랑 같이?

동곤 뭐 어때? 우리 같이 건조한 사이에.

아영 가줄래. 머리 아파 죽겠거든.

동곤 나갔다 오면 집주인 눈치도 봐야 하고. 어디 갈 데도 없다고.

아영 약속한 시간을 지켜줘.

동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을게.

아영 6시간만이라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동곤 (옷장 가리키며) 저, 저기 들어가 있을게.

아영 뭐라고?

동곤, 순식간에 옷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영이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

아영 뭐하는 짓이야?

동곤 이제 편하게 쉬어. 방해 안 할게.

아영 거기서 당장 나와.

동곤 나 없다고 쳐. 그거, 투명 인간!

아영 죽고 싶어?

동곤 여기 한숨 때리기 딱이다.

아영 좁아 터진 데서 잠이 와?

동곤 시간 되면 바로 깨워.

낯선 남자가 방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아영 (멀찍이 서서) 누, 누구세요?

아들 그쪽은요?

아영 ···.

아들 여기 살아요?

아영 네.

아들 (굉장히 놀라며) 이 방을 세 줬어요?

아영 누구신데···.

아들 아들 집 나간 지 얼마 됐다고.

아영 혹시, 주인집? (사이) 일단 여기 좀 앉으세요.

두 사람, 어색하게 앉는다.

아영 이 방으로 이사를 온다고···.

아들 누가요? 내가요?

아영 그래서 방 빼라고 그러셨는데.

아들 그럴 리가 없어요. 뭔가 꿍꿍이가 있겠죠.

아영 무슨···.

아들 그게 아마도···. (망설인다) 아무튼 내가 이 방에 오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집에 잠시 왔다가, 내 방에 두고 온 게 생각나서.

아영 (옷장을 쳐다본다)

아들 저,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아영 그러세요.

주인집 아들이 화장실에 간 사이,

아영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옷장을 두드린다.

아영 그새 잠든 거야.

반응이 없자, 더 세게 두드린다.

아영 시간 됐어. 빨리 튀어 나와.

동곤, ‘시간’이라는 말에 놀라 옷장 밖으로 나온다.

이때 아들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아영 그자야. 주인집 아들.

동곤 뭐?

아영과 동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동곤, 손수레에서 업소용 쟁반을 꺼내 아들을 위협한다.

동곤 너 잘 걸렸다.

아들 (물러선다) 왜 그래요.

동곤 우리 형님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아들 무슨 소리야?

아영, 부엌에서 식칼을 찾아 동곤에게 주려 한다.

아영 이걸로 해.

동곤과 아들, 모두 놀란다.

동곤 사람 놀라게.

아영은 칼을 든 채 아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간다.

아영 이 방은 우리 거야. 여기로 들어오지 마.

아들 도, 도둑이었어? (동곤 보며) 그것도 2인조.

책상 위로 강하게 칼을 내리꽂으며 협박한다.

아영 이 방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아들 ···.

동곤 한 발짝도 안 돼. 발모가지를 확 그냥···.

아들 (주머니 뒤진다) 돈 가진 거 다 줄 테니까 제발 나 좀 보내줘요. (손목시계 푼다) 이 시계도 가져요. 비싼 거예요. 다 가져요.

아영 지금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동곤 도둑들 아니고 세입자들!

아들 정말이에요? 도둑 아니에요?

동곤 이렇게 때깔 좋고 잘생긴 도둑 본 적 있어?

아들 아니 근데 왜 나한테···.

아영 당신 때문에 쫓겨나게 생겼다고.

동곤 이 방에 들어온다고 그래서.

아들 아니 들어올 일 없다니까 자꾸 왜 그래요. 이 방 월세 밀렸다고 엄마한테 쫓겨나서 친구 집 전전하면서 산다고요. 밀린 방세도 아직이에요.

동곤 (쟁반 내리며) 아들인데도 월세를 받아?

아들 자식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요. 악착같이 뜯어 갑니다.

아영 그러니까 진짜 이 방에 이사 올 일이 없다고?

아들 그렇다니까요.

아영 그럼 주인 아줌마 속셈은 뭐지?

아들 그건···.

아영, 아들이 망설이자 꽂혀 있는 칼을 뽑아 들려고 한다.

아들 월, 월세 올려 받으려는 거예요.

아영 (더 위협) 확실해?

아들 보증금 빼줄 돈도 없을 거예요.

밖에서 숙자가 문을 두드린다.

숙자 문 좀 열어 봐.

동곤, 아영은 몹시 당황한다.

숙자 (계속 두드린다) 안에 없어?

아영 (동곤에게) 옷장. (아들에게) 당신은 화장실. 빨리 피해.

동곤 화장실은 위험해.

아영 둘 다 옷장! 빨리!

아들 누군데 그래요?

동곤 사채업자.

동곤, 옷장에 들어가 숨는다. 아들도 얼떨결에 따라 들어간다.

옷장 안이 비좁아 아영이 억지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린다.

문 열어주자 숙자가 급하게 들어온다. 아영은 옷장 앞에 선다.

숙자 빨리 안 열고 뭐했어?

아영 자느라고요. 집에는 왜 다시···.

숙자, 무언가를 찾는다. 책상 위에서 휴대전화 발견.

숙자 내 정신 좀 봐. 여기 두고. (책상에 꽂힌 칼을 본다) 저건 뭐야?

아영 (다가가 칼 뽑으며) 과일 좀 깎아 먹으려고.

숙자 취미도 참 별나.

숙자, 가려다 뒤돌아 다시 들어온다.

숙자 내 목도리를···. 어디 뒀더라.

방 안을 찾다가 옷장을 보고 서서히 다가온다.

놀란 아영은 가방에서 자기 목도리를 꺼내준다.

아영 바쁜데 이거 그냥 하고 가세요. 선물이에요.

숙자 (받는다) 선물은 선물이고, 월세는 월세야.

목도리 두르고 나가는 숙자를, 아영이 잠시 불러 세운다.

아영 밤에 들를게요. 방 때문에 상의할 게 좀 있거든요.

숙자 집주인 조심해. (나간다)

옷장 안에서 두 사람 쏟아져 나온다. 헉헉거린다.

동곤 죽을 뻔했어. 둘은 안 돼. 무리데스.

아들 사채업자 아니죠? 누군데 그래요?

아영 이 방 주인.

아들 네? 우리 엄마가 주인 아니에요?

동곤 쉽게 말해서. (노래하듯) 세 준 놈, 그 위에 세 준 놈, 그 위에 세 준 놈.

동곤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동곤 (받는다) 뭐라고요? 현빈 형님요? 알았어요. 총알같이 갈게요. (끊는다) 1시까지는 다시 올 수 있어. 괜찮겠어?

아영 너는 2시부터야.

동곤 저 사람은?

아영 바로 돌려보낼 거야.

동곤, 서둘러 나가는데 아영이 불러 세운다.

아영 (우유 손수레 가리키며) 야, 장동곤! 저거는?

동곤 어차피 다시 올 거잖아.

아영 변장 안 해? 들고 가. 들키면 어쩌려고.

동곤, 마지못해 손수레에 자기 물건을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간다.

아들도 슬쩍 따라 나가려고 한다.

아영 잠깐만요. 정말 죄송해요. 워낙 방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이 심해서 그래요. 가끔 나도 모르게 불같이 화가 나는데···.

아들 아니, 뭐, 그럴 수도···.

아영 혹시 하루 종일 집에 있어요?

아들 취직도 안 되고 해서, 밤에는 친구 가게에서 일을 좀···.

아영 굉장히 싼 방이 있는데.

아들 ···.

아영 하루 종일은 아니고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쓸 수 있어요. 하루 6시간, 월세는 8만원만 내면 돼요.

아들 그런 방이 있어요?

아영 네. 시간방! 오전에는 방에서 쉬고, 오후에는 도서관 가고. 어때요?

아들 거기가 어딘데요?

아영 (손짓) 여기!

아들 이 방요?

3장.

숙자는 얼굴에 수건을 묶고 마사지크림을 바르고 있다. 아영은 그 옆에 앉아 숙자 눈치를 살핀다.

아영 주인이 아무래도 빼줄 보증금이 없는 것 같아요.

숙자 (쳐다본다) 누가 그래?

아영 동네 아줌마들 염탐 좀 해봤는데 확실해요. 소식통 슈퍼 아줌마한테 들었는데, 글쎄 주인집 아들이 다단계에 홀딱 빠져서 패가망신할 뻔했대요. 주인이 그 일 처리하느라 빚까지 엄청 지고, 난리도 아니었대요.

숙자 뭐? 큰소리만 뻥뻥 치더니 뭔가 미심쩍다 했어.

아영 보증금은 확실히 없어요.

숙자 순둥인 줄 알았더니 재주도 용하다.

아영 버티면 돼요. 이 방에서 안 나가도 된다니까요.

숙자 그래도 그놈은 해결해야 돼.

아영 월세를 아예 안 낼 수도 있는데.

숙자 (솔깃하며) 하나도?

아영 대신 밀린 월세 몇 달만 좀 봐주세요.

숙자 그거야···.

아영 언니라고 해도 되죠?

숙자 편하게 불러.

아영 저희 합쳐요.

숙자 같이 살자고?

아영 어차피 밤에 알바하느라 집에 거의 안 들어와요.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같이 방 써도 집에 거의 없을 거니까.

숙자 불편하지 않을까?

아영 월세 하나도 안 내셔도 된다니까요.

숙자 (바싹 다가간다) 진짜 무슨 수가 있어?

아영 하나 더 들이세요.

숙자 ···.

아영 셋이서 월세 다 부담할게요.

숙자 지금도 주인 눈치 보이는데 어떻게 그래. 들키기라도 하면···.

아영 안 들키게 철저하게 교육시킬게요. 시간도 그대로 쓰고, 월세도 안 내고. 언니는 손해날 거 하나도 없어요. 대신 밀린 월세만 좀···.

숙자 괜히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것 같은데.

아영 돈 급하시잖아요. 카드 빚도 갚아야 하고. 그래서 12시간 세도···.

숙자 그걸···.

아영 카드 회사 독촉장 봤어요. 오해 마세요. 방에서 그냥 우연히 본 거니까.

사각 티슈 몇 장을 연거푸 뽑아 얼굴에 마구 문지른다.

숙자 내가 쓴 거 아니야. 다 그놈이 저지른 거야.

아영 누가···.

숙자 망할 놈의 개자식. 원수덩어리. (사이) 전 남편.

아영 그러니까 사람 하나 더 들이세요. 빨리 빚 갚아야죠.

숙자 사람을 어디서 구해?

아영 적임자가 하나 있어요. (휴대전화 울린다) 네. 지금 나가요. (끊는다) 알바하다 잠시 온 거라서···.

숙자 잠은 안 자?

아영 그럴 시간 없어요. 월세는 봐 주시는 거예요. (마당으로 나간다)

집주인이 아영을 기다리고 있다.

집주인 정말 올려 줄 거야?

아영 네. 그렇다니까요.

집주인 고모 일에 조카가 왜?

아영 월세 올려 드리고 저도 여기 같이 살까 하고요.

집주인 그래? 근데 얼마나?

아영 십오 정도. 그냥 아드님 쓰라고 하기에 방이 좀 아깝지 않아요? 다달이 사십을 집에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집주인 (혼잣말) 사십!

아영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집주인 나가고, 아영도 밖으로 나간다. 째깍째깍 시간이 흐른다.

아영, 조심스럽게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동곤이 마당에서 방 쓸 차례를 기다린다. 아영, 나오다 기겁한다.

아영 뭐해? 변장도 안 하고?

동곤 이제 조카잖아. 그럴싸하게 연기만 하면 돼.

아영 자주 들락거리면 의심받아.

아영, 동곤을 데리고 재빨리 들어간다. 동곤, 벽시계를 2시에 맞춘다.

동곤 안 가고 뭐해? 내 시간이야.

아영 잠시만. 중요한 일이야.

동곤 지정된 시간을 지켜줘.

아영 그새 따라 하기는. (사이) 방세 올려줘야 돼.

동곤 뭐?

아영 집주인이 요구를 해.

동곤 아들놈 때문이라며?

아영 원하는 건 돈이었어.

동곤 고모한테 더 내라고 해.

아영 장난하지 말고. 한 방에 사니까 공동 책임이잖아.

동곤 주인하고 계약한 건 그 여자야.

아영 십오를 더 달래.

동곤 이런 낡은 방을?

아영 당장 아쉬운 건 우리잖아.

동곤 (시계 본다) 일단 좀 씻고.

쓰레기통에서 수건, 칫솔, 면도기를 꺼내 빠르게 움직인다.

아영 거기다 왜···.

동곤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짱박았어.

아영 들고 다녀. 숙자 언니가 질색해.

동곤 잘만 숨기면 돼.

아영 더 낼 거지?

동곤 씻고, 쉬고, 자고, 밥 먹고, 똥 싸고. 꾸물거리다 언제 다 해. 나이트에서 부킹이 필수라면, 시간방은 스피드가 생명이지.

동 곤은 화장실로 들어가 쏜살같이 씻고 튀어나온다.

아영 그러니까 그 언니가 우리 사정 봐줘서 5만원을 더 내는 거야. 보증금도 그 언니가 내고 있고 12시간 쓰니까 15만원. 나머지는 너, 나 6시간에 각각 12만 5000원.

동곤 4만 5000원이나 더 내라고?

아영 이런 방을 어디 가서 구해.

동곤 고시원으로 갈까?

아영 거기도 한 달에 최소 삼십은 넘어. 그걸 어떻게 견뎌? 업소에서 오전에 쪽잠이라도 잘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

동곤 돌겠다!

아영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동곤 주인 살고, 우린 죽고.

아영 ···.

동곤 5000원이라도 깎자.

아영 사용 시간에 따라 공평하게 고통 분담!

동곤 이 넓디넓은 지구에, 하루 24시간 내 몸뚱이 하나 편하게 누일 방 한 칸이 없다니···.

아영 지구는 좀 심하다.

동곤 심한 건 이 방이야.

아영 다음 달부터 올리는 거다. (나간다)

동곤, 부엌 싱크대 안에 숨겨둔 침낭과 시계를 꺼내서 잠을 청한다.

똑딱똑딱 시간이 흐른다. 저녁 8시 무렵, 숙자가 밖에서 문 두드린다.

동곤, 후다닥 일어나 방을 나오다 숙자와 마주친다.

숙자 이러다 의심받아. 빨리 가.

동곤 가요, 가.

숙자는 방으로 들어와 곧바로 잠을 잔다. 시간 흘러 아침 7시 30분. 알람 울리자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아영은 방 밖에서 기다리다 졸고 있다. 모래시계를 손에 쥐고 있다.

숙자 (나오며) 빨리 들어가.

아영 (잠꼬대하며) 찜질이세요? 목욕만 하세요?

숙자 (깨우며) 여기 집이야.

아영은 비몽사몽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벽시계를 8시에 맞춘다.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든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자, 벌떡 일어난다.

집주인 아가씨, 있어?

아영 네. 나가요.

아영, 정신을 차리고 눈빛을 번뜩인다.

집주인 그때 말한 월세는···.

아영 안 그래도 다른 방 열심히 알아보고 있어요.

집주인 다른 방이라니?

아영 보증금이나 잘 준비해주세요.

집주인 아들놈 잘 구슬려서 다락방 쓰라고 하면 돼.

아영 아드님한테 미안해서요. 그냥 이사 나갈게요.

집주인 이사라니?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아영 그 월세면 투 룸도 가능하겠고. 아무래도 둘이라 불편하기도 하고.

집주인 그러지 말고 조금만 올려주고 그냥 살아. 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잖아.

아영 얼마나···.

집주인 10만원만 더 내.

아영 그 돈이면 그냥 이사 가는 게···.

집주인 섭섭하게 왜 그래. 그럼 딱 5만 원만.

아영 보증금 준비를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집주인 (자기도 모르게 소리 지른다) 안 돼! 아니, 당분간은 그냥 살아.

아영 최종 결정은 고모가 해야 하니까···.

집주인 월세만 밀리지 말아줘.

집주인은 울상을 짓고 나가고, 아영은 방으로 들어와 한숨을 돌린다.

혼자 계산을 해보며 웃음 짓는다.

아영 계산이 그러니까. (계산기 두드려 보며) 동곤이 6시간 12만 5000원, 주인 아줌마 아들 6시간 8만원. 나는 12시간 4만 5000원! 숙자 언니 0원! 겨우 25만원 딱 맞췄네. 이제야 두 다리 뻗고 자겠다.

마당으로 낯선 남자 한 명이 들어와 문을 두드린다.

장씨 나야.

아영 누구세요?

장씨 (여자 목소리 들리자 침묵)

동곤이 들어오다, 장씨를 보고 당황한다.

동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장씨 뭐가 잘못됐어?

집주인이 마당으로 나오다, 두 사람을 본다.

집주인 이 분은 또 누구···.

동곤 삼, 삼촌이세요.

장씨 (얼떨결에 목례)

집주인 친척들 사이가 아주 죽고 못사나 봐. 조카에, 삼촌에···.

동곤 저희 집안이 워낙에 서로 친해가지고.

아영은 웅성거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와 본다.

동곤 (아영에게) 삼, 삼촌 오셨어.

아영 (놀라서 바라본다)

집주인 (수첩 꺼내 적으며) 세금 추가! 친척들이 너무 많이 들락거려. (나간다)

아영은 두 사람을 데리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아영과 동곤은 싸우고, 장씨는 방을 둘러본다.

아영 삼촌이라니?

동곤 그게···.

아영 뭐야?

동곤 삼촌 맞다니까.

장씨 동곤이 삼촌 맞습니다.

아영 아저씨는 빠지세요.

동곤 삼촌한테 왜 그래?

아영 누굴 속이려고.

동곤 삼촌이 나 보러 오셨다니까.

아영은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책상에 위협적으로 내리꽂는다.

장씨, 놀라서 물러선다.

아영 당장 불어.

동곤 방, 방세가 올라서.

아영 뭐?

동곤 그냥 같이 지내려고.

아영 그게 다야?

동곤 룸메이트라니까.

아영 방을 같이 써?

동곤 반, 반.

아영 월세를?

아영은 다가가 동곤을 마구 꼬집는다.

동곤 악, 방을···.

아영 어떻게?

동곤 너처럼···.

아영 혹시?

동곤 아, 세 시간···.

아영 설마···.

동곤 악, 세, 세를···.

아영 너까지···.

동곤과 아영이 싸우는 사이, 장씨는 벽시계 시간을 오후 5시로 돌려서 맞춘다.

장씨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잠깐!

아영과 동곤은 놀란 표정으로 장씨를 쳐다본다.

장씨 (벽시계를 가리키며) 이제, 내 차례입니다.

이때 문 밖에서 ‘똑똑똑’ 노크 소리 들려온다.

세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경쾌한 음악 소리 들린다. 서서히 어두워진다.

[당선소감] 실패를 두려워 않고 길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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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임은정
먼 길을 돌아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열심히 글 쓰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결국 어느 것 하나에도 제대로 덤벼들지 못했습니다. 삶의 시기마다 그래야 했던 이유와 핑계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었습니다. 실패가 두려운 거였어요. 그와 맞서 보려고 하지 않았더군요.

그때부터 쉽고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고, 더 늦기 전에 정진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희곡을 쓰면서 실패하고 좌절했던 곳에서 새롭게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올곧게 홀로 서야 함께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 길에 ‘신춘문예’는 큰 목표 지점이었고 파고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뒤늦게 뛰어든 만큼 많이 더디 가겠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언젠가 깨우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뭐라도 되겠지’ 그런 무한 긍정의 마음을 품고.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큰 행운을 만났습니다. 당선 소식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기쁨의 눈물도 흘렸습니다. ‘정말이야? 꿈 아니야?’라고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좌절을 거치니 희망이 옵니다.

노력은, 간절함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고마운 분들의 얼굴이 뜨겁게 떠오릅니다. 덕분에 오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부족한 작품, 천금 같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며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시 희곡 쓸 용기를 주신 라푸푸서원 차근호 작가님 특별히 감사합니다. 선욱현 작가님, 최원종 작가님, 김경락 연출님, 박세환 작가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퇴고를 도와준 배우 오혜진, 함께 고생한 지희야 정말 고맙다. 묵묵히 외조해 준 우리 남편 정재만, 부모님, 가족들, 모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약력

▲1976년 포항 출생▲계명대 국문과 졸업▲구성작가, 프리랜서 기자 활동

[심사평] 서민층 주거 문제, 탁월한 리듬감으로 살려

올해 희곡부문에는 254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기록적인 숫자다. 구어적인 것을 글로 담는 것에 익숙한 세대가 도래한 것일까? 연극을 많이 보는 문화적 환경이 조성된 덕분인가? TV 매체에 대한 친근감이 삶의 드라마화를 촉진한 것일까? 아니면 문예창작과와 연극 전공 학생 수의 비약적인 증가가 누적된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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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장성희(연극평론가·왼쪽), 노이정(연극평론가).
심사위원 장성희(연극평론가·왼쪽), 노이정(연극평론가).
출품작 중에 현실을 포착하는 능력, 혹은 발상이 빛나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 것이 올해 신춘문예의 큰 기쁨이다.

출품작들이 다룬 소재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자살, 주거 문제, 실업 문제였다. 사람살이가 극도로 힘들어진 서민과 젊은 층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살’과 관련한 작품이 이례적으로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자살률이 최근 8년간 가장 높다는 현실을 말해주듯 자살사이트, 자살학원, 자살을 둘러싼 해프닝과 사후 망자의 이야기까지, 자살의 연극화에는 끝이 없었다. 자살과 생명보험을 연결시킨 작품도 많아 자살의 주요원인이 경제적 문제임을 짐작하게 한다.

절박한 상황들을 기정사실로 한 채 그것을 연극적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이 많이 등장한 것에서 이 시대의 누적된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선작인 임은정의 ‘기막힌 동거’ 역시 서민층 주거 문제의 어려움을 증식 이미지의 코미디로 변형시킨 작품이다.

생존 문제를 타개하려는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이 황당무계한 방식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인물들의 숨찬 생활의 리듬은 작가에 의해 연극적 템포감으로 변환되었다. 무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감각이 탁월한 연극적 리듬과 타이밍으로 드러난다.

끝까지 논의된 또 하나의 작품은 김경민의 ‘욕조 속의 인어’다. 이 작품 역시 오늘날 한국 사회의 20대가 처한 주거 문제를 은유적으로 다뤘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떠올리게 하는 독창적인 상황 설정이 매력으로 꼽혔으나 인간을 일면적으로 이해하는 감상성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이 외에 변효진의 ‘연기수업’, 김중원의 ‘다금바리’, 안재희의 ‘완벽한 화장실을 찾는 법’ 등도 최종 논의에 올랐다.

2013-01-01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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