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곧 예술… 땀이 곧 작품

일이 곧 예술… 땀이 곧 작품

함혜리 기자
입력 2016-11-27 17:44
수정 2016-11-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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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형 개인전 ‘오늘의 현장’

누구에게나 먹고사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팔리지 않는 예술을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더욱더 큰 문제일 것이다. 그래도 삶은 살아가야 하는 것. 선배 작가의 어시스턴트를 하거나 도안이나 간판, 페인트 작업을 하고, 영상 기술이 있는 작가들은 촬영이나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버틴다. 노동이 예술이 될 수는 없을까?

예술과 노동의 접점을 보여주는 이정형 작가의 개인전 ‘오늘의 현장’ 전시 장면. 미술관과 갤러리 등의 전시장 공사를 생업으로 하는 작가는 공사현장을 전시장에 재현했다.  송은문화재단 제공
예술과 노동의 접점을 보여주는 이정형 작가의 개인전 ‘오늘의 현장’ 전시 장면. 미술관과 갤러리 등의 전시장 공사를 생업으로 하는 작가는 공사현장을 전시장에 재현했다.
송은문화재단 제공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삼탄빌딩 1층에 자리한 송은아트큐브. 전시장 바닥에는 페인트 통과 붓, 롤러, 분무기가 놓여 있고 벽은 페인트칠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아마도 새 전시를 앞두고 전시장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실은 ‘오늘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이정형(33) 작가의 개인전 모습이다.

“그동안 많은 현장에 다녔다. 내일도 현장에 간다. 하루를 대가로 노동을 하는 현장이기도 하고 ‘오늘’이라는 이름을 단 나의 전시이기도 하다. ” (작가 노트 중에서)

이정형은 홍익대 도예유리학과를 나와 홍익대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한 설치미술가 겸 전시공간디자이너다. 선배 작가들의 어시스턴트로 현장 작업을 돕다가 4년 전 동료 몇 명과 공간디자인 회사를 차리고 전시장 공간설계 및 디자인을 생업으로 삼아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예술가의 길을 택한 그로서는 부업이 본업이 되는 상황이 고민이 될 법도 한데 그는 현명하게도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작가는 “삶을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일을 하다 보니 작업을 하지 못해 작가로서 고민이 많았다”면서 “일을 하면서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자연스럽게 전시와 작업이 인과관계를 갖고 선순환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동과 예술의 접점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장 공사 현장에서 발견하는 예술적 요소들에 주목해 이를 작업으로 선보여 왔다. 지난해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가진 첫 개인전 ‘파인워크스’에서는 공간조성공사를 하면서 남은 잔해나 페인트 통, 사다리 등 현장에서 찾은 다양한 오브제를 전시장으로 옮겨 예술작품으로 보여줬다. 도색작업을 하기 위해 모아 둔 페인트통을 전시장으로 옮겨 온 ‘페인터’라는 작품에서 그는 페인트 통에 담긴 롤러를 화가의 팔레트나 붓과 동일시했다.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면장갑을 설치한 ‘위대한 손가락’, 여러 번의 페인트칠로 표면이 두꺼워진 전시장 벽면을 재현한 ‘예술의 전당’ 등을 통해 공사현장에서 발견한 사물을 마치 추상조각이나 회화처럼 보여지도록 연출했다.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아마도 예술공간, 2016), ‘서울 바벨’(서울시립미술관, 2016), ‘아시아 창작공간네트워크-아시아 민주주의의 씨실과 날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교류원, 2015) 등 다양한 그룹전에서 작업현장의 오브제들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선보였다.

공사현장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설치한 작품 ‘현장 콜렉션’. 송은문화재단 제공
공사현장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설치한 작품 ‘현장 콜렉션’.
송은문화재단 제공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전시를 준비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모두 허물어 버립니다. 쓸모없어지는 부산물들이 쌓이죠. 준비하고, 부수고, 짓고, 부수고… 이런 독특한 전시 시스템을 보여주기 위해 부산물들을 전시장에 가져왔습니다. ”

이번 송은아트큐브 전시에서 그는 공사가 진행 중인 생업의 현장이자 개인전을 위한 현장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노동과 예술의 경계에서 겹쳐지는 지점에 대해 탐구한다. 작가는 작업이 진행되는 공사현장을 내보임으로써 생계를 위한 노동이 창작행위가 되고, 예술의 범주에 들어서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전시장을 둘로 나눠 한쪽에서는 공사 현장을 재현하고, 전시장 뒤편의 분리된 방에서는 2012년부터 공사현장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아카이브와 공사현장의 부산물을 이용한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노동과 예술작업을 동시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했다”면서 “관람객들이 예술과 비예술의 사이에서 작가의 노동이 특별한 노동인가, 작가가 노동하면 모두 예술인지, 그렇다면 작업자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지 등 많은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장 감각이 있기 때문에 전시장 공사를 하는데 유리한 점도 있고, 전시장 공사를 하면서 다른 작가들과 주제에 대해 리서치를 하면서 얻는 경험이나 지식이 작업에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면서 “회사의 일을 키울 것인지, 조절 가능한 이대로 갈 것인지가 지금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송은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송은문화재단이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이다. 전시는 오는 12월 3일까지. (02)344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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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6-11-2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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