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었으므로 진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한데 올해는 유난히 꽃의 심기가 어지러웠다. 서둘러 피었다가 금새 후드득 졌다. 그 탓에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꽃들이 많다. 등나무꽃은 그중 하나다. 5월 초쯤 절정의 보랏빛을 선보여야 하는데 올봄엔 4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절정을 지나는 중이다. 미처 전하지 못한 등꽃의 자태를 소개한다. 메모해 뒀다가 어느해 봄, 기억이 떠오를 때 찾아보길 권한다.
●아름다운 등나무꽃의 원형-경남 진주 상봉주공1차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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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상봉1차아파트 등나무꽃.
아마 등나무 파고라 정도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것이다. 놀이터 옆에 조성했으니, 아이와 엄마, 어르신들이 함께 쉬는 공간을 염두에 뒀을 테다. 이 등나무 쉼터를 처음 조성한 이는 알까. 그 나무가 무성히 자라 이제 인증샷 즐기는 전국의 청춘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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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상봉1차아파트 등나무꽃.
진주 상봉주공1차아파트 등나무는 아름다운 등책(藤柵)의 원형같은 나무다. 이 아파트가 세워진 것이 1979년이라니 수령이 최소 40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해마다 4월 말~5월 초에 보랏빛 꽃술을 내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거의 1주일 이상 일찍 개화했다. 이 등나무가 꽃을 내리기 시작하면 이 장소를 비밀스레 공유하던 일부 여행객과 사진작가들이 전국에서 밀려들기 시작한다. 이곳을 사랑방처럼 쓰던 동네 주민들이 슬그머니 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도 이 무렵이다. 다만 주민들의 생활 공간인 만큼 여러 예의를 갖추는 건 필수다.
●만든 이들의 마음이 더 예쁘다…전북 무주 등나무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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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 등나무 운동장.
등나무 운동장은 무주뿐 아니라 나라 안의 운동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운동장으로 꼽을 만한 곳이다. 운동장 조성 경위가 인상적이어서다. 아주 오래전, 주민체육대회가 열린 날이었다고 한다.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는데, 하필 ‘본부석’에만 차양막이 세워져 있더란다. 관중석에 앉아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아야 했던 주민들에게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건 당연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운동회’에 참여하는 주민 숫자가 줄자 군수가 관중석에도 등나무 그늘을 만들자는 의견을 냈다. 그 작업을 맡은 이가 ‘감응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정기용(1945~2011) 건축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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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 등나무 운동장.
정기용은 생전 자신이 가장 잘한 일 가운데 하나로 꼽을 건축물을 이 운동장에 세운다. 그게 바로 등나무 스탠드다. 그는 등나무와 비슷한 굵기의 철봉을 엮어 관중석 전체에 지줏대를 세웠다. 줄기 뻗을 자리를 만난 등나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순식간에 자랐고, ‘본부석 차양막’보다 훨씬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등나무 그늘에 들면 건축은 홀연히 사라지고 자연이 오롯이 주인공으로 남는다. 얇은 책 한 권 들고 가는 건 필수다. ‘카공족’이라 욕 먹지 않고, 종일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다. 책을 베개 삼아 늘어지게 오수를 즐겨도 좋겠다.
●주변 풍경도 예쁘다…경남 함안 ‘홀로 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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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강나루생태공원 등나무꽃.
다른 명소들처럼 인위적으로 조성한 건 같은데, 들어선 자리가 기막히다. 함안 강나루생태공원의 너른 둔치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모양새다. 주변은 노인을 위한 게이트볼 경기장과 청보리밭이 전부다. 2m 남짓한 높이지만 주변에 크기를 견줄 게 없어 더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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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 강나루 생태공원 등나무꽃.
등나무 쉼터는 새장처럼 원형으로 만들었다. 보랏빛 꽃송이와 파란 철책이 청량한 느낌을 준다. 철 구조물 안엔 빙 둘러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쉬기 좋다.
강나루생태공원은 부지가 넓어 등나무를 찾기가 쉽지 않다. 게이트볼 경기장을 겨냥해 가는 게 낫다. 강나루오토캠핑장 근처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다녀와도 된다.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전북도는 오래전부터 유치를 준비해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난해 ‘세계잼버리’ 부실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이라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전북도의 올림픽 유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