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가 횡포 꾸짖고 조정 잘잘못 따진 사관의 붓

권세가 횡포 꾸짖고 조정 잘잘못 따진 사관의 붓

입력 2016-05-30 15:51
수정 2016-05-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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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신간 ‘사필(史筆)’

“국가가 선정을 베풀지 못하고 교화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탐욕스러운 재상과 포악한 수령들이 백성의 뼈와 살을 깎고 고혈을 짜내고 있으니, 백성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디에 대고 호소할 길도 없다…극심한 흉년과 무거운 조세로 백성이 피폐해져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무너질 상황이다.”(‘명종실록’ 16년 10월6일)

‘의적’ 임꺽정이 조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출귀몰하기를 3년. 좌의정 이준경은 임꺽정 무리를 뿌리뽑겠다며 토포사(討捕使)라는 이름으로 황해도와 강원도에 고위급 무관들을 보냈다. 그러나 사관(史官)은 도적들이 횡행하는 원인을 정치의 잘못에서 찾는 논평을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렇게 사건의 전말 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담겼다. ‘사신왈(史臣曰)’ 또는 ‘사신논왈(史臣論曰)’로 시작하는 사론(史論)이다. 사관은 임금과 신료의 잘잘못을 가감없이 따지고 당대 사회상에 대한 논평도 내놓는다. 조선 전기 실록에 기록된 사론만 3천400여건에 달한다.

신간 ‘사필(史筆)’은 사관의 시선으로 조선의 조정과 사회상을 들여다본 책이다.

실록을 쓴 사관은 7품 이하의 관원으로 문과에 급제한 지 얼마 안된 젊은이들이었다. 제아무리 고관대작이라도 잘못은 비판하고 넘어가는 패기, 직필을 견지하고 곡필을 경계한다는 곧은 마음가짐이 있었다.

사관의 직무는 재상의 권한과 견줄 정도였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 “재상은 수십 년 동안 어떤 사람을 성공하게 할 수도 있고 몰락하게 할 수도 있지만, 사관은 어떤 사람의 이름이 천백 년 뒤까지 남게 할 수도 있고 없어지게 할 수도 있다”고 썼다.

사관의 직필은 실록은 물론이고 기록의 기초자료인 사초(史草)까지도 함부로 열람하지 못하도록 한 제도적 장치 덕분에 가능했다. 실록은 임진왜란 이후 서울 춘추관과 무주 적상산, 강화 정족산, 봉화 태백산, 평창 오대산 등 다섯 곳의 사고에 보관됐다. 중요한 국가의례를 준비하거나 관직제도 조정 등 선례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고출(考出)이 허용됐다.

책은 우선 조선왕조실록의 대표적 사론 38건을 싣고 배경이 되는 전후사정을 짚어준다. 중종 대 종친들의 사치 풍조, 영조 대 종친과 대신의 갈등, 을묘왜변과 조정의 대응, 현종 대 대흉년과 세금 감면 등을 다뤘다.

후반부에서는 사관의 선발 방식과 주요 업무, 실록 편찬 과정과 사고의 위치를 소개한다. 한양에서 멀게는 260㎞ 떨어진 깊은 산속 사고에 사관이 찾아가 보관 상태를 점검하고 통풍시키고 돌아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 한다. 선조들이 실록 보관에 쏟은 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1천893권 888책의 방대한 분량이다. 한문으로 된 조선왕조실록은 1993년 모두 번역됐고 2026년 완역을 목표로 재번역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책은 한국고전번역원의 조선왕조실록번역팀이 썼다. 번역팀은 “조선의 현안을 바라보던 사관의 시선이 담긴 사론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진단해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가는 ‘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396쪽. 1만3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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