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은 작년에 이어 또 구설…관람권 사재기 근절책 미비
영화 시장에서 1월은 성수기이지만 최근 극장들은 관객이 들지 않는다며 울상이다.이런 상황에서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금융사를 감독해야 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영화를 홍보해주고, 피감기관인 금융사들에 영화 예매권 대량 매입까지 요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재기는 음원·출판업계에서 논란이 돼 정부 차원의 근절책이 마련된 것과 달리 영화계에서는 이렇다 할 방지책이 없는 상황이다.
◇ 직권남용한 금융위, 임시완은 정부 홍보대사로 또 구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오빠생각’ VIP 시사회에 참석했다.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임시완이 지난해 8월부터 정부의 금융개혁을 알리는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이 결합한 서비스) 홍보대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임 위원장은 그간 임시완이 한 푼도 받지 않고 열심히 홍보를 해줬다며 이 자리에 금융협회장과 금융사 최고경영자, 출입기자들까지 대동했다.
또 금융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이 영화 시사회장 한쪽에 부스를 마련해 핀테크를 홍보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임종룡 위원장이 취임하고 눈에 띌만한 유일한 성과가 작년 말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로 대별되는 핀테크”라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치적 홍보에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계와 금융권, 시만단체는 이번 금융위의 영화예매권 매입 요청이 선을 넘은 직권남용이라고 입을 모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요청이 오면 피감기관인 금융사는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의 강매”라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금융사를 감독해야 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정부기관의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금융소비자원은 금융위가 금융사에 영화표 구매를 요청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으로 보고 검찰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배우 임시완은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의 노동개혁을 홍보하는 공익 광고에 출연해 논란을 불러온데 이어 이번에는 금융개혁의 홍보대사를 맡아 구설에 올랐다.
앞서 드라마 ‘미생’에서 임시완이 연기했던 ‘장그래’의 이미지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혁법안의 내용과 상충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장그래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대표하는 캐릭터인데, 정부의 노동시장개혁법안은 당시 비정규직의 여건을 더 어렵게 한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임시완은 이에 대해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중하지 못했다”며 공식 사과했다.
◇ 음원·출판에만 있고, 영화에는 없는 사재기 근절책
영화의 사전 예매율과 개봉 초기 관객 수는 그 영화의 흥행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CGV 리서치센터는 사전예매 관객 100명이 영화를 보면 구전 효과 등으로 추가로 영화를 보는 관객이 최고 1천3명에 달할 수 있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센터는 또 사전예매 관객이 VIP 회원이었을 경우 효과가 일반 관객이었을 때보다 1.6배로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VIP 사전예매 관객 100명이 영화를 보면 1천611명이 추가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화사들은 VIP 시사회를 마케팅에 중요한 요소로 간주해 필수적으로 챙기고 있다.
‘오빠생각’의 VIP 시사회에는 임 위원장을 비롯해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 등 금융권 CEO 1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단순 구전효과에서 그치지 않고, 이번 경우에서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부기관 등의 입김에 따라 관람권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영화계에서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극장 관계자는 “영화계에서는 사재기가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간주돼 범죄라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 같다”면서 “사재기는 관객을 오도하고, 영화계 신뢰를 떨어뜨리는 비도덕적인 불법 행위”라고 말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음원 사재기의 기준을 마련해 이에 해당하면 저작권사용료 정산 대상에서 제외하고, 음악산업진흥법안에 음원 사재기 금지 조항 등을 신설 추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했다.
SM·YG·JYP·스타제국 등 4개 대형 음반기획사가 서울중앙지검에 디지털 음원 사용 횟수를 조작하는 브로커인 마케팅 대행업체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출판·유통·작가·소비자 단체 대표 등 출판업계 주요 관계자들은 사재기 출판사의 회원 자격을 박탈하고 해당 도서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외하는 등의 강도 높은 규제안이 담긴 자율협약에 합의했다.
사재기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당시 소설가 황석영과 김연수의 책까지 논란에 휘말린 것이 계기가 됐다.
문체부는 그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을 개정해 출판계의 사재기 처벌 조항을 과태료 부과 처분에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강화했다.
또 사재기를 한 출판사나 유통관련 사업자 등을 신고하거나 고발한 자에 대해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사재기 방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과 법적 장치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정상원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지금까지 영화계에서 사재기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진 적이 없었다”면서 “정부가 대책을 마련할 부분이 있는지 따져 보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