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학자가 40여년간 추적한 ‘동해 명칭’의 진실

부부 학자가 40여년간 추적한 ‘동해 명칭’의 진실

입력 2014-08-04 00:00
수정 2014-08-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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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철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 당시 14세 소년이었다. 미군이 찻집에 놓고 간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10년 후 불문학도로 프랑스에 유학할 당시 베르사유궁에서 ‘동해’(Mer Orientale)라고 쓰인 지구의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이를 계기로 서 교수와 아내 김인환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40년간 사재를 털어 동해·일본해 명칭 연구에 나섰다. 유럽 곳곳의 고(古)서점과 고지도상을 찾아다니며 현지 수집상과 안면을 트고 ‘동해’ 명칭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찾아 모았다. 고서 1권을 손에 넣으려고 1년치 급여를 쏟아부은 일도 있었다.

철저한 사실관계 입증과 이성적 접근이 우선해야 할 동해 명칭 문제는 한국에서 민족주의 정서와 맞물려 종종 감정적으로 다뤄지곤 한다. 서 교수 부부는 2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동해’ 명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해’로 둔갑했는지를 고지도라는 명확한 사료를 근거로 탐구해 왔다.

최근 출간된 ‘동해는 누구의 바다인가’(김영사)는 40여년에 걸친 이들 부부의 동해 명칭 탐구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결과물이다. 저자들은 한국인 시각에서 지도를 연구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동해’ 명칭의 역사·문화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모든 증거가 있다며 철저히 학문적 규명에만 집중했음을 밝힌다.

책은 먼저 동해의 역사와 국제적 위상, 동해를 둘러싼 국가들의 이해관계, 동해·일본해 관련 명칭의 지명학적 분석, 지도 발달사에서 동해 명칭의 변천 과정 등을 소개하고 이어 각국의 동해 표기를 살펴봤다.

아랍 세계에서 고지도의 출현부터 동아시아 삼국 지도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연대순으로 훑은 뒤 각국 지도의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를 다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이중나선형’ 접근법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지명의 발생과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의 동해 명칭 연구가 어떤 측면에서 편향됐는지, ‘일본해’ 단독 표기가 왜 부적절한지 논증했다.

고지도 100여점과 여러 고문헌을 근거로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는 명료하다. 동해는 2천년 전부터 한민족과 만주족이 사용해 온 토착명으로 역사적 정당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한국과 중국 고문헌은 물론 18세기 서양 고지도에서도 ‘동해’나 ‘한국해’ 표기가 대세를 이룬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반면 일제 강점기 국제수로기구에 등재된 ‘일본해’는 일본에서도 정착된 지 100년이 되지 않은 외래명으로, 그 바다를 둘러싼 다른 국가들을 배제한 명칭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결론이다. 심지어 19세기 막부의 지도 출판 담당 관리가 펴낸 지도에서도 동해가 ‘조선해’로 표기됐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저자들은 한국 정부와 학자들의 노력으로 국제사회 일부에서 동해·일본해 병기 움직임이 나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일본 정부의 로비력을 고려하면 현실의 장벽이 여전히 높다고 본다. 그러나 ‘동해’ 명칭에 역사적 정당성이 있는 만큼 노력을 계속한다면 ‘동해 병기’의 염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서 교수는 “내가 한국의 입장에서 동해라고 하는 바다에 빠진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화가 없으나 ‘일본해’를 물리치고 그것을 ‘동해’로 대체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라면서 “’동해’ 이름이 ‘일본해’와 저울의 균형을 이룰 때 우리가 염원하는 화평과 우정을 허심탄회하게 누릴 수 있다”고 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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