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입은 거리, 통하겠습니까

예술 입은 거리, 통하겠습니까

입력 2013-10-30 00:00
수정 2013-10-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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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안양예술공원. 이곳에는 허름한 백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자리한다. 어느 각도에서나 다른 형태로 읽히는, 독특한 모양새다. 2005년 지어진 건축물을 보기 위해 매년 수천명의 건축가와 건축학도가 몰려들었고, 지금은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이 건물은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꼽히는 포르투갈의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작품이다. ‘알바루시자 홀’로 불리던 건물은 내년 개막하는 ‘제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앞두고 ‘안양파빌리온’으로 최근 이름을 바꿨다. 설계자인 비에이라의 의견을 존중하고,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안양예술공원에 설치된 덴마크 작가 예페하임의 ‘거울미로’(2005년). 기독교와 불교에서 ‘108’이란 숫자가 모두 신성시된다는 점에 착안해 108개의 거울로 작품을 꾸몄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제공
안양예술공원에 설치된 덴마크 작가 예페하임의 ‘거울미로’(2005년). 기독교와 불교에서 ‘108’이란 숫자가 모두 신성시된다는 점에 착안해 108개의 거울로 작품을 꾸몄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제공


맥주 박스 등으로 만든 ‘안양상자의 집’(2005년). 독일 작가 베르트홀트 훼르벨트의 작품으로 불교의 석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맥주 박스 등으로 만든 ‘안양상자의 집’(2005년). 독일 작가 베르트홀트 훼르벨트의 작품으로 불교의 석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안양파빌리온의 재개관과 함께 지난 8년간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 온 APAP도 실험대에 놓였다. 2005년 1회 프로젝트 이후 2~3년 주기로 미술·건축·영화·공연 등을 통해 공공예술과 안양을 접목하려 했지만,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한 탓이다.

안양유원지를 예술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된 행사는 평촌신도시 개발, 지역공동체 결합 등과 맞물리면서 시민과 호흡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공공예술’이 아직 국내에 낯설던 시절이었다.

포르투갈의 건축 거장인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안양파빌리온’(2005년).
포르투갈의 건축 거장인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가 설계한 ‘안양파빌리온’(2005년).
APAP를 주최하는 안양문화예술재단은 지난해 7월 아르코미술관장 출신인 백지숙 예술감독을 영입했다. 백 감독은 “시민들이 작품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술공원로를 따라 무질서하게 널린 수십점의 작품들을 리모델링하는 일이다. 백 감독은 “공공예술은 관리와 보존이 중요한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일회성 행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존 설치됐던 작품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거나 창의적으로 해체·보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APAP에선 시민들이 직접 예술을 읽고 쓰고 말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시도된다. 우선 작가에게 예술을 배우고,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보는 ‘공원도서관’이 조성됐다. 또 과거 APAP 관련 자료가 정리된 ‘프로젝트 아카이브’가 꾸려졌다. 시민들이 1박2일간 꼬박 밤을 새워 가며 해외 유명 작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드는 워크숍도 마련된다.

하지만 지자체에 의존한 공공예술이다 보니 한계도 뚜렷하다. APAP는 시장이 바뀌면서 전임 시장의 홍보물로 치부돼 한때 존폐의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심혜화 안양문화예술재단 팀장은 “인구 60만명의 안양에 시립미술관조차 없기에 신·구 도심을 이어 주는 매개체로서 APAP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PAP의 성패가 국내 공공예술의 향후 진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APAP의 벤치마킹 모델은 탄광촌이었던 영국 뉴캐슬의 ‘게이츠헤드’나 군수 공장이 있던 독일 뮌스터의 ‘카셀’이다. 공공예술을 통해 삭막한 도시를 예술의 도시로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뮌스터의 경우 1977년부터 10년에 한 차례 개최되는 조각예술프로젝트를 통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소도시를 풍성한 역사와 생태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공공예술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실험되고 있다. 2010년 시작된 울산 남구 야음장생포동의 ‘신화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1960년대 석유화학공단에 밀려 고향을 떠난 주민들의 집단 이주지였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나서 담과 건물에 고래와 바다를 주제로 한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지금도 하루 100여명의 관광객이 들를 정도다. 신화마을은 이웃 울산 중구(우리동네 미술관 프로젝트)나 동구(벽화마을)는 물론 강원 정선·태백 폐광지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도시 단위에선 서울시가 올해 닻을 올린 ‘도시 게릴라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건물주의 요청을 받아 행해지던 기존 미술 프로젝트와 달리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소재와 주제를 찾아내 남모르게 작업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60여명의 예술가들은 지난달 13일부터 서울 북촌과 한강시민공원, 강변북로 등 5곳을 돌며 주택가 돌담이나 도로 방음벽에 큰 고래와 물고기 떼 등의 그림을 그리거나 ‘서울전망대’란 이름의 미술품을 설치하고 있다. 앞서 재개발로 텅 빈 철공소 등에 형성된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에선 2000년대 후반부터 매년 ‘문래예술공장 프로젝트’가 벌어지고 있다. 200여명의 입주 예술가들이 시민들과 함께 회화, 설치, 조각, 디자인,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죽은 거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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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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