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새벽,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나간 수연(가명·당시16세)은 끔찍한 모습으로 소릴 지르며 집으로 들어왔다. 소리를 듣고 나온 할머니의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참혹했다. 아직 어린 손녀딸이 몸에 불이 붙은 채 타오르고 있었고 수연은 옷을 벗으며 불을 꺼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간 수연의 상태는 심각했다. 전신의 약 36%에 달하는 부위에 화상을 입은 것. 겨드랑이와 팔, 상체에 집중된 화상은 바로 피부이식 수술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의료진은 자칫했으면 전신화상으로까지 번질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 깨어난 수연양은 누군가 자신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저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수연의 남자친구 이모(당시 31세)씨였다.
그는 사건 당일 새벽 4시 쯤 수연 양을 집 앞 공터로 불러내 범행을 저질렀다. 이유는 며칠 전 수연 양으로부터 받은 ‘이별통보’ 때문이었다.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하루가 멀다 하고 폭언과 협박 문자를 보냈던 남자는 결국 열여섯 어린 소녀에게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남기게 됐다.
8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집중조명한 ‘이별범죄’에 대해 네티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88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선화(가명)씨는 새로 온 교회 목사님은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첫사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약 20여 년 동안 이어졌다. 이후 대학생이 된 선화씨는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목사와의 만남을 고집했고, 1998년 혼인신고까지 올렸다.
자상한 목사 남편과 싹싹하고 밝은 어린아내, 그리고 늦게 얻은 두 딸까지 선화 씨의 결혼생활은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4일 선화씨는 잠든 남편의 옆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목사 남편 이었다.
한없이 자상할 줄만 알았던 남편은 날마다 두 얼굴로 변해 선화 씨에게 폭행을 일삼아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견디지 못한 선화씨는 지난해 7월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 그녀를 쉽게 이혼시켜주지 않았다. 이른바 ‘조정전치주의’, 이혼소송 등의 가사사건 판결 전에 조정을 거치는 절차 때문이었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선화 씨는 지쳐갔다. 자신을 떠나려 한다는 배신감에 가득한 남편은 선화 씨에게 더 심한 폭행을 일삼았다. 그러던 남편은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고, 선화 씨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남편을 찾았다. 그것이 선화씨의 마지막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례 가운데 35% 이상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2012년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기준으로 최소 3일에 1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상대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으며, 하루에 1명의 여성이 미수 등 기타위협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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