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분석
민족의 암흑기였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당국으로부터 가장 많이 허가받은 출판물은 족보라는 분석이 나왔다.언론학자인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근대서지학회가 펴내는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 최신호(6호)에 기고한 글 ‘일제강점기의 출판환경과 법적 규제’에서 1920-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출판 통계를 토대로 일제강점기 출판 환경을 조명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가장 많이 허가된 출판물은 족보였다. 1920년대 출판 허가를 받은 출판물 1만 807건 가운데 족보는 1천358건으로 12.6%를 차지했다.
스승이나 조상의 글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펴내는 유고(遺稿)와 문집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 대거 출간됐다. 1920년대 출판이 허가된 족보, 유고, 문집은 모두 2천613건으로 전체 출판 허가 건수의 24%에 이르렀다.
정 교수는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하던 전통사회에서는 죽은 조선(祖先·조상)과 산사람의 업적 및 명예 같은 친족 집단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자산을 중요시한 결과로 이 같은 출판이 많았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소설(959건)과 구소설(529건)을 합친 소설의 출판 허가 건수는 1920년대 1천488건으로 전체 출판 허가 건수의 14% 정도를 차지했다.
정 교수는 특히 “신교육을 받은 지식층을 대상으로 출판되는 신소설은 민족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는 것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1930년대가 되면 신소설(861건)과 구소설(631건)을 합친 소설의 출판 허가 건수(1천492건)가 전체 출판 허가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로 떨어진다.
정 교수는 “이는 출판을 허가받은 건수이고, 소설의 실제 발행 부수는 족보나 유고 문집에 비해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1920-1930년대 정치 경제 서적과 자연 과학 계통의 전문서는 극히 소량이 출판됐다.
정 교수는 “정치, 학술, 사상 방면의 출판물이 적었던 이유는 총독부의 엄격한 검열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문 필자의 부족, 출판사의 재정 능력 빈약, 독자의 한계와 같은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일제는 왜 족보와 유고, 문집의 출판을 대거 허가했을까. 족보와 유고, 문집은 배포의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 교수는 “통계상 가장 많은 종류가 허가된 출판물은 족보였다”면서 “족보는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가계도(家系圖)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조선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총독부는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많은 발행 건수를 기록한 족보는 여러 문중에서 발행하지만 서점에서 판매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유고와 문집은 스승이나 조상의 글을 후손들에게 남기려는 목적에서 출판하는 것이지만 순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신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에게는 난해한 책이었으므로 이 역시 배포의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족보와 유고, 문집은 1935년 이후에는 출판이 줄어들어 세 출판물이 전체 출판 허가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3.5%로 낮아졌다.
1920-1930년대에는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었을까.
확실한 통계 자료를 찾기 어렵지만 1920년대에는 방정환이 세계 명작 동화 10편을 번역해 펴낸 ‘사랑의 선물’, 이광수의 소설 등이 인기를 누렸다. 1930년대 후반에는 이기영의 ‘고향’, 심훈의 ‘직녀성’, 이광수의 ‘이차돈의 사’, 이태준의 ‘제2의 운명’ 등이 많이 판매된 소설이었다고 정 교수는 전했다.
정 교수는 “일제강점기는 민족의 암흑기였고 언론 출판의 자유가 철저히 박탈된 시기였지만 그런 가운데도 출판은 국민의 계몽과 교육,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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