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7일 백두산정계비 건립 300주년 학술회의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은 오는 7일 오전 9시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백두산정계비 건립 30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연다고 4일 밝혔다.’동아시아 근대 국경과 백두산정계비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회의에서 그동안 한·중 문제로 다뤄져 온 백두산정계비 문제를 동아시아로 확장해 근대 국경의 기원으로서 백두산정계비 의미를 밝히고자 할 예정이다.
1712년 백두산 기슭에 세워진 백두산정계비는 비문에 새겨진 ‘토문’ 명칭의 비정을 둘러싸고 최근까지 주목의 대상이 돼 왔다. 또 백두산정계비가 국경 획정을 나타내는 국경비인지 단순한 변경조사의 기록인지, 백두산정계비의 원래 위치가 백두산 기슭이었는지 소백산 정상이었는지가 한·중 양국 간에 쟁점이 돼 왔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조광 전 고려대 교수가 ‘백두산정계비 건립 300년의 의미’를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다.
이어 ‘1720년대 청(淸)과 베트남 여조(黎朝) 간의 운남변경 영유권 논쟁’(유인선 전 서울대 교수), ‘네르친스크조약에서 장백산정계(長白山定界)까지’(쑨저·孫喆 중국인민대학 청사연구소), ‘18-19세기 고토 의식과 변경 인식’(배우성 서울시립대 교수), ‘1712년 백두산정계와 두만강 상류의 퇴책(堆柵)’(이화자·梨花子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17-18세기 압록강·두만강 상류지역의 개발’(강석화 경인교육대 교수) 등의 주제발표가 진행된다.
유인선 교수는 미리 공개한 주제발표문에서 백두산정계비와 비슷한 시기에 청과 베트남 사이에 세워진 정계비의 시대적 배경과 설립과정을 검토했다.
유 교수는 베트남 레 왕조와 청 운남총독 사이에서 각기 경계를 논증하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서 정계비가 건립된 점에 주목했다.
또 영유권 갈등의 원인이 국경선이 명확하지 않았던 점과 변경지역 소수민족이 시기별로 양국의 영향을 모두 받았던 점에 있었으며, 실리를 추구하는 레 왕조의 양면적 대청 외교정책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우성 교수는 조선 후기 고토 회복을 주장한 이종휘와 한말 고토 회복을 주장한 지건룡을 비교해 고토회복의 사상적 기반으로 전화된 조선 중화주의의 논리를 규명하고자 했다.
그는 이종휘와 지건룡이 조공책봉체제 속에서 청원하는 방식으로 고토를 회복하고자 했다는 점은 같지만 중국에 대한 인식, 고토 회복의 의미는 다르다는 점에서 조선 중화주의의 다양한 형태와 변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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