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괴물이야 인간인 척하지 마

우린 괴물이야 인간인 척하지 마

입력 2011-08-20 00:00
수정 2011-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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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예 ‘괴물전:산해경’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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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예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밝게 직시할 때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승예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밝게 직시할 때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안 그래요. 안 무서워요. 제 작품 오래 본 분들은 다들 귀엽다 그러세요.” 씨익 웃으며 한 술 더 뜬다. “제 희망은, 작품을 본 분들이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 작업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을 찾자’입니다.” 작가 말대로 될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려 놓은 것은 눈이 셋 있거나, 피를 흘리거나, 손가락이 닭 볏처럼 머리 위로 뻣뻣하게 뻗어 있는 인물이다. 불도그처럼 사나운 짐승을 그려둔 것도 있는데 말 그대로 사납기 이를 데 없다. 더구나 아크릴 물감으로 바탕색을 올린 뒤 볼펜으로 뱅글뱅글 돌려가며 명암으로 형상을 부여했다. 한층 더 그로테스크해진 느낌이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미술공간현에서 ‘괴물전:산해경(山海經)’ 전시를 여는 박승예(37) 작가다. 작가의 출발점은 악몽.

악몽의 매력은 “그 어느 것보다 나를 잘 드러내는 것”이어서다. 닮았다 싶었는데 그림에 등장하는 얼굴은 작가 자신이다. 자기 얼굴이 그리기 좋게 생겼다고, 재밌게 생겼다고 너스레를 떤다. 자신을 드러내는 게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아예 더 드러내지 못해서 고민”이라고도 했다. 또 한 가지, 알고 보니 별게 아니어서다. “원래 무서운 영화를 전혀 못 봤는데, 우연히 한번 보니까 생각 이상으로 겁나진 않더라고요.” 공포영화처럼, 공포란 것도 실제 들여다보면 무섭지 않을는지 모른다. “국가, 종교, 각종 비즈니스 같은 것들이 공포로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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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메일 디어’(feMALE Deer)
‘피메일 디어’(feMALE Deer)
그래서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손’이다. “생명공학 수업을 들었는데 기독교를 믿는 한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성경은 하나의 은유라고. 선악과를 손으로 따먹는 게 바로 인류의 직립보행을 뜻한다는 거죠.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두뇌가 발달하기 시작해 현재 인류가 됐다는 얘깁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손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지만, 그 손에 또한 피가 묻어 있다. 그래서 손은, 신의 법정에 제출된 인간 역사의 증거물이다.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래서 닭 볏처럼 머리에 손이 삐죽이 돋아 있는 작품에다 ‘캐스크’(Casque)라 이름 붙였다. 불어로 ‘투구’이자 ‘촉수’라는 뜻이란다.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다.

“야박할는지 몰라도 우린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봐요. 대신 그렇다면 직접 대면해 보자, 그래서 각성하자, 그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홍상수 감독이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우리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했다면, 작가는 “우리가 괴물임을 인정할 때 사람이 될 희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제안하는 셈이다.

“난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게 바로 공포예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공포를 직시하되 판단과 선택의 권한을 쥐는 게 인간에게 어울리는 자존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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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 벅’(Hand Bug)
‘핸드 벅’(Hand Bug)
다음 전시는 12월이다. 전시 제목은 ‘유동하는 공포’(Liquid Fear).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 제목이다. 작가는 요즘 한창 재밌게 읽고 있는 책이라 했다. 바우만은 사회 자체의 휘발성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세계가 지옥으로 변했으니 지옥이 아닌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일렀다.

그러고 보니 작가도 한때 ‘휘발’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미국 롱아일랜드대 사우샘프턴캠퍼스로 진학했다. 이런 탓에 한국에도, 미국에도 ‘적당한’ 안면과 연줄이 없다. 미국 생활이 편했던 것만은 아니다. 늦바람이 불어 대학원 진학을 미루면서 한동안 “우주먼지”를 자청하기도 했고, 2년 정도 불법체류자로도 살아봤다.

“유학생이 별로 없는 학교라 학교 측 실수로 그렇게 된 건데, 묘하게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 싶었지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생활을 해본 게,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됐어요.”

덕분에 안 해본 일이 없다. 한국에서 건너온 화류계 여성과 미국인 남자 간 연애편지 대필과 프러포즈 대행 아르바이트까지 했다고 귀띔한다. “더한 것도 있는데 공개적으로 말하긴 그렇다.”며 웃는다. 이런 경험치라면, 존재의 휘발성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녹여낼지 궁금증을 키운다. (02)732-5556.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8-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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