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보다 목표” “감각보다 노력”…비슷한 두 남자

“재능보다 목표” “감각보다 노력”…비슷한 두 남자

입력 2011-08-15 00:00
수정 201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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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커션 연주자 정건영·첼리스트 고봉인 ‘음악과 인생’을 말하다

열살 터울의 두 남자는 여느 클래식 연주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 명은 스물다섯에 뒤늦게 유학길에 올라 8년 만에 오스트리아 유명 음악원의 교수가 됐다. 퍼커션 연주자 정건영(36)씨다. 다른 한 명은 중 3때 독일로 유학을 떠나 연주자와 과학자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다. 첼리스트 고봉인(26)씨다. 두 사람은 지난 13일 끝난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대관령국제음악제 참가를 위해 각각 모국을 찾았다. ‘늦깎이’와 ‘천재’에게 음악과 인생을 물어보았다.

<정건영>

충남 예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은 중학교 때까지는 음악과 담을 쌓고 살았다. 고교 입학식날, 밴드부 선배가 불던 ‘은색 악기’에 반했다. 나중에 트롬본이란 걸 알았다. 다음 날 음악실을 기웃대던 소년에게 선배는 트롬본을 불어보라고 했다. 웬걸, 팔이 짧아서 트롬본 슬라이드를 끝까지 뻗지 못했다. 선배는 트럼펫을 불어보라더니 입술이 너무 두꺼워 안 된다고 했다. 풀이 죽어 음악실을 나가려던 찰나, 마림바를 툭탁거리던 선배가 두드려 보라고 했다. 정 교수는 “화도 났던 터라 미친 듯이 두들겼는데 선배가 재능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동기들도 ‘천재’라고 하며 모두 꾀었더라.”고 회상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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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진학은 꿈도 못 꾸고 혼자 미친 듯이 연습했다.”는 정건영 교수.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음대 진학은 꿈도 못 꾸고 혼자 미친 듯이 연습했다.”는 정건영 교수.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늦깎이인 데다 시골에서 음대에 진학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지방대를 다녔는데 수업은 딱 7번 나갔다. 대신 유명 타악기 연주자의 공연 비디오와 교본을 구해놓고 혼자 미친 듯이 연습했다.

2000년 오스트리아 린츠로 떠났다. 독일어는 입도 뻥긋 못 했고 나이까지 많은 그는 환영받지 못했다. 두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고 돈도 떨어졌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빈 국립음대에 응시했다. 18명의 지원자 중 유일하게 합격했다.

“‘드럼라인’(미국 대학 밴드부의 드럼 배틀을 다룬 영화)에 나오는 ‘루디멘털’ 장르를 실기시험 자유곡으로 연주했다. 클래식 타악기 테크닉만 구사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보였던 모양이다.”

접시닦이, 관광가이드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빈 음대에서 8년을 갈고닦았다. “표현할 수 있어야 예술”이라는 지도교수 발터 파이글의 권유로 지휘과정도 이수했다. 2008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빈의 프라이너 콘서바토리움 교수가 됐다. 올 초까지 빈 국립음대 초청교수로도 일했다. 둘 모두 동양인 최초다.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음악을 통한 소통. 유튜브에 레슨 동영상을 올리고 국내 공연에서 애프터스쿨의 곡과 안무까지 소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객들이 1시간을 1분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즐거움에 감동과 의미를 더해야 한다.”

재능이 노력보다 중요하다는 게 클래식계의 주된 의견이다. 정 교수는 “타고나야 하지만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면서 “어릴 때부터 음악을 배운 것도, 한국에서 유명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지만,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고봉인>

누이가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다. 엄마가 누이만 챙기는 걸 보고 질투심이 났다. 소년도 여덟 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했다. 요즘 음악영재들에 비하면 늦은 출발. 불과 1년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오디션을 볼 만큼 빨리 늘었다. 그곳에서 은사인 정명화 교수를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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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영혼을 모두 치유하고 싶다.”는 분자생물학자이자 첼리스트인 고봉인씨.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육체와 영혼을 모두 치유하고 싶다.”는 분자생물학자이자 첼리스트인 고봉인씨.
대관령국제음악제 제공
“그때만 해도 심각하게 음악을 하려던 게 아니어서 기교적으로는 정말 별로였다. 그런데 부담 없이 즐기는 모습을 보고 정명화 선생님이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고향 전주의 초·중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는 한예종 예비학교에서 정 교수에게 사사했다. 신흥중 3학년 때 정 교수의 권유로 독일 유학을 떠났다. 여느 유학생처럼 음대에 조기 진학하는 대신 일반 고교에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했다. 그런데도 발전 속도는 괄목상대였다. 1997년 차이콥스키 국제청소년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000년 독일 크론베르크 마스터클래스에서 가장 유망한 첼리스트에게 주는 ‘란드드라프 폿 헤센’상을 받았다.

원래는 아버지(고규영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처럼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미국 하버드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복수학위 프로그램으로 생물학과 첼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프린스턴대 분자생물학 박사과정(2년 차)에 적을 둔 고봉인씨는 세포와 단백질의 상호 영향 메커니즘을 밝혀 유방암 치료 열쇠를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실험이 워낙 많아 연주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진 않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과학자를 꿈꿨고 음악가의 길을 줄곧 걸어왔기 때문에 하나가 없으면 삶의 균형이 깨져 불행해질 것 같다.”는 고봉인씨는 “특별한 연주를 통해 수백 수천 청중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유방암 치료 방법을 찾는다면 수천 수만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둘 다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 중 어떤 게 중요한지. “실내악 앙상블처럼 다른 이의 연주에 반응하면서 같이 협연하는 것은 누가 가르치거나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선천적인 재능, 본능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물론 노력은 당연한 얘기다.” 우문이었나 보다.

모두 그를 천재라고 말하는데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난 노력파다. (첼로) 시작도 늦었고,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노력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은 숱한 실험을 해야 한다. 80~90%는 실패하다 보니 천재성보다는 노력과 인내심, 성실함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나와 맞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송순효 서울시의원, 장애인복지시설 현장 방문…“자립·돌봄 지원 꼼꼼히 챙길 것”

송순효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강서4)은 지난 23일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장애인복지시설(동작구립 장애인보호작업장·다움장애아동지원센터·시립평화로운집)을 방문해 장애인의 자립과 돌봄 지원 현황을 살펴봤다. 이번 현장 방문은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시설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직접 청취하고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송 의원은 장애인 근로환경과 직업재활 현황을 세심히 점검하며 “일자리는 자립과 사회참여의 핵심 기반”이라고 강조하고,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과 장애인생산품 판로 확대를 약속했다. 아울러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지원 사업’ 등의 현장을 살피며, 보호자의 갑작스러운 부재 시에도 안심할 수 있는 돌봄 환경 조성과 지역사회 교류 확대의 중요성을 당부했다. 송 의원은 “이번 현장 방문을 통해 자립 지원 일자리부터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긴급돌봄, 거주 장애인의 사회참여까지 관련 정책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이 사업들이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삶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도록 다가오는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운영 실태와 지원 필요성을 면밀히 따져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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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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