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데이의 부활] “경쟁력 있는 문화아이콘” vs “포장된 유흥… 그들만의 퇴폐”

[클럽데이의 부활] “경쟁력 있는 문화아이콘” vs “포장된 유흥… 그들만의 퇴폐”

입력 2011-06-25 00:00
수정 2011-06-2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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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문화 엇갈린 시선

‘클럽데이’ 부활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클럽문화가 ‘홍대 앞’으로 통칭되는 서울 서교동 일대를 떠올리는 열쇠 말인 동시에 서울의 문화 아이콘으로 보는 긍정론이 우선 존재한다. 하지만 인디음악의 인큐베이터였던 라이브클럽들이 발을 빼면서 자칫 ‘그들만의 축제’로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럴 듯하게 포장된 유흥 문화에 불과하다는 냉소 또한 뿌리 깊다. 홍대 클럽문화가 주목받은 것은 강남, 이태원 등 서울의 다른 곳은 물론 서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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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록 밴드 공연 위주의 라이브클럽들이 먼저 홍대에 자리 잡았다. 당시만 해도 라이브클럽은 2인 이상의 동시 연주를 금지하는 식품위생법의 적용을 받아 툭하면 영업 정지를 당했다. 클럽 관계자들과 문화 예술인들이 합법화 투쟁을 벌인 끝에 1999년 불법 딱지를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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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이 일찌감치 유흥가로 변모한 것과 달리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 주차장 거리에 이르는 도로변에는 화랑과 미술학원, 카페가 모여들면서 ‘피카소 거리’란 애칭이 붙었다. 1993년 ‘발전소’, 1995년 ‘드럭’ 등 홍대 출신들이 만든 전위적 인테리어와 독특한 분위기의 클럽이 입소문을 타면서 패션, 음악, 문학, 건축, 미술 분야의 재기발랄한 신예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하지만 2001년 3월 m1, nb 등 4개 클럽으로 단출하게 클럽데이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클럽 문화에 대한 시선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일부 클럽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엑스터시 등 환각제를 복용한 사건을 놓고 언론에서 탈선과 범죄의 온상으로 몰아간 탓이 컸다.

클럽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는 2002년 월드컵 축구 대회였다. 2004년부터 사운드데이란 이름으로 독자적인 행사를 열어온 라이브클럽 9곳이 2007년 12월 클럽데이와 합쳐지면서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1만여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해방구로 변했다. ‘클러버’가 아닌 ‘몸치’도 부담 없이 홍대를 찾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행·문화 정보 사이트 CNN GO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인 50가지 이유’ 중 하나로 홍대 문화를 꼽았다. 서울시도 클럽데이를 ‘서울 테마별 관광 코스 30선’에 포함시켰다. 장양숙 클럽문화협회 총무는 “클럽데이는 홍대뿐 아니라 서울의 상징적 행사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올 1월 중단된 이후 홍대 거리가 활력을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월드컵을 전후로 외부 상업 자본이 빠르게 침투하면서 홍대의 문화 지형도도 바뀌었다. 대형 클럽들이 득세하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나 실험 예술가, 출판사 등은 당인리발전소 부근과 망원동, 광흥창역, 문래동 등으로 밀려났다. 클럽데이가 번창하면서 역설적으로 클럽들의 독창성이 사라지고 청년 하위 문화를 일궈 온 홍대의 문화 예술인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부비부비’라는 속어로 상징되는 선정성 논란과 미성년자 출입, 잦은 폭력·폭행 사고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최근 홍대의 한 클럽에서 “‘짝짓기’에 성공하는 커플에게 모텔 숙박권을 주겠다.”고 공지했다가 취소하는 등 볼썽사나운 이벤트를 하는 것도 클럽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부추긴다.

홍대의 문화 정보를 다루는 월간지 ‘스트리트 H’의 정지연 편집장은 “1990년대 홍대의 록카페는 대안적·전위적 성격이 있었고 ‘수질 관리’나 연령 제한이 없는 열린 공간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부비부비’가 번지고 클럽이 대형화되면서 문화가 아닌 유흥의 성격이 짙어졌다.”면서 “클럽데이 수익금 분배 방식이 종전 n분의1에서 (기여도 등을 감안한) 차등 분배로 바뀌면 자본의 논리가 강해져 대형화, 상업화, 획일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과거 클럽데이는 단순히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이곳의 자생적인 인디 문화와 창조적인 분위기가 결합돼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것”이라면서 “5개월 만에 부활한 클럽데이가 이전과 달리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쟁사회의 구조를 답습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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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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