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구 작가 새달 17일까지 ‘…산성일기’ 展
“저런 풍경이 실제로 있나요.” 등산을 한답시고 남한산성에 몇번 가본 경험으로 물었다. ‘겨울산’에 담긴 풍경이 마치 강원도 산악지대 같아서였다.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처럼, 보는 사람을 끌어당겨 깊은 숲속에 내동댕이쳐 버릴 것 같은 느낌.“그럼요. 저 왼쪽 언덕 너머가 남한산성 안쪽이에요. 저 언덕을 따라서 산성이 지어져 있죠. 저도 운전하면서 지나가다가 저런 풍경이 있었나 싶어서 사진을 찍은 뒤 그린 거예요.” 아마 남한산성이 품고 있는 역사적 회환이 그런 풍경을 작가의 눈에 띄게 한 것이리라.
다음 달 17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먼 그림자 - 산성일기’ 전시를 열고 있는 강경구(59) 작가. 경원대 교수로 있다 보니 늘 남한산성과 마주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김훈이 쓴 소설 ‘남한산성’이 떠올랐다. 그 소설을 한번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남한산성 곳곳을 깊숙이 느끼면서 몇번이나 소설을 읽고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봤다. 그래서 내놓은 작품 26개를 걸었다.
강 작가는 오방색에서 따온 강렬한 원색을 쓴다. 때문에 화려할 것만 같은데, 화려하다기보다 전반적으로 탁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대한 은유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소나무다. 불그레한 소나무들이 빽빽한 풍경이 대부분인데, 피의 역사를 온몸에 새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솔잎도 뾰족한 게 아니라 두루뭉술하다. 끊임없이 피어나는 의구심과 못다한 말들이 반영된 것 같다. 그 덕분에 ‘떠도는 이야기’ 같은 그림을 보면 평소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불온한 상상이 가득 찬 남한산성의 풍경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다. 하기야 김훈도 남한산성을 일러 말로써 치른 전쟁이라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목탄으로 그린 그림들은 더더욱 직접적이다. 죽음에 다다랐을 때 그들 눈에는 흑색 세상만 보였으리라. 작가는 작품 개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꺼렸다. “워낙 유명한 소설을 주제로 삼았으니 관객분들도 직접 한번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 아직 그리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기회가 닿는다면 이 소재를 더 밀고 나가고 싶다.” 관람료 2000원. (02)736-437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6-1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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