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다’로 연극 데뷔 송일국
“겨레와 나라가 뭐기에 가족들을 왜 다 버렸냐는 아들 준생의 물음에 안중근이 ‘너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어요. 그 대사 한마디에 꽂혀서 하게 됐습니다.”안 의사의 가족 얘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 의사의 장남 분도는 7살 때 죽었다. 일제의 독살설이 나돌았다. 둘째 준생은 더 비극적이다.
1939년 총독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어렵게 살던 준생을 불러들여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행동은 잘못이었다.”고 사과하도록 했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 것. 광복 직후 김구 선생이 중국 정부에 아비 이름을 더럽힌 준생을 죽여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준생은 1952년 사망할 때까지 ‘호부견자’(虎父犬子·호랑이 아비 밑에 태어난 개 같은 자식)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송일국이 ‘너를 위해서’라는 대사에 꽂힌 이유다. 지난 9일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송일국은 “극 중 대사에는 준생을 친일파, 배신자라 부르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나 역시, 그리고 누구라도 그 시대를 살았다면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저는 그렇지 않았지만, 독립운동 때문에 되레 집안은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고, 그런 얘기들을 쭉 듣고 보면서 자랐다.”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떤 꼬리표가 달라붙을지 뻔히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준생을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안 의사가 더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게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송일국 개인으로서는 연극 무대 첫 도전이다. 첫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을 넘어서게 한 것도 작품의 이런 성격 덕분이다. 연출을 맡은 윤석화의 협박(?)도 통했다.
윤석화는 “처음 출연을 제안했을 때 연극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얘기했지만, 네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니 이런 역할을 맡을 책임도 있다고 설득했다.”면서 “가난한 연극판의 적은 개런티에도 흔쾌히 출연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너다’는 새달 2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배우 박정자가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고, 한명구·배해선 등이 출연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6-14 22면